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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본소득의 억지 주장, 인공지능 때문에 대량실업?
  • 정승일/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이사
  • 등록 2021-03-04 21:4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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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항공우주국(NASA)이 발사한 화상 탐사 로보(이동형 탐사 로봇)가 2월 19일 화성 표면에 안전하게 착륙하는 풍경을 촬영한 동영상을 흥미진진하게 본 이들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화성에서 날아다닐 초소형 헬리콥터가 조만간 비행 연습을 시작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 시도가 성공할 경우 또다시 많은 이들이 감격할 것이다. 소년 시절 한때 우주선 비행사가 되고 싶었던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화성 탐사 로봇과 헬리콥터에는 자율주행과 자율비행을 담당하는 인공지능(소프트웨어와 CPU, 센서 등)이 탑재되어 있다. 게다가 2021년 현재 가장 앞선 기술의 인공지능이 체현되어 있다.

# 화성탐사선과 인공지능

화성 탐사 로봇과 헬리콥터는 화성 표면에서 많은 기능을 스스로 수행하고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먼 지구로부터 발신되는 지시와 판단을 일일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게끔, 반복적이거나 단순한 많은 작업들을 스스로 수행하도록 프로그래밍(인공지능)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화성 탐사 로봇과 헬리콥터는 일체의 작업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미국 NASA에는 화성 탐사 프로젝트를 관리.운영하는 수백~수천 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조직된 관제센터(mission control)가 활동하고 있다.

화성 탐사 프로젝트 전체를 지난 1960년대부터 담당해온 아마도 수천 명의 Mars mission control 팀이 있을 것이고, 또한 그 거대 프로젝트의 일부로, 이번에 화성 표면에 안착한 퍼서비어런스 탐사선 프로젝트만을 따로 담당하는 아마도 수백 명의 Perseverance mission control 팀이 있을 것이다. 과연 이들의 도움 없이 화성 탐사 로봇과 헬리콥터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왜 그럴까?

임무 달성에 실패한 아폴로 13호에 관한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1995년)를 본 이들이 많을 것이다. 1970년에 NASA가 발사한 달 탐사선 아폴로 13호는 본래 달의 표면에 착륙할 계획이었으나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 달로 가는 도중에 예기치 않은 고장이 우주선에서 발생하여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지구로 생환하였다. 실제로 우주 탐사에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발생한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기존의 과학지식과 기술지식으로 이미 예측된 사항인데도 인간과 조직(기업조직, 사회조직, 정부조직 등)의 실수와 오류 등으로 발생하는 사고이다. 가령 본래의 설계도면대로 제작되지 않은 형상과 소재의 부품으로 인해 온갖 사건과 사고가 발생한다. 둘째는 기존의 과학지식과 기술지식에서는 예상되지 않은 사건과 사고들이다. 이 둘 중의 어느 원인으로 발생하였건, 사건과 사고가 발생할 경우, 우주선 또는 탐사선에 탑재된 컴퓨터(인공지능)로서는 자율적 대처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두 경우 모두 해당 소프트웨어를 짠 프로그래머의 머릿속에서 사전에 예상 또는 구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폴로 13호에서 발생한 기계적 고장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NASA에 근무하는 수백~수천 명의 과학자와 기술자(상당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능력을 겸비)들이 해법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 한다.

1970년에 발생한 아폴로 13호 실패로부터 51년이 지난 오늘날이라고 다를까? 과연 오늘날의 인간과 기업조직이나 정부조직들은 완벽한 무오류와 무실수의 화신들일까? 더구나 오늘날 우리 인류가 우주와 물질, 생명 등에 관하여 완벽한 과학지식과 기술지식을 획득하여 마스터 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기에 온갖 예기치 않은 사건과 사고는 여전히 발생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앞으로 1백 년 후에도 그럴 것이며, 또한 1천 년이나 1만 년 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알파고의 승리로 대량실업이 불가피?

