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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219] 김장생,김집선생 생가터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4-02-07 13:57:50
  • 수정 2024-04-10 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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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훈 기자]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중구 정동(貞洞) 부근에서 출생했고,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장생은 관직보다는 학문에 힘을 쏟아 조선시대 예학(禮學)의 체계를 잡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기호학파를 이룩해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학문에 힘을 쏟아 예학(禮學)의 체계를 세워 기호학파를 형성한 인물이다. 본관이 광산(光山)으로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이다. 대사헌 김계휘(金繼輝)의 아들이며, 중구 정동(貞洞) 부근에서 출생했다. 김집(金集)이 그의 아들이다.


김장생은 송익필(宋翼弼)과 이이(李珥)의 문하로 과거(科擧)보다는 학문의 정진에 힘을 쏟았다. 1578년(선조 11) 31세에 유일(遺逸)로 추천되어 참릉참봉이 되고, 이후 1613년(광해군 5)까지 안성(安城)군수.익산군수.철원(鐵原)부사 등을 역임했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癸丑獄事)에 연루됐으나 무혐의로 풀려났고, 이후 충청도 연산(連山)으로 낙향해 예학 연구에 몰두했다. 이후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서인이 정권을 잡자 75세의 나이에 다시 벼슬에 나아갔으나 병으로 곧 낙향했다. 이어 동지중추부사 등에 제수됐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양호호소사(兩湖號召使)가 되어 의병을 모집했다. 이듬해 형조참판이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했다.



김장생은 예학을 깊이 연구해 아들 김집에게 이를 계승시켜 조선 예학의 태두로 예학파의 주류를 형성했다. 그의 문하로는 아들 김집을 비롯해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이유태(李惟泰) 등이 있었고, 서인을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를 이룩해 조선 유학계에 있어서 영남학파와 쌍벽을 이루었다. 그 자신은 요직을 많이 거치지 않았으나 인조반정 이후 서인의 영수 자격으로 당시 정국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1631년(인조 9) 연산의 자택에서 83세로 사망했다. 1657년(효종 8)에는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원(文元)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저서로는 '상례비요(喪禮備要)' '가례집람(家禮輯覽)' '전례문답(典禮問答)'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 '경서변의(經書辨疑)' '사계전서(沙溪全書)' '사계유고 (沙溪有故)' 등이 있다. 


김집(金集, 1574~1656)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집은 관직보다는 학문에 힘을 쏟아 아버지인 김장생(金長生)과 함께 조선시대 예학(禮學)의 체계를 잡는데 크게 기여했고, 기호학파(畿湖學派)를 이룩했다.



김집(金集, 1574~1656)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김집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아들로 한양 정릉동(貞陵洞)에서 출생했고, 관리로 입신하기보다는 학문에 힘을 쏟아 조선시대 예학(禮學)의 체계를 완비해 기호학파(畿湖學派)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1574년(선조 7)에 태어난 김집은 1581년(선조 14)에 송익필(宋翼弼)의 문하에서, 1585년(선조 18)에는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591년(선조 24) 진사시에 합격한 뒤 1610년(광해군 2) 헌릉참봉(獻陵參奉)에 제수 됐으나 정치적인 이념 차이로 사직해 귀향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부여현감(扶餘縣監)이 됐고 이후 임피현령(臨陂縣令).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등을 거쳤다. 1645년(인조 23)에 공서파(功西派)가 집권하자 퇴임했다가 1649년(인조 27) 예조참판(禮曹參判)과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다. 1650년(효종 1) 김육(金堉)의 대동법에 반대해 갈등했다.


이후 예학 연구에 집중했고 1656년(효종 7에) 지병으로 사망했다. 같은 해 문경(文敬)의 시호가 내려졌고, 1883년(고종 20)에 영의정으로 추증됐다. 저서로는 '신독재문집 愼獨齋文集' '의례문해속(疑禮問解續)' 등이 있다. 중구 덕수궁길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김장생, 김집선생 생가터’표지석이 있다./사진-우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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