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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34] 2020 서울연극제, 윤광진 연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 박정기 본지 자문위원
  • 등록 2020-05-15 02: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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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2020 서울연극제 공연제작센터의 최인훈 작 윤광진 연출의 ‘달아 달아 밝은 달아’를 관극했다.


최인훈은 1934년에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서 8.15 해방 이후 함경남도 원산으로 이사하여 그 곳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이어 원산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월남해 목포고등학교를 거쳐서 서울대 법대에 재학했으나 중퇴했다. 


1959년 ‘자유문학’에 ‘그레이구락부전말기’와 ‘라울전’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9월의 다알리아’ ‘우상의 집’ ‘가면고’ 등을 발표했고 1960년 11월에 ‘새벽’에 중편소설 ‘광장’을 발표했다. ‘광장’은 최인훈 소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소설로서 남북한 이데올로기를 동시에 비판한 최초의 소설이자 전후문학을 마감하고 1960년대 문학의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그 후 ‘회색인’ ‘서유기’ ‘총독의 소리’ 연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태풍’ 등 많은 소설을 발표했다. 


오랜 동안 소설 창작을 중지하고 희곡 창작에 전념하기도 했는데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등의 작품은 한국의 신화적인 세계를 통해서 민족의 본성을 탐구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94년에는 자기 존재의 실존적 의미를 탐구한 자전적인 장편소설 ‘화두’를 발표해 이산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동인문학상과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 중앙문화대상 예술부문 장려상, 서울 극평가그룹상 등 많은 상을 수상했다. 1979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최인훈 전집’을 출간했다.1977년부터 2001년 5월까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했고, 퇴임 이후에도 명예교수로 예우받았다. 2018년 7월 23일 별세했다. 


윤광진(1954~)은 서강대학교와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 바버라 대학원 출신이고, 우리극 연구소 소장, 용인대학교 문화예술대학 뮤지컬 연극학과 교수다.
 
1994년 동아연극상 연출상, 작품상, 2007년 서울연극제 작품상, 2013 김상열 연극상, 한국연극대상을 수상한 우수한 연출가다. ‘혈맥’ ‘세자매’ ‘아메리칸 환갑’ ‘못생긴 남자’ ‘로미오와 줄리엣’ ‘그림자 아이’ ‘츄림스크에서의 지난여름’ ‘황금용’ ‘리어왕’ 등 연출작에서 출중한 기량을 발휘했다. 기량이 부족한 연출가들은 무대장치에 힘을 기울이지만 윤광진 연출은 배우들의 연기력 위주로 작품에 생명력을 부어 넣는 실력파인데다 출중한 미남 연출가다.


최인훈의 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에서는 주인공 심청의 여성성을 밝히고, 심청의 희생과 비극적 결말이 갖는 근대적 의미를 표현했다. 1978년에 발표된 최인훈의 ‘달아 달아 밝은 달아’는 고전소설 ‘심청전’을 패러디한 작품이긴 하지만, 원전에서 주요 인물과 개안을 위한 인신공양이라는 기본 모티프만을 차용했을 뿐, 작품의 구성과 결말에 있어서는 상당히 변용된 작품이다. 


실제 이 작품에는 급격한 산업화, 자본화라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나타난 시대적 상황이 상징적으로 반영돼 있다. 지금까지 심청의 성격과 희생의 의미를 신화적, 원형적, 제의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았던 기존의 논의와는 달리, 여성 주의적 관점에서 심청의 여성성을 분석해 작품 속에서 희생과 비극적 결말의 의미를 구체적 그려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심청의 여성성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부각되어 형상화된다. 육체적인 측면에서는 물화되고 식민화된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성이 하나이고,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여성의 도덕적 미덕으로 대변되는 심청의 숭고한 정신성이 다른 하나이다. 


‘용’과 ‘해적’으로 상징되는 남성들이 관능적이고 육체적인 속성을 지닌 반면 그들의 육체적 폭력과 성적 착취를 온몸으로 견뎌낸 심청이 시종일관 드러내는 것은 부모에 대한 효심과 김 서방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다. 이는 세속의 삶과 (남성들의) 육체적 욕망을 초월할 만한 숭고한 정신적 가치로 묘사된다. 


결말 부분에서 심청이 재현하는 숭고한 정신성은 남성들의 무자비한 성적 폭력을 온 몸으로 견뎌낸 후 눈 먼 미치광이로 고향에 돌아온 심청의 실제의 삶을 더욱 비극적으로 고양시키는 상징적 표현에 있다. 


그리고 이는 여성성의 문제를 여성들의 실제 경험과 삶으로부터 소외, 분리시키는 문제를 양산했다. 여성 주의적 관점에서 심청이 재현하는 여성성의 두 가지 면모, 즉 성적 대상으로서의 육체성과 그것을 초월할 만한 숭고한 정신성은 남성들의 편견으로 남성 중심 사회의 공고한 성별 상징의 전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심청의 두 가지 여성성은 사회 전체에 만연된 자본주의적, 남성 중심적 성별 이데올로기를 드러냄과 동시에 근대화 과정 속에서 파생된 한국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근자에 이르러 원작의 변형 공연이 많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90%가 변형된 작품으로 공연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희 희곡 대부분이 원작을 차용해 변형시킨 작품이다. 프랑스의 쟌 다크를 베르톨트는 자신의 작품에서는 식품업계 대표를 돕는 여인으로 등장시켜 성공을 거두는가 싶다가 실패해 화형을 당하는 결말로 그려냈다. 


극단 자유의 김정옥 연출은 정절의 표상인 춘향이를 주제로 한 연극이 아닌 대단원에서 춘향이가 이 몽룡을 떠나 새 사랑을 찾으러 떠나는 결말로 그려냈다. 최인훈은 왕자호동과 낙랑공주에서 소재를 따온 작품에서도 낙랑공주를 쌍둥이로 설정해 발표 공연하기도 했다. 


무대는 도입에 배경 가까이 백색 조명과 스모그가 끼는 상태에서 출연진의 합창에서 시작해 차츰 무대 중앙으로 동선을 이동시키고 사각의 중간 가리개를 사용해 조명을 황색으로 변화시키는가 하면 대극장의 회전무대를 사용하기도 한다. 대단원은 객석 가까이에서 노파가 된 주인공이 젊은 시절 사랑하던 남성이 준 거울을 꺼내 회상에 잠기는 장면에서 마무리를 한다.


장두이가 심봉사, 김정민이 심청, 황연희가 뺑덕어멈, 김태윤이 김서방, 곽수정이 매파, 임향화가 노파심청, 그 외 노영성, 문혜주, 김양희, 배병휘, 김수빈, 서보성, 남은주 등이 출연해 호연과 열연 그리고 노래와 무용으로 열정을 다한다. 


무대 이태섭, 조명 김영준, 의상 인형 정경희, 음향 최환석, 분장 이은총, 소품 이경표, 조연출 박지영 윤지원, 인형제작 서보성, 움직임 이경은, 노래지도 황승경, 조명오퍼 김유빈, 음향오퍼 남궁민지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2020 서울연극제 공연제작센터의 최인훈 작 윤광진 연출의 ‘달아 달아 밝은 달아’를 세계시장에 선보일만한 독특한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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