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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32] 2020 서울연극제 극단 실한, 신명민 연출 ‘혼마라비해?’
  • 박정기 본지 자문위원
  • 등록 2020-05-07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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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단 실한의 김연미 원안, 공동창작, 신명민 연출의 ‘혼마라비해?’를 관극했다.


신명민(1984~)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우리별, 라스낭독극장, 혼마라비해? 라라미 프로젝트 등을 연출한 창작집단 LAS 소속 연출가다.


이 연극은 2018년 설치극장정미소에서 김연미 작 신명민 연출로 공연된 바 있고, 이 작품을 극단 신한 단원들이 공동창작으로 보강을 해 2020년 서울연극제 공연작품으로 선정되었다.


무대는 상수 쪽에 잡화점이 있고 상품진열대와 가득 찬 상품이 보인다. 진열대 위에 작은 TV 수상기가 놓여있다. 하수 쪽은 장지문과 툇마루가 놓이고 일본식 다다미 방으로 설정된다. 장지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배경 쪽으로 이동시키면, 방이 확대되고, 이부자리를 펴거나, 음식상을 들여오기도 한다. 확대된 방의 상단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을 나란히 붙여놓았다.


영주는 극작가인 동시에 일본 오사카 거주 동포 자이니치의 생활과 사고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작가 겸 등장인물 겸 해설자 역할을 한다. 2009년, 24살이었던 영주는 동포 극단의 한국어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 일본 오사카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극단에 있던 지숙과, 지숙이 살던 하숙집인 잡화점의 주인과 가족을 만난다. 그들의 소탈한 인간적 면모와 사고 그리고 조선족으로써의 의식과 갈등이 극 속에 그려진다.


우선 영주가 하숙집 겸 잡화점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인간적인 따뜻함이다. 주인인 광식은 영주가 한국인이라는 말에 반가워하며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면서 정성껏 음식대접을 한다. 게다가 영주가 한국에 갈 때까지도 잡화점 대표음식을 선물로 준다. 영주 역시 자연스럽게 주인 광식과, 광식의 아들 현규, 중학생 우진과 어울리면서 가까워진다. 


그러나 저녁 식사를 하는 방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을 본 영주는 충격을 받고 몸을 떨기까지 한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기까지 한다. 잡화점 주인과 가족 그리고 세 들어 사는 지숙은 어안이 벙벙한 모습을 보인다. 



원인이 초상화라는 걸 안 식구들은 일본 거주 외국인 등록 법에 따라 할아버지 때부터 일본에 거주했기에 한국국적이 아닌 조선족으로 등록을 했고, 조선으로 등록을 했기에 북으로부터 몇 십 년 동안 작지만 경제적 지원을 받았기에 북 지도자의 초상을 걸어놓았을 뿐 이념이나 사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이야기 한다. 나아가 자신의 가족은 북한 사람도, 한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닌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영주에게 이해시키려 든다. 


