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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이이야기 62] 왕과 왕실의 보필기관 ‘궐내각사-규장각 일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4-05-02 11: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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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조화 이룬 한국적인 궁궐 ‘창덕궁(3)’


[이승준 기자] 돈화문을 지나 들어오면 궐내각사를 마주보게 된다. 궐내각사는 왕과 왕실을 가까이서 보좌하기 위해 궐 안에 특별히 마련한 관청들의 집합체로 금천을 사이에 두고 동과 서로 나뉘어 건물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는 왕실의 도서관 역할을 했던 규장각과 사당역할을 했던 옛 선원전, 신록 편찬 사료를 보관했던 예문관, 왕실의 건강을 살피던 약방 등을 볼 수 있다. 


# 규장각 일원





관청은 대부분 궐 밖에 자리하지만, 관원들이 궐 안에 들어와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고 왕실의 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특별히 궐 안에 배치하기도 했다. 이는 마련한 관청들의 집합소인 창덕궁의 궐내각사는 원래 인정전 서똑, 동쪽 그리고 남쪽 일대에 자리했으나, 일제 강점기 때 거의 헐렸다가 1990년 이후 일부 복원되었다. 


인정전 서쪽에 자리한 지금의 궐내각사 역시 복원된 것으로, 금천을 경계로 동편에 약방,.옥당과 옛 선원전 등이, 서펀에 규장각. 검사청 등이 미로처럼 복잡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규장각 행각먼저 규장각 일원부터 살펴보면, 맨 처음 마주하는 곳이 규장각이다. 정조는 즉위년(1776) 에 후원에 규장각을 지어 역대 왕들의 글씨와 시문, 초상화 등을 보관했다. 그러나 후원의 규장각이 멀리 떨어져 있어 다니기에 불편하자, 1781년(정조 5년) 이 지역에 새로이 규장각을 설치했다. 


그러면서 왕실 도서관 역할에 머물던 규장각은, 정조의 특별한 관심 속에 강력한 왕권 확립과 개혁 정치 그리고 문예부흥을 도모하기 위한 근시 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출입제한으로 인해 담 밖에서 촬영한 봉모당

규장각에는 소속 관리들이 숙집하면서 지낼 수 있도록 집무소를 마련해 두었다. 이를 이문원 혹은 내각이라 불렀다. 정조는 이곳에 자주 들러 신하들과 학문을 토론하고 신하들을 대상으로 시험도 치렀다 한다. 또 선원전에 제사가 있을 때에 이문원에서 재숙했다고 한다. 


왕권을 강력히 뒷받침하던 규장각은 정조가 승하하자 기능이 약화되면서 왕실도서관으로서의 역할에만 머물게 된다. 이후 고종(재위 1863-1907)이 재우l 5년째인 1868년에 다시규장각을 짓고 여러 서책을 모으기도 했으나, 일제에 의해 헐렸다가 2004년 복원되었다. 



규장각의 오른편에는 부속 건물인 검사청이 자리한다. 검사청은 서적의 출판과 수집.검토 등을 담당했던 기관으로, 정조는 박제가(1750-1805)와 이덕무(1741-1793)처럼 학식과 문예에 출중하나 이를 펼칠 방도가 막혀 있었던 서얼 출신을 선발해 관직을 기회를 열어 주었다. 학문 사랑이 유난했던 정조는 종종 이 곳을 방문해 검사관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시험을 치려 상벌을 내렸다고 한다. 검사관 역시 학문 진작과 함께 정조의 친위 세력 확대에 이바지했다. 



또 규장각 북쪽에 자리한 봉모당이 있다. ‘은하수’라는 의미가 담긴 운한문(雲漢門)을 통과하면 왕실의 관련 자료 보관소인 봉모당과 마주한다. 이곳에는 왕이 백성을 가르치고 교화하기 위해 지은 글이나 신항와 함께 국사를 논의하면서 적은 글을 보관했다. 봉모당 역시 규장가과 마찬가지로 후원에 자리했으나, 관리를 좀 더 수월히 하기 위해 정조 사후인 1657년(철종8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곳에 있던 장서들은 1959년 창경궁 장서각으로 옮겼다가, 1981년에 다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으로 이관했다.


# 봉모당 뜰 앞의 향나무





궁궐의 수목은 왕조의 흥망성쇠를 묵묵히 지켜보면서 역사와 함께해온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봉모당 뜰 앞에 자리한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94호) 역시 75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며풍상의 세월을 견뎌온 듯, 몸체와 줄기가 뒤틀려 마치 승천을 위해 용틀임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순조(재위 1800-1834)때 그려진 ‘동궐도’에서 도 이 향나무를 찾아볼 수 있다. 지금과는 달리 동서로 긴 타원형을 이루며 뻗은 가지들이 곧고 단아해 보인다. 향나무는 강한 향기를 지녀 정신을 맑게 하고 불기함을 물리친다 하여 깎아서 향으로도 사용했는데, 왕실의 제사 공각이었던 옛 산원전이 동편에 자리하고 있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다음 회에서는 옛 선원전 일원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사진-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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