많은 이들이 이세돌과 알파고 간의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가 이긴 사건(2016년)을 기억하면서 “보라,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에 승리하였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따라서 인간노동을 대체해 나갈 터이니 대량실업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먼저, 바둑의 게임 규칙(rule of game)은 단순하다. 현재의 바둑 게임이란 평면 위에 특정한 숫자의 가로와 세로로 줄을 평행선으로 긋고, 그 위에서 흰 돌과 검은 돌이 대결하는 게임이다. 게임의 룰이 사전에 정해져 있기에 인공지능은 미리 수많은 경우의 수를 사전에 예상(계산)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게임의 룰이 변화한다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1) 바둑판의 가로줄 숫자가 연속적으로, 정규적으로 증가한다면? (2) 바둑판의 가로줄 숫자가 불규칙하게 증감하며 더구나 불규칙 변화의 증감률에 관하여, 그 원인에 대하여 인류가 아직 아무런 과학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 경우, 알파고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용지물에 불과할 것이다. (1)의 경우 알파고는 자신을 만들어준 프로그래머들(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컴퓨터 수학자)이 해당 현상을 반영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줄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할 것이다. (2)의 경우, 프로그래머들조차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손 놓고 대기하면서, 과학자들이 해당 현상의 원인 규명과 함께 그것에 대처하는 방안에 관한 확실한 과학지식을 탐구해낼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할 것이다.

# 인공지능은 일자리 창출의 축복이 될 수도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양면적이다. 한편에서는 인간노동, 즉 일자리를 불필요하게 만든다. 그 분야는 게임의 룰은 이미 확실하게 파악되어 알려져 있고(과학지식 및 기술지식, 경제지식과 경영지식, 문화지식 등의 형태로) 따라서 그 각종 지식을 내재한(embedded) 알고리듬의 프로그램(인공지능)을 프로그래머들(인간 노동력)이 이미 개발했거나 또는 조만간 개발할 것으로 보이는 영역들이다. 주로 반복적인 노동과 작업이 여기에 해당할 것인데 제조공장과 창고 등의 육체노동 현장만 아니라 회계·법무·금융 등의 사무·관리 노동의 현장에서도 인공지능이 인간노동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제아무리 겉보기에는 복잡한 정신노동(가령 변호사 또는 의사, 금융투자전문가의 업무)의 경우에도, 그 노동을 관통하는 작업원리(게임의 규칙)가 동일하고 반복적으로 계속된다면, 알고리듬으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인공지능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원동력이 된다. 앞서 보았듯이, 최신의 최고 기술 인공지능을 탑재한 화성 탐사 로봇과 헬리콥터가 화성 표면에 착륙하는데, 성공하였기에 미국의 NASA에는 수백~수천 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 프로그래머들이 채용되어 근무한다. 더구나 NASA의 화성 탐사 업무를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는 수천 명의 대학교수 과학자들이 미국과 전 세계에 있다. 또한 화성탐사선에 사용된 온갖 부품과 소재(전기소재, 금속소재, 화학소재 등)를 새로 개발하여 납품한 수천~수만 개의 납품 회사들이 있다. 이들의 노동(과학적 발견과 기술적 개발)은 여전히 자동화나 인공지능화가 불가능하며, 이것은 앞으로 수백~수만 년 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한편으로는 틀림없이 저지식-저숙련의 노동을 자동기계인 인공지능체로 대체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인공지능 체현물과 소재·부품을 제작·제조하는 인력의 노동력과 인공지능의 알고리듬을 개발하는 개발자의 노동력, 그리고 그 알고리듬에 내재된 온갖 지식(과학, 기술, 문화, 경제, 경영 등)의 발견과 발명에 나서는 인간 노동력에 대한 수요(일자리 수요)를 창출한다. 또한 해당 인공지능 체현물(자동기계)은 수시로(불규칙하게) 고장이 나고 또한 정기적으로(규칙적으로) 점검·검사받아야 하는 까닭에, 그 고장의 수리와 검사·점검을 수행하는 인간 노동력에 대한 수요 또한 창출한다. 한마디로, 고지식·고숙련 인력에 대한 노동수요(일자리 수요)를 창출한다.

# 인공지능이 없애는 일자리와 창출하는 일자리, 어느 것이 더 많을까?

일각에서는 인공지능이 일자리에 미치는 양면적 효과가 맞다 하더라도 인공지능이 없애버리는 일자리가 새로 창출하는 일자리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또는 많을 수밖에 없기에), 대량실업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19세기의 많은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착취하고 피폐하게 만드는 시장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그렇게 계속 가게 되면 자본주의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학자로서의 마르크스도 그중의 한 명이었는데, 그는 기계(즉 자동기계)의 발전이 일자리 축소(즉 대량실업)와 전반적 빈곤화를 가져오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자본주의를 종말로 이끌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경제 현실을 보자. 마르크스는 기계와 자동기계가 발전하면서 그것이 ‘기존’ 산업에서 일자리(엄밀하게는 총 투입노동시간)가 줄어드는 면만을 보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신기술의 발전이 ‘신산업’을 낳는다. 19세기의 경우, 자동기계(면방직기 등)의 발전이 진행되는 한편에서는 그 자동기계와 직간접으로 연계된 증기기관과 기차, 철도, 제철·강철, 선박.조선 등을 제조하는 산업발전(신산업 포함)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발전과 변화는 새로운 산업 일자리의 탄생과 성장을 의미한다.