장면이 바뀌면 영주가 지숙과 우진에게 정확한 발음을 가르치는 장면이 연출되고, “니가 밉다”를 “니가 미브다”로 계속 발음하는 것 등을 바로 잡아 주기도 한다. 「아리랑」 노래라든가  ‘골품 제도’의 발음을 교정해 주는 장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민족의 뿌리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잡화점 주인 광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재일거류동포가 조선인과 일본인의 경계선상에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한다. 거기에 일본에서는 재일거류동포를 ‘조센징’이라고 하면서 혐한 시위가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이를 비판하는 영주에게 광식은 그들을 ‘쪽바리’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하면서 고통에 대한 체념의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영주는 조선인과의 기록들을 정리하여 2011년에 한국으로 돌아간다. 한국에서는 블로그에 기록들을 올리고, 자이니치에 관한 희곡을 쓰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현규가 유명한 록스타가 되었다는 좋은 소식이 들리는가 하면 현구는 한국에서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를 얻었지만, 독도에 관한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해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비난받는다. 사과해도 쉽게 용서받지 못하는 등, 실력과 상관없이 록스타로서의 그의 존재는 한국이나 일본에 속하지 않은 국적 때문에 인정받지 못한다. IMF 때 자이니치들이 몇 천억의 성금을 모아 한국에 보냈는데도 인정받지 못하듯이, 조선이라는 단어에 대한 편견이 어는 정도인지 작품에서 강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주와 지숙과의 갈등도 심해진다. 우진이 한국 대학교에 가고 싶어 영주에게 상담을 요청하자 영주는 처음에는 찬성하지만, 지숙이 한국에 가 봤자 ‘반쪽바리, 빨갱이’라는 말을 듣고 아파서 돌아온다고 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더 이기적이고 편견이 심하며 영주 역시 마찬가지라고 비판한다. 또 지숙이 수학여행으로 평양에 갔을 때 사람들이 가족처럼 반기고 따뜻하게 대해줘 체제나 이념과는 상관없이 기뻤고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며 우진에게 한국 국적을 쉽게 선택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현규는 ‘일본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겠다’라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해 실패한 첫 번째 시도를 딛고 일본에 귀화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귀화에 성공한 지숙과 라트비아의 리가로 간다. 그곳은 동양인이 적은 곳으로서 동양인 자체에 대한 차별은 있을지언정 조선인 일본인 한국인 사이의 구별은 생각할 여지가 없는 나라다. 


영주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홀로 남은 광식은 잡화점에서 작은 텔레비전을 통해 한일전 야구를 본다. 그러면서 “아무나 이겨라”라고 허탈하게 지꺼린다. 



마지막 장면은 우진은 일본국적으로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서 영화를 한국에 배급하는 회사에 다니고, 회사 동료인 여자 친구와 한국 여행을 온다. 영주와는 우진으로서 재회했지만 일본에 귀화한 삶에 대해 영주가 후회하지 않는지 묻자 우진은 영주가 자신을 말려 줘서 좋았고, 긴 시간 고민하고 선택했기에 ‘한국말 잘하는 일본 사람’으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고 대답한다. 결국 광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 국적을 선택해서 살게 된다. 그리고 만족한다고 이야기한다. 영주는 우진을 만난 뒤 안도감과 동시에 죄책감을 느낀다. 이는 현실을 해결하지 못한 답답함과 상처를 주었다는 미안함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으로서 작가의 윤리적인 감정이기도 하다. 


제목의 ‘혼마라비해?’의 혼마’는 ‘진짜’라는 일본말, ‘라비’는 ‘좋다’는 라트비아어, ‘해’는 한국말로서 삼국의 언어가 섞인 것이다. ‘진짜 좋아해.’ 또는 ‘진짜 좋아해!’가 아닌 ‘진짜 좋아해?’가 제목이라는 것은, 즉 마침표나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가 붙어 있다는 것에서 자이니치 문제의 해결이 아닌 유보 상태로 결말을 남겨 두었다는 의문부호가 된다.


김수민이 영주, 서미정이 멀티, 우혜민이 지숙, 이승헌이 광식, 이종찬이 우진, 이준희가 현규 등으로 출연해 기량을 다한 열연과 호연으로 관객을 연극에 몰입시키고 갈채를 받는다.


무대 김다정, 조명 정하영, 음악 조라승, 음향 이예은, 의상 김경아, 분장 이지연, 영상 강신구, 조연출 이다예 김지수, 일본어지도 김유미, 무대감독 이효진, 인쇄물디자인 EASTHUG, 사진 박태양 김 솔, 티켓매니저 주예슬, 프로듀서 임예지, 제작총괄 정현준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2020년 서울연극제 극단 실한의 김연미 원안, 공동창작, 신명민 연출의 ‘혼마라비해?’를 창의력과 연출력 그리고 연기력이 조화를 이룬 관객의 기억에 길이 남을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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