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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보궐선거 이후 민주당의 과제
  • 이상구/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 등록 2021-04-08 04: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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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보궐선거 투표가 시작됐다. 지난 4월 2일과 3일 사전 투표를 시작으로 4월 7일 저녁이면 후보자의 당락이 결정될 것이다. 임기 1년의 단체장을 뽑는 선거가 이렇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다음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결과에 상관없이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여러 가지 사실들로 미루어볼 때, 선거에 패배한 책임을 지고 민주당 지도부가 교체되거나 당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정도에 머물진 않을 것이다.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이대로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 집권 민주당과 청와대가 민심의 경고를 무시한다면, 대선과 연이은 지방선거에서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을 모두 한꺼번에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엄중한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 왜 정권심판 여론인가

4.7 보궐선거는 2016년 촛불집회 이후 집권당인 민주당이 뒤진 채로 출발한 첫 번째 선거가 됐다.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그리고 2020년 총선을 전부 크게 이긴 민주당은 5년 만에 등장한 변곡점이 낯설고,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시민들의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출범 이후 사드 문제를 해결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시켰으며, 세계적인 모범이 될 정도로 코로나19를 잘 극복해냈다. 과도한 검찰의 행패에 분노했던 국민들은 패스트 트랙까지 올리며 힘들게 사법개혁을 완수하려는 민주당에게 또 한 번의 검찰청 앞 촛불과 함께 선거에서 표를 몰아주는 방법을 통해 힘을 실어주었다. 대구·경북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에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당선시켰고, 180석에 이르는 국회의원 의석을 몰아주었다.

그런데 이번 보궐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서울에서는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여당 후보의 당선을 원하는 여론이 33%’인데 비해, “국정 운영의 심판을 위해 야당 후보의 당선을 원하는 응답자가 59%”였다(3월 20-21일 방송 3사 공동 여론조사). 그냥 민주당이 싫은 것 정도가 아니라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다고 답한 응답자들 가운데 박영선 후보를 지지한다는 비율은 60.4%에 그쳤고, 28.8%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2020년 총선에서 여당에 표를 찍었던 사람들 3명 중의 1명이 “오세훈 지지”로 선회한 것이다(한겨레신문, 4월 2일자).

가덕도 신공항 관련 법률을 신속하게 통과시키고,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을 발표하는 등의 역대급 부산·경남 지역 발전계획을 제시했음에도, 그리고 L시티 사태와 함께 국회 사무처장 시절의 레스토랑과 조형물 관련 특혜가 드러났음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는 민주당 김영춘 후보에 비해 20% 이상의 차이로 앞섰다. 백약이 무효인 셈인데, 이 정도라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단순히 집권 여당에 대한 심판을 넘어, 국민들은 집권 세력인 민주당에 분노하고 대단히 화가 나 있는 것이다.

부산이 야권이 우세한 도시라고 하지만, 김영삼의 마지막 비서 출신인 김영춘 후보는 기존의 민주당 출신과 다소 다른 위상을 가지고 있다. 해운과 항만 관련 종사자와 가족이 100만 명이 넘는 부산에서 해수부 장관을 경험했고, 장관 재직 시절에는 노무현의 꿈인 한국해양진흥공사를 발족시켜 획기적인 해운 산업의 재기와 발전을 위한 계기를 만든 업적이 있다. 물론, 이것을 부산시민들이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청와대 재직 시절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지시 의혹부터 각종 부동산 관련 특혜 의혹, 심지어는 딸의 입시 비리 의혹까지, 까도까도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아 “까도남”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박형준 후보보다는 비호감이 덜 해야 하는데, 표심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아이들의 식판을 엎은 모습으로 기억되는 오세훈 후보도, 각종 비리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가 되고 있는 도곡동 땅 측량에 참석했는지 여부를 두고는 정치인으로서는 가장 치명적일 수 있는 “거짓말 의혹”까지 받고 있다.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재직 시의 활발한 활동은 물론이고 최소 잔량 주사기(LSD)를 개발한 업체를 지원하여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기여한 박영선 장관이 밀릴 이유가 없는 데도 지금까지 있었던 각종 여론 조사 결과는 싸늘하기만 하다. 보수 언론들의 의도적 조작과 왜곡 보도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여론조사 결과가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나오고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정권 심판 구도가 된 것일까. 민주당 지도부도 원인을 몰라 당황해 하고 있다. 거의 망연자실 수준이다. 3번의 선거에서 연속으로 이겼는데, 게다가 얼핏 보기에 그동안 특별한 일도 별로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지지율이 역전되었는지, 한편으로는 억울한 것 같기도 하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집권 여당에 대한 민심이 갑자기 이렇게까지 돌아서게 된 것일까?

