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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207] 삼문출판사 터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4-02-04 23:50:13
  • 수정 2024-04-10 21: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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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삼문출판사(三文出版社) 터는 미국 감리교 선교부가 1889년에 설치한 출판사 겸 인쇄소인 삼문출판사(三文出版社)가 있었던 자리로 정동 배재학당 내에 위치했다. 당시 국내 기독교 서적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출판됐고 '독립신문(獨立新聞)'이 인쇄되기도 했다.


삼문출판사(三文出版社址) 터는 미국 감리교 선교부가 1889년 설치한 출판사 겸 인쇄소인 삼문출판사(三文出版社)가 있었던 자리이다. 정동 배재학당 안에 위치했다. 당시 국내에 존재했던 인쇄시설은 정부 소유의 박문국(博文局)과 민간의 광인사인쇄공소(廣印社印刷公所), 삼문출판사 정도였다.


설립연도는 1889년과 1890년 설이 있지만, 대체로 1889년에 세워졌다는 것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 ‘삼문출판사(The Trilingual Press)’라는 명칭의 의미는 국문.영문.한문 등 3가지의 활자를 갖추었다는 뜻이다. 이칭으로 ‘미이미활판소(美以美活版所)’ 또는 ‘한미화출판소(韓美華出版所)’라 불리기도 했다. ‘미이미’는 ‘메소디스트(Methodist)’의 음역(音譯)이므로 ‘감리교활판소’라는 의미이다.


삼문출판사는 처음에 배재학당 건물의 지하에 두었다가, 얼마 후 본관 서쪽 뒤편에 별도의 건물을 지어 인쇄소로 사용했다. 'The Korean Repository' 1892년 8월호에 관련기록이 있어, 이 건물이 그 이전에 신축된 상태였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삼문출판사는 1887년 12월에 배재학당 총리교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의 요청으로 올링거(Franklin Ohlinger)가 내한한 데서 비롯됐다. 올링거가 서울에 정착하면서 최신 인쇄기와 활자 도입에 주력해 배재학당 내에 출판사를 창립하는 한편 기독교 관련 출판사업과 문서선교 부분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1892년에는 한국 관련 종합잡지인 'The Korean Repository'를 창간하기도 했다. 이 잡지는 1년 만에 중단됐으나, 그 후 헐버트(Homer B. Hulbert)에 의해 부활되어 1895년부터 1898년에 걸쳐 매월 발간됐다.


1893년 올링거의 귀국으로 헐버트가 후임으로 임명됐고, 1897년에는 벙커(Dalzella A. Bunker)에게 넘겨졌다가 1898년에는 콥(George C. Cobb)이 운영을 맡았고, 다시 1900년 8월에는 벡(S. A. Beck)이 책임자가 되었다.


'독립신문'이 정리되던 시기에 이를 최후로 인수해 1899년 6월 독립신문사 사장으로 취임했던 영국인 엠벌리(W. H. Emberley)가 1898년 6월부터 이 출판사의 인쇄감독을 맡기도 했다.


1900년 벡은 인쇄소와 출판사를 분리하기로 하고 출판사 이름을 ‘한국감리교출판사(Korea Methodist Publishing House)’로 정했다. 이 출판사는 1909년경에 폐쇄되었다고 전해진다. 1901년부터는 'The Korea Review'를 인쇄했고, 1906년 실질적인 교파연합 출판사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미 북장로회의 불참으로 실패했다. 1908년부터 전도용 인쇄물의 수요가 줄어들고, 민간인쇄소가 다수 설립되면서 1909년경에 폐쇄됐다.


삼문출판사에서 간행한 출판물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기독교신문과 잡지를 포함한 정기간행물, 둘째는 일반서적과 기독교계통학교의 교과서출판, 셋째는 성경과 찬송가를 포함한 기독교 문서의 출판이다. 주요 종교 출판물로는 '미이미교회강례(美以美敎會綱例, 1890)' '성교촬요(聖敎撮要, 1890)' '진도입문문답(眞道入門問答, 1893)' '상제진리(上帝眞理, 1893)' '미이미교회문답(1893)' '세례문답(洗禮問答, 1898)' 등이 있다.


감리교출판사가 분리된 후 삼문출판사에서는 인쇄기능이 당분간 그대로 유지됐던 것으로 보이나, 어느 시점까지 그 역할을 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후 이 건물은 1912년 가을에 설립된 서울외국인학교(Seoul Foreign School)가 1912년부터 1915년까지 사용한 기록이 있다. 1929년 9월 대강당을 짓기 위해 배재학당 본관이 헐리던 시점에 옛 삼문출판사 건물도 철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사진-중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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