물론 마르크스는 그의 '자본론'에서 이렇듯 신산업이 성장하는 현상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경제학이 아닌 마르크스주의의 경제학은 자본주의의 필연적 붕괴론을 예단하고 기대한 나머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이러한 산업발전과 산업 일자리 창출 현상에 대해 대체로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에 본격적으로 주목한 경제학자는 20세기 초중반의 슘페터였다.

21세기의 오늘날도 19세기와 비슷하다. 화성 탐사 로봇과 헬리콥터는 오직 인공지능(소프트웨어) 하나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 로봇과 헬리콥터의 팔과 바퀴, 날개, 동력(태양전지와 배터리) 등을 구성하는 최신의 기술을 탑재한 부품과 소재를 개발하고 제작·제조하여 납품한 수많은 기업과 산업체들이 있다. 화성 표면과 대기의 극한 상황을 가정하고 설계된 그 부품과 소재의 신규 개발과정에서 획득된 수많은 기술지식과 과학지식 등을 향후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사용 또는 전용 가능한 기술로 성장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벤처기업이 창업하고 기존 대기업들도 신기술 사업부를 육성하고자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인 인터넷과 스마트폰, 노트북과 PC, 전자렌지와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자율주행·자율비행 기술 등 수많은 기술이 미국의 아폴로 탐사와 우주탐사, 그 밖에 수많은 군사 관련 프로젝트에서 기원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인공지능에서 가장 앞선 미국이 하필이면 우주·국방 관련 연구와 탐사, 과학연구와 기술개발에서 가장 앞선 나라이며, 그것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최고 기술의 벤처창업과 나스닥 상장에서도 가장 앞선 나라라는 것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만약 ‘인공지능 기술이 대량실업을 불가피하게 초래한다’는 테제가 맞다면, 인공지능 기술이 가장 앞선 나라인 미국의 경제에서 가장 먼저 대량실업이 발생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가장 앞선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산업 현장인 미국 실리콘벨리의 많은 IT기업가들이 ‘인공지능발 대량실업’의 가능성을 요즘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오늘날 미국에서 발생하는 대량실업의 원인이 인공지능 때문이라고?

다들 알다시피, 오늘날 미국에서 급격하게 증가한 대량실업은 무엇보다 먼저 코로나19 펜데믹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대량실업 문제는 해결될까? 별로 그렇지는 않다. 미국의 경제구조는 1980년대에 시작된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의 지배와 통치 하에서 과거의 산업자본주의가 쇠퇴하고 금융자본주의(월스트릿 자본주의)가 융성하였다. 주주자본주의가 여전히 미국 자본주의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것은 일자리 창출보다는 일자리 감소(대량 해고)를 찬양하고(주가 상승), 장기적인 모험적 투자는 정부투자(NASA와 국방부, 보건성)에 맡기고 자신들(민간기업들)은 오히려 신규 실물투자(R&D투자 포함)를 줄여왔다. 문제는 특정 경제정책이지 특정 기술이 아니다.

# 기술결정론과 신자유주의 면피론

특정 기술(인공지능) 때문에 특정한 경제사회 현상(대량실업)이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기술결정론이라 부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노동자를 해고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권력(의사결정 권한)은 자본에게 있다. 노동자를 해고하고 인공지능(자동기계)으로 대체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본은 여러 가지를 고려하게 된다. 먼저, 비용이다. 만약 인건비(노동자 임금)에 비하여 인공지능과 자동기계의 설치비용이 중장기적으로 더 저렴하다면, 자본은 그것을 단행할 것이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의 사회경제적 변화는 자본으로 하여금 인공지능으로의 대체를, 따라서 실업의 증가를 재촉하게 할 것이다.

여기서도 알 수 있지만, 인공지능(특정 기술)이 대량실업을 낳는 게 아니라, 자본의 의사결정(권력)이 또는 노사관계의 변동이 대량실업을 낳는다. ‘인공지능 때문에 대량실업이 발생’한다고 말하는 실리콘벨리 IT기업가들은 뭔가를 크게 착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소위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건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공장에서 새로이 설치된 인공지능과 자동기계는 만능이 아니다. 그것은 때때로 고장이 나서 사업주(자본가)의 애간장을 타게 만든다. 회사 안에 상시적 수리공(노동자)을 채용하거나 또는 외주업체(노동자)에 수리와 점검을 맡겨야 한다. 더구나 많은 돈을 들여 설치한 인공지능 기계를 대체하는 더욱 앞선 인공지능 기계가 개발되는데, 그 새 기계를 구입·설치하고 제대로 된 품질의 운영에 도달할 때까지 수많은 숙련공과 엔지니어들이 투입되어 작업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기존 노동력 또는 새로운 노동력의 수요(일자리 수요)를 의미한다.

