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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243] 서울에 세워진 최초의 연극전용 극장 '동양극장 터'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4-02-14 08:38:44
  • 수정 2024-04-10 22: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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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훈 기자] 동양극장(東洋劇場)은 1935년 서울에 세워진 최초의 연극전용 극장으로 주로 신파극을 공연했다. 이 극장은 당시 대중연극의 중심지가 됐고, ‘호화선’과 ‘청춘좌’는 이 극장을 대표하는 2대 극단이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연극이 공연될 때는 장안의 기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는 말도 전한다. 광복 후 운영난으로 한때 영화관으로 사용되다가, 1976년에 완전 폐관되고 1995년에 철거됐다.


동양극장(東洋劇場)은 1935년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전용 상설극장으로, 무용가인 배구자(裵龜子)와 그의 남편 홍순언(洪淳彦)에 의해 설립됐다.



동양극장은 648석에 회전무대를 갖추고, 연극을 자체적으로 소화하기 위해 전속극단을 두고 연중무휴로 연극을 공연했다. 전속극단으로 신파 중심의 ‘청춘좌(靑春座)’, 사극 중심의 ‘동극좌(東劇座)’, 희극 중심의 ‘희극좌(喜劇座)’ 등을 두었고, 주로 신파극을 공연했다. 이후 1963년에 ‘동극좌’와 ‘희극좌’는 병합돼 ‘호화선’으로 재출범하게 된다. 이 ‘호화선’은 ‘청춘좌’와 함께 이 극장을 대표하는 2대 극단이 되었다.


동양극장의 관객층은 주로 종로의 기생들이었는데, 1950년대까지 '홍도야 울지 마라'를 비롯해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어머니의 힘' '황진이' '장한몽' '유정무정' '북두칠성' 등 기생들의 심금을 울리는 신파극 히트작을 끊임없이 공연했다.


이 극장은 회전무대.호리존트(무대 뒷면에 설치한 ‘U’ 자 모양의 굽은 막) 등을 갖추고 1935년 11월 1일 개관공연의 막을 열면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동양극장의 출현으로 당시 연극상설극장의 건립을 염원하던 많은 연극인들의 숙원이 풀리는 계기가 됐다.



동양극장은 최초의 연극전용극장이라는 특징 외에도, 극장의 운영에서도 이전의 극장들과는 차별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월급제도 실시이다. 이전까지의 극단 단원은 공연의 개런티를 일급 또는 무급 제도로 받았지만, 동양극장에서는 배우들을 고정 월급제로 채용해 연극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동양극장은 우리나라 최초로 극단에 월급제도를 도입한 극장이 되었고,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운영방식을 취한 극장이 되었다.


동양극장은 많은 연극인들이 모여들어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걸쳐 대중연극의 메카로 군림했는데, 신파극이 점점 쇠퇴함에 따라 운영난을 겪다가 1976년에 폐관, 1995년에는 철거되어 현재 지하철5호선 서대문역 5번 출구 방향 문화일보사 앞에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사진-우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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