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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7] "북쪽의 우뚝한 산과 흘러드는 한강의 모습이 마치 용이 굼틀굼틀하고 봉이 나는 것같아 억만년 가는 국가의 기반을 의미하는 듯하다"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1-05-01 23:49:00
  • 수정 2024-03-10 09:5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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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대교의 야경/사진 이승준 기자
하늘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대교의 야경(유람선이 지나가고 있다)/사진 이승준 기자

[이승준 기자] 용양봉저정은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2대 정조 관련 누정으로 유형문화재 제6호로, 서울 동작구 본동 10-30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이 정자는 정조가 배다리(舟橋)로 한강을 건너는 전후에 휴식하던 주정소(晝停所)였다. 이후 여러 왕들도 이곳을 이용했다. '용양봉저정기'에는 1789년(정조 13)망해정(望海亭)을 구입했다고 기록돼 있으나이후 다시 지은 것인지, 이름만 용양봉저정으로 바꾸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정조가 이곳에서 주위를 살펴보고, "북쪽의 우뚝한 산과 흘러드는 한강의 모습이 마치 용이 굼틀굼틀하고 봉이 나는 것같아 억만년 가는 국가의 기반을 의미하는 듯하다"면서 용양봉저정으로 이름지었다.

용양봉저정(코로나19로 인해 내부는 볼 수 없었음)/사진 이승준 기자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이고 내부는 마루와 온돌방으로 꾸몄다. 당시 주변에는 배다리를 관장하던 관아건물이 몇 채 있었으나 모두 없어졌고, 이 정자도 한때는 음식점으로 쓰일 정도로 훼손되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실린 '주교도'에는 당시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조선시대에 임금이 한강 남쪽으로 거동할때는 용주(龍舟)를 타고 건넜다. 이 때문에 선창(船艙)을 만들기 위해 배를 동원해야 했으므로 뱃사람들이 큰 고통을 겪었다. 생부 사도세자의 묘소 현륭원지금의 융릉)을 수원을 옮긴 정조는 한강의 흐름이 완만한 노량 나루에 배다리를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정조는 강을 쉽게 건널 수 있었고 백성의 고통도 줄어들었다.  

측면에서 바라본 용양봉저정/사진 이승준 기자

# 주교사터

주교사터/사진 이승준 기자

주교사는 임금이 행차할 때 한강에 부교(浮橋)를 놓는 일과 전라도와 충청도 지방의 조운을 맡아 오던 조선시대의 관아이다. 정조 13년(1882)에 폐지된 후 엄무가금위영(禁衛營)에 이관됐다.

한강의 물길은 514km정도이며 옛날에는 820리로 헤아렸다. 시발점은 강릉의 오대산 우통수금 강현에서 나오는 남한강 시류와 금강산 만폭동 물이 소양강과 합류해 한강을 이루는 한민족의 애환이 서린 젓줄이다. 

용양봉저정 근린공원이 4월 30일 개방했다./사진 이승준 기자 
하늘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대교/사진 이승준 기자
사진 이승준 기자
사진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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