촛불혁명에 참여한 시민들이 집권 세력에게 몰아주었던 표들이 이렇게 돌아선 것은 부동산 가격의 지속적 폭등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다. 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내부 정보를 이용한 땅 투기에 화가 나 있는 것이 문제라면, 도곡동 처가 땅을 서울시장이 나서서 개발 계획을 세우고, 그린벨트를 풀어 고액의 보상을 받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오세훈 후보에게도 같은 수준으로 심판을 해야 하는데, 시민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집권 5년 차’라는 시기 탓으로 해석할 사안은 더욱 아니다. 부동산으로 화난 민심이 토지주택공사 비리로 폭발한 탓이라고만 해석하기에는 문제의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

# 보궐선거 이후 정치권의 과제

집권 여당은 이제 원점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정책 방향과 성과들을 뒤돌아봐야 한다. 정말 힘들게 국정을 이끌어오고, 적어도 몇 가지 분야에서 성과를 냈다고 자신해도, 국민들이 계속 지지해 주지는 않는다. 촛불혁명의 이면에 감추어진 시대정신을 돌아봤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던 잘못을 냉정하게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세월호 문제에 대한 책임과 더불어 촛불 민심이 대변하는 것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와 같은 오래된 구호로 표현될 수 있는 ‘구체적인 삶의 개선’인데, 과연 지난 4년 동안 얼마나 그런 요구에 충실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당과 청와대가 스스로 돌아보기 어렵다면, 외부의 전문가들에게 의뢰해서라도 객관적으로 평가를 받아봐야 한다. 연령과 세대별로 그리고 소득 수준별로, 시민 패널을 구성해서 국민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현장에서 나온 생생한 민심을 반영해 성찰 속에서 집권당의 방향을 변경·설정해야 한다.

그동안 민주당에 우호적이었던 30대에서도 오세훈 후보는 박영선 후보에게 16%포인트 앞섰고, 20대에선 22.5%포인트로 더 벌어졌다(케이스탯, 3월 30~31일 실시). 아무리 노력해도 취업의 희망은 보이지 않고, 결혼은 물론이고 어린 자녀를 키우기도 힘든 20대와 30대는 야권이 좋아서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어렵고 힘든 삶을 개선해 달라는 비명을 들리게 하고 싶어서 집권 민주당과 청와대에 경고를 보내기 위해 표심을 바꾸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

40대의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등으로 여권 지지세가 주춤한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당을 저버리진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패착인 부동산 시장의 불안으로 40대 역시 직격탄을 맞았기에 가장 큰 피해 연령층이지만,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 “민주당에 화가 나지만 그렇다고 ‘구태’인 국민의힘을 찍을 수는 없다”는 40대의 고충을 민주당은 이해해야 한다. 이들에게 민주당은 능력 여하에 따라 뽑을 수도 안 뽑을 수도, 예뻐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는 당이지만, 국민의힘은 ‘차마 못 찍을 당’이다. “문재인 정권이 하는 거 봐서는 도저히 1번을 못 찍겠다”는 시민의 호소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한겨레신문, 4월 2일자).