미국만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앞선 건 아니다. IT기술과 산업이 발전한 북유럽 나라인 스웨덴(에릭슨)과 핀란드(노키아)를 보라. 그들 나라에서도 인공지능을 탑재한 자율주행차 기술(볼보와 스카니아)을 개발하고 있고 기존 공장들이 속속 스마트 공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자율주행차(인공지능) 기술이 벤츠와 폴크스바겐에서 날로 발전하고 지멘스와 벤츠 등의 기존 공장이 스마트 공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북유럽과 중부유럽(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에서 ‘인공지능과 스마트 공장 때문에 대량실업’이라는 목소리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 전 국민 고용안전망과 직업훈련망의 구축, 그리고 산업정책

북유럽과 중부유럽에는 전 국민 고용안전망과 직업훈련망이 잘 발달해있다. 공장과 창고, 사무실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거의 대다수가 잘 숙련된 지식노동자들이다. 일자리를 잃더라도 한국과 미국에서처럼 극빈층으로 전락하지 않으며, 또한 무료로 제공되는 품질 좋은 직업훈련과 전직훈련을 받을 수 있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자동기계가 공장과 작업실·사무실에 도입되어 기존의 직무와 일자리가 사라질 경우, 우선은 회사가 기존의 노동력을 재훈련시켜서 새로운 업무에 배치한다. 그걸로 역부족이어서 해당 노동자가 해고되더라도, 그 실직자에게 국가가 나서서 생계비를 지급하고 무료 직업훈련-전직훈련을 시킨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전 국민 고용안전망과 생계안전망이 취약하다. 전 국민 직업훈련망도 취약하기 그지없다. 이런 조건과 환경에서는 ‘인공지능은 곧 대량실업’이라는 말이 현실적 호소력을 지닐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그 조건과 환경을 변화시킨다면 어떨까? 국가, 즉 민주공화국이 적극 나서 전 국민 고용안전망과 직업훈련망을 잘 구축한다면? 그럴 경우, ‘인공지능은 곧 대량실업’이라는 주장은 현실성을 잃어버린다.

요즘 ‘인공지능은 곧 대량실업’이라는 테제를 가장 많이 말하는 이들이 기본소득론자들이다. 그래야만 ‘대량실업 시대, 즉 전 국민 실업자 시대에는 전 국민 기본소득이 불가피하다’는 테제가 현실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은 오히려 수많은 일자리의 탄생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것은 잠재적 가능성일 뿐, 바로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국가(공화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인공지능 기술의 시대에 국가(즉 공화국) 정치의 역할은 오히려 전 국민 고용안전망과 직업훈련망을 올바로 구축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편에서 양산되는 실업자들에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생계보장과 함께 일자리를 창출해줄 수 있게 된다.

물론, 고용안전망과 직업훈련망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직업훈련·전직훈련을 받았다고 자동으로 일자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신기술의 발전(인공지능 포함)과 과학의 발전은 수십 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신제품과 신서비스의 탄생과 발전을 내포하며, 그것은 그 시장의 발전을, 따라서 그 관련 일자리의 성장을 의미한다. 더구나 그 가능성을 인지한 각국 정부들은 적극적인 재정투입과 행정조치로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육성한다. 이것을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이라 부른다.

장하준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보듯이, 산업정책을 포기한 나라의 경제는 퇴락하고 그것을 채용한 나라의 경제는 성장하고 융성한다. 문재인 정부는 바이오, 전기차, 신소재, 인공지능.로봇 등의 분야에서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 2년 전부터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는 소재·부품·장비 관련 산업과 기술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정책, 관련 일자리를 보호하고 더욱 성장시키는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더구나 작년 여름부터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그린뉴딜 전략을 개시했는데, 그것은 건물 단열과 전기차, 태양광·풍력 등의 새로운 기술과 산업에서 수많은 일자리 창출을 예고하고 있다.

※ 정승일은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공저, 2012), '굿바이 근혜노믹스, 정승일의 단도직입 경제민주화'(2013), '누가 가짜 경제민주화를 말하는가'(2017) 등을 저술했다. 복지국가 정치의 초석을 놓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창립 멤버로서 정책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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