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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공연산책4] 극단 미연, 김순영 연출의 악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19-05-29 02: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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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그린씨어터에서 극단 미연의 임선규 작, 김상열 각색, 김순영 연출의 악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관람했다.


예그린씨어터에서 극단 미연의 임선규 작, 김상열 각색, 김순영 연출의 악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관람했다.


임선규(1912~1970)는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임승복(林勝福)이다. 강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극단 조선연극사에서 연극을 시작한 뒤 동양극장, 극단 아랑을 대표하는 대중극 작가로 큰 인기를 누렸다. 그의 작품들은 신파극 전형인 가정 비극, 또는 화류 비극에 입각해 있으나, 이를 ‘잘 짜여진 극(Well-made play)’이라는 구성 기교에 담아 한국적 멜로드라마의 모범을 확립했다. 


또한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회화체를 능란하게 구사했다. 대표작으로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36), ‘동학당’(1941), ‘빙화’(1942) 등이 있다. 해방 후에는 문예봉(文藝峰)을 뒤따라 월북했으나 그 뒤 종적은 불분명하다. 


김상열(1941~1998)은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1967년 동문들과 함께 만든 극단가교의 초기 멤버로 시작, 곧바로 무대현장에 뛰어들었다(추후 상임연출과 대표(‘75) 역임). 풍부한 무대현장 경험은 생동감 있는 창작열로 이어져 「까치교의 우화」(문공부공모 희곡당선 ’75), ‘길’(제7회(’77 년도) 도의문화저작상)을 시작으로 연출의 시각으로 작품을 쓸 수 있는 현장성 있는 극작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1978년 현대극장 상임 연출로 자리를 옮기며 전문성을 띤 대형 무대를 넉넉하게 만들어 냈다. 미국 뉴욕 라마마극단(’81)에서 1년간 연수를 받고 돌아오기도 한 그는 우리 것, 우리의 작품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언챙이곡마단’(’82)을 인상 깊게 무대에 올리기도 했으며, 농익은 창작 열은 작,연출의 무대를 마음껏 만들 수 있는 우리극단 마당세실극장(대표)으로 자리를 옮기며 계속되었다.(’84)   


1988년, 드디어 자신의 극단神市를 창단하고 작고 시까지 이끌어가면서 창작극, 창작 뮤지컬, 마당놀이, 악극 등 왕성한 창작과 힘찬 무대를 만들며 TV극본을 비롯,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 대전 엑스포, 세계 잼버리대회 등 국제적인 문화행사에도 구성대본과 총연출을 맡아 탁월한 능력을 유감없이 분출하였다. 



그는 극작가 겸 연출가로서 수많은 창작극과 더불어 우리 민속연희의 생명체였던 풍자와 해학을 주류로 관객과 함께 만들어 가는 놀이마당의 현장성을 예술성 있는 마당놀이로 절묘하게 승화시켜 놓았고, 동심을 잃지 않았던 그는 어린이 뮤지컬 분야의 개척에도 온 힘을 기울였으며, ’90년대에는 현대로 끌어들인 악극작업으로 대중극의 선풍적 바람을 일으켜 놓았다. 


다양한 장르의 개척과 발전에 선구적 역할과 살아 있는 희곡으로의 완성을 위해 매진했던 그는 누구보다 무대현장과 가장 직결된 창작 활동을 한 부지런하고 능력 있는 예술가였다. 


김순영은 극작가 겸 연출가로 극단 미연의 대표다. 일본소재대학 연극과를 졸업하고, ‘사랑을 주세요’ ‘달님은 예쁘기도 하셔라’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 ‘사랑이 가기 전에’ ‘살려 주세요’ ‘삼류배우’ ‘주인공’ ‘사랑의 방정식’ 그 외의 다수 작품을 쓰고 연출했다. 김순영이 손을 대면 작품이 섬세하고 감성적이고 아름답게 빚어진다.


1936년 봄, 서울의 ‘동양극장(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던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문극장. 1935년 설립. 객석 600여 석)’에서 극단 청춘좌가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공연했다. 


임선규(1910년 출생 추정, 1970년 사망 추정. 연극인.극작가)가 1936년에 쓴 4막5장의 희곡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기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화류비련(花柳悲戀.기생의 슬픈 사랑을 다루는 작품류)의 멜로 드라마였고, 동양극장의 주된 레퍼토리였다. 



원작의 줄거리는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오빠의 공부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홍도는 스스로 기생이 된다, 오빠는 홍도의 도움을 받아 순사가 된다, 홍도는 기방 일을 그만두고 오빠의 친구와 결혼을 한다, 시어머니는 기생 출신 며느리를 못마땅해 하고 마침내 쫓아낸다, 홍도를 오해한 남편마저 부잣집 딸과 재혼을 하고 홍도는 절망한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홍도는 남편의 새 여인을 살해한다, 그제서야 홍도의 결백이 밝혀지고 남편도 오해를 풀지만 홍도는 순사인 오빠에 의해 손목에 수갑을 찬 채 경찰서로 끌려간다.... 