국민들에게 어려운 결정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치인의 도리가 아니다. 기분이 좋아서, 자신 있게 선호하는 정당과 후보를 당당하게 찍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물론, 선거의 결과는 박빙으로 예상된다. 두 군데 모두 이길 수도 있고, 한 곳만 질 수도 있고, 모두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의 당락이나 승부에 상관없이 이미 드러난 각종 여론조사 결과만으로도 국민의 경고가 엄중하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확인됐다. 국민들이 보낸 메시지를 포착하고 반영하지 못한다면 내년의 연이은 선거에서는 희망조차 품을 수 없게 된다.

야당도 반성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민주당과 처지가 다르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었는데도 당의 정책과 방향은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 국민의 단기 기억력이 짧다는 점에 근거를 둔 것 같은 ‘잦은 당명 바꾸기’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언제까지 차떼기 정당과 비리 정당의 전통을 이어나갈 것인가?

야당은 선거에서 이기면 이긴 여세를 몰아서, 선거에서 패배하면 패배한 데 대한 반성을 계기로 당의 혁신을 준비해야 한다. 수구 세력을 몰아내고 합리적인 보수 세력으로 당의 정책 변경과 인물 교체를 추진하는 것은 물론이고, 비리 없는 후보를 발굴하고 신선한 정치인들을 발탁하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야당이라지만, 10년 가까지 집권했던 정당이 서울과 부산 등 지방정부의 정책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정책적 열세에서 선거를 치렀다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 민주당과 당당하게 대결할 수 있는 정책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국민에게 당당하게 선택해 달라고 말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

민주당도 보궐선거 이후로 미루어진 당 대표 선거를 통해 치열한 당내 개혁과 정책 방향에 대한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본격적인 대선 경선을 앞두고 당 대표 선거를 통해 당의 정체성과 방향을 다시 한 번 정해야 한다. 과감하게 새로운 인물들을 발탁하고, 달라진 정책으로 당을 혁신해야 한다. 깊은 반성과 성찰 속에서 다시 한 번 국민에게 호소할 수 있을 정도의 가시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반성과 성찰의 주제는 ‘국민의 구체적 삶의 개선’이어야 한다.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국민이 범여권에 몰아준 것에 대해 눈에 보이는 정책과 예산으로 응답해야 한다.

대통령 공약 중에 과연 몇 %나 달성되었는지를 점검하고, 그 성과를 정확하게 공개해야 한다. 대통령 공약은 대통령 개인의 약속이 아니다. 정당이 당명을 걸고 국민들에게 한 약속이다. 미진하면 미진한대로 공정하게 평가하고, 객관적으로 검증을 받아야 한다. 차기 대선에서 평가를 받기 위한 냉정한 반성을 시작으로, 구체적으로 차기 정부에서 무엇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도 제시해야 한다. 국민들은 성과가 미흡하다고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무능함과 무책임을 비판하는 것이다.

재난 지원금을 좀 더 푸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주택 가격을 잡거나 공직자의 비리를 엄단하는 것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물론, 올해 하반기에 터져 나올 전국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의원들의 비리 문제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조치해야 한다. 당내 감찰단을 꾸려 문제를 사전에 점검하고, 당 소속으로 당선된 지방의원들과 지자체장들의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한다. 적어도 민주당 이름으로 당선된 사람들이 비리 혐의로 오명을 받는 일은 없도록 도덕적 우위를 확실하게 견지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대안은 다시 한 번 민주당을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보편적 복지국가 정당으로 우뚝 세우는 것이다. 보육, 교육, 주거, 일자리, 노후 보장 등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달라질 수 있는 구체적인 복지국가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180명에 이르는 국회의원들이 앞장서서 실명제를 통해 각각의 정책에 대한 예산과 입법을 책임지고 추진하도록 하고, 당장 시행 가능한 정책들은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일부라도 시작해보는 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대선까지 1년도 남지 않은 기간 동안에 많은 성과를 내기는 어렵겠지만,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희망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이번 보궐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올바른 방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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