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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265] 민족의식의 고취와 출판 역사의 획을 그은 '회동서관 터'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2-19 09:57:42
  • 수정 2024-04-10 23: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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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 종각역 4번 출구 청계천 광교 앞 신한은행 건물 화단 내 (구 조흥은행 본점)/근대기 대표적인 출판사 겸 서점[박광준 기자] 회동서관은 1897년 고유상이 설립해 일제 때까지 존속했던 출판사 겸 서점으로, 서적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필요한 학용품 일체를 취급했다. 또 출판도 병행해 초창기에는 신소설을, 나중에는 사전과 실용서 특히 산업 발달에 필요한 많은 서적을 간행했다.


회동서관은 1897년에 고유상이 자본금 15만원으로 세운 우리나라 개화기 최초의 서점이다. 회동서관은 주인이 고유상이었기 때문에 일명 ‘고유상 서포’라고도 불렸다. 원래 회동서관은 ‘고제홍서사’란 서적상으로 출발했다. 아버지 고제흥이 서점을 운영했지만 아들 고유상이 가업을 이으면서 출판을 겸하게 됐는데 이때부터 근대식 서점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도서 뿐만 아니라 문방구도 함께 취급했고, 출판도 겸했다.



회동서관은 근대문물에 대한 독자들의 갈망에 따라 대한제국기 최대의 서점으로 번창한다. 지석영의 '자전석요',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광수의 '무정' 등 총 201종의 출판물을 간행했고, 후에 각종 실용서와 산업기술분야의 서적을 출판하고, 외국에서 들여온 책들까지 판매했다.


회동서관은 이렇게 최초의 근대서점으로서 수많은 역할을 해왔지만, 일제 탄압으로 사세가 꺾이면서 1950년대 문을 닫았다.



회동서관은 현재 출판물에 인세를 지불한 최초의 출판사로서 출판업계에 큰 영향을 끼쳤고, 각종 서적의 발간으로 문화사적인 중요성을 가졌다고 평가된다.


회동서관은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전기인 '화성돈전'을 무려 3천부를 팔았고, '자전석요'는 베스트셀러, 종두법 창시자인 지석영을 필자로 끌어 들여 근대적인 옥편을 출판해 10만부를 팔기도 했다. 그러나 나라를 빼앗기면서 일부 서적은 불온사상, 과학소설이란 이유로 판금조처를 당했다.



회동서관은 1918년 무렵 종로지점인 광익서관과 출판사인 계문사를 차리는 등 출판그룹으로 성장해 20년대 초에는 민족계 서점으로 가장 큰 사세로 성장했다. 하지만 중국과의 교역, 아들 병교의 중국유학 등으로 독립운동의 비밀루트라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3·1운동 이후 일본서적이 쏟아져 들어오고 유학파가 출판업에 진출하면서 여느 민족계 서점과 출판사처럼 타격을 받았다. 1926년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광수의 '재생'을 끝으로 영업을 중단한 채 판권만 유지하다가 50년대 중반 최종 정리됐다./사진-박광준 기자,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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