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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문화재 328]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 외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5-15 11:19:17
  • 수정 2024-05-15 1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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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전기 에 건립된 승려 낭공대사의 탑비로 2015냔 보물로 자정됐다.


비신 높이 2m, 너비 0.96m. 원래 경상북도 봉화군 하남면 태자리태자사에 있었으나 폐사된 후 조선 중종 때 영천시 영천면 휴천리로 옮겨졌고, 다시 1918년 경복궁 근정전 회랑으로 비신만이 옮겨졌다. 현재는 2005년 용산구로 이전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비신 중간부가 절단된 이외에 상태는 좋다.



낭공대사는 신라 효공왕.신덕왕 때의 명승으로 법명은 행적(行寂), 속성은 최씨(崔氏)이다. 일찍이 불교에 뜻을 두고 가야산 해인사에서 불도를 닦았고 855년 천복사(泉福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871년 당나라에 건너가 15년간 명산을 두루 다니면서 수도하고 귀국한 뒤 효공왕의 존숭을 받으면서 석남산사(石南山寺)의 주지로 있다가 입적했다. 이에 경명왕은 낭공대사라 시호하고 백월서운이라 탑명을 내렸다.



비문의 앞면은 경명왕의 명으로 최인연(崔仁渷)이, 뒷면은 대사의 문하법손(門下法孫)인 석순백(釋純白)이 지었다. 입비 연대는 앞면 비문을 지은 뒤 세우지 못하다가 954년(고려 광종 5)에 순백의 후기(後記)와 함께 새겨 세웠다.


글씨는 자경(字徑) 2∼3㎝의 행서로 대사의 문인인 석단목(釋端目)이 김생(金生)의 글씨를 집자(集字)했다. 따라서 김생의 글씨를 연구함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자료이다. 



당시 유행하던 구양순류(歐陽詢類)의 글씨를 따르지 않고, 진(晉)과 남조(南朝)의 필의를 모방하면서도 획에 태세곡직(太細曲直: 굵고 가늘며 굽은 것과 곧은 것)의 변화를 일으켜 가히 신품(神品)이라 할 만하다.


한편 비의 측면에는 조선 중종 4년(1509)에 영천군수 이항(李沆)이 태자사지로부터 영천의 자민루(字民樓)로 옮겨온 사실이 박눌(朴訥)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사진-박광준 기자] 


# 백자 청화 난초무늬 조롱박모양 병/조선 18세기, 도자기, 1974년 박병래 기증, 보물


이 병은 조롱박처럼 생긴 도자기로 위, 아래의 모양이 다르다. 팔각형인 도자기 위에 목이 살짝긴 도자기가 얹혀 있는 형태 중에서도 보기 드물다. 우윳빛 몸체에는 푸른색 안료로 그린 무늬가 있다. 



팔각형인 아랫쪽에는 간결한 선으로 난초, 국화 등의 식물을, 위쪽에는 행운을 의미하는 동전과 부채로 마치 날아가는 것처럼 그려놓았다. 이 병을 기증한 박병래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의사이자 우리 문화 유산을 지키기 위해 열정적으로 도자기를 모은 수집가였다. 선생의 기증으로 중요한 청화백자들을 모두가 감상할 수 았게 되었다./사진-박광준 기자 


# 대방형불화염경보현행원품/고려 14세기 남색 종이에 금니, 2021년 이건희 기증, 국보



'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普賢行願品)'은 '화엄경' 중 보현보살(普賢菩薩)이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을 설법한 불교 경전이다. 이 책은 조선 세조 연간에 금속활자인 을해자로 찍었고, 충청도 단양 구인사가 소장하고 있다. 구인사 소장본은 2009년에 충청북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됐다.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경전이다. 이 책은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기본 사상으로 한다. '보현행원품'은 화엄경 가운데 보현보살이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을 설법한 부분이다. 이 책은 화엄경 가운데서도 판각이 가장 성행한 부분이었다. 구체적인 간행 배경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동아시아 불교 신행(信行)에 있어서 『대방광불화엄경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의 십종행원(十種行願)은 중요한 수행 방편과 사상으로 알려져 있다. 십종행원은 독립된 별행경 『보현행원품』으로 유통되었고, 주석서로는 유일하게 징관의 '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별행소(大方廣佛華嚴經普賢行願品別行疏)'가 있다.



을해자 금속활자본으로 귀중한 자료로, 세조 연간(1455~1468년)에 간행한 것으로, 을해자의 대중소자(大中小字)로 찍은 1권 1책이다. 사주단변으로 반곽(半郭)의 크기는 17.5×10.9㎝로 계선은 없고, 8행 17자로 주는 쌍행이다. 판심은 백구(白口)이며 상하 내향 흑어미가 있고, 판심제는 행원(行願)이다. 책은 23.6×14.1㎝의 크기이다.



권수제는 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고, 부(附)는 속질만보현다라니(速疾滿普賢陀羅尼)이다.


을해자는 1455년(세조 1)에 동(銅)으로 만든 활자로, 그 판본은 매우 드물다. 몇몇 사경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문화재로 지정된 사례가 없다./사진-문화재청


# 묘법연화경 (紺紙銀泥 妙法蓮華經)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법화경'은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기본사상으로 하는 우리나라 천태종의 근본경전이다. 또한 '법화경'은 화엄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의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쳤고, 삼국시대이래 가장 많이 유통된 불교경전이다.



이 책은 후진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것을 고려 충숙왕 17년(1330)에 이신기가 옮겨 쓴 것이다.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고,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28.3㎝, 가로 10.1㎝이다. 



표지에는 제목이 금색 글씨로 쓰여 있고, 주위에 4개의 화려한 꽃무늬가 금.은색으로 그려져 있다. 본문은 검푸른 색 종이 위에 은색 글씨로 썼고, 곳곳에 손상을 입은 흔적이 보이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7권의 끝부분에 나오는 기록을 통해 이신기가 살아 계신 아버지의 장수와 돌아가신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화경을 정성껏 옮겨 쓴 경전들 중에 비교적 만들어진 연대가 빠르고, 특히 7권이 모두 갖추어져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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