당시 조선인 관객들은 이 연극을 통해 일제에 핍박받는 현실세계를 반추했고, 홍도의 삶에 자신의 삶을 대입시켰다. 이 연극은 조선 연극 사상 최장 공연 기록을 세웠다. 기생이 주인공이다 보니 기생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높았다. 권번 기생 500여 명이 일시에 연극 구경에 나선 날에는 서울의 요정이 텅텅 비었다는 일화도 전해져 온다. 주인공 홍도 역을 맡았던 여배우 차홍녀(1919∼1940)의 인기를 말하는 건 새삼스럽다. 


이 연극은 1939년에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명우 감독(1901년∼6.25때 납북 이후 생사 미확인. 촬영기사.영화감독. 1935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인 ‘춘향전’의 감독.촬영.편집)이 메가폰을 잡고, 차홍녀가 영화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사람들은 다시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홍도야 우지마라’는 영화의 부 주제곡이었는데, 영화가 히트를 치면서 당연히 주가가 높아졌다. 1939년 4월에 음반이 발매됐는데, 수만 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동양극장 전속 극작가였던 이서구(1899∼1982. 극작가 겸 연출가)가 노랫말을 쓰고, 김준영(1907~1961. 대중음악 작곡가)이 작곡했다. 영화가 연일 대만원 사례를 이루면서 ‘홍도야 우지마라’는 대히트곡이 됐고, 김영춘은 당대 최고의 명가수로 부각되었다.


무대는 배경에 산수화 같은 첩첩산중이 펼쳐져있다. 그 앞으로 6폭 병풍을 하나하나 떼어놓은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진 가리개가 세워져 있고, 평풍 같은 가리개를 이동시키면, 하수 쪽에 홍도 아버지의 초라한 방이 보인다. 방에는 쪽마루가 놓이고, 방문을 여닫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홍도 시댁인 갑부 최 씨 댁은 탁자와 의자 그리고 안락의자를 배치하고, 홍도가 기생노릇을 하던 유곽은 상수 쪽 휘장 사이로 등퇴장을 한다. 하수 쪽 객석 가까이에 수도가 있다.


각색한 작품줄거리는 홀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홍도와 철수. 중병에 걸린 아버지와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고 방황하는 오빠를 위해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홍도. 홍도는 부잣집 아들 영호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되는데,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온갖 수모와 구박을 받으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중 원래 영호의 약혼녀였던 해정과 시어머니 그리고 시누이 봉옥, 이 세 사람의 가짜편지로 홍도는 불륜을 저지른 것으로 되어 시댁에서 쫓겨나고 만다. 



그로인해 영호는 해정과 결혼을 약속하게 되고, 홍도는 두고 온 아기가 보고 싶어 시댁을 찾아오는데, 또다시 냉대와 혹독하게 봉변을 당하게 되자 홍도는 우발적으로 해정을 칼로 찔러 살인을 하고 만다. 이 광경을 더 이상 참고 볼 수가 없어 최 씨 댁 노복은 허위편지와 관련되어 홍도가 쫓겨난 사실과 그 동안 두 사람이 서로 보낸 편지를 읽지 못하도록 감추었던 사실을 고백한다. 


결국 홍도가 불륜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음이 밝혀지지만, 저지른 살인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 때 살인현장에 출동한 순사와 검사가 등장한다. 그런데 검사가 바로 고시에 합격한 홍도의 오빠이고, 오빠가 살인현장에 등장해 누이동생의 억울한 사정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살인을 한 홍도를 결국 연행해 갈 수밖에 없는 비통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대단원에서 부르는 홍도야 울지마라~· 오빠가 있다~~ 는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공연은 끝이 난다.


연극은 도입에 해설자가 출연해 멋들어지게 신파조의 대사로 해설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아버지의 병 치료와 오라비의 학비를 벌기 위해 홍도는 유곽으로 들어간다. 선배 기생의 노래가 실제 가수에 방불하고, 거기서 만나게 된 갑부 최 씨 댁 아들과 만난 홍도는 구애를 받게 되고, 두 사람은 연모의 정을 노래로 표현한다. 시댁에서 시어머니의 노래와 장면전환 할 때 해설자의 노래가 관객의 갈채를 이끌어 내고, 대단원에서 부르는 주제가는 관객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이정섭이 홍도 아버지, 박승태가 홍도 시어머니, 정상철이 홍도 시아버지, 이인철이 해설자 겸 노복, 우상민이 우두머리 기생, 박용기가 홍도의 남편, 박호석이 홍도, 민충석이 홍도 오빠, 김미경이 오빠의 새 처, 김현정이 올케, 김태형이 순사, 박화영이 동료기생으로 출연한다.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물론 놀라운 노래솜씨로 극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김혜영이 홍도, 오규석이 해설자 겸 노복, 박흥열이 홍도 아버지로 더블 캐스팅되어 출연한다. 차제에 이인철과 우상민은 가수 겸업을 해도 좋으리라는 생각이다.


예그린씨어터 극장장 최한호, 음향디자인 한 철, 아코디언 유을성, 색소폰 고현길, 무대디자인 신종한, 무대제작 김동경, 음향감독 최영길, 홍보 김다슬, 조명감독 김혜란, 디자인 남경완 등 스텝진의 노력과 기량이 드러나,  극단 미연의 임선규 작, 김상열 각색, 김순영 연출의 악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연출가와 출연자의 기량이 조화를 이룬 한편의 걸작 악극으로 탄생시켰다.

 

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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