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서울시 구석구석 13] 민족운동가 '함석헌'
  • 박광준
  • 등록 2021-05-10 13:09:25
  • 수정 2024-03-14 05:29:38

기사수정


[박광준 기자] 함석헌[咸錫憲]((1901년 3월 13일 ~ 1989년 2월 4일). 평안북도 용천 출신. 당숙 일형(一亨)이 세운 삼천재(三遷齋)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1914년 덕일학교(德一學校)를 졸업했다.


1916년 양시공립보통학교(楊市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그 해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가담, 학업을 중단했다가 1921년정주(定州)의 오산학교(五山學校)에 입학했다.


그 때 안창호(安昌浩).이승훈(李昇薰).조만식(曺晩植)으로부터 민족주의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923년 오산학교를 졸업한 뒤에 일본으로 건너가 1924년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 1부에 입학, 1928년 졸업했다.


함석헌은 재학 중에 일본인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內村鑑三)의 성서연구에 깊이 영향을 받고 김교신(金敎臣).송두용(宋斗用).정상훈(鄭相勳) 등과 함께 무교회주의신앙클럽을 결성했다.


1927년 동인지 '성서조선 聖書朝鮮' 창간에 참여해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28년 4월 귀국해 모교인 오산학교의 교사로 부임했다가 1938년 3월 사임했다.


1940년송산(松山)에서 김혁(金赫)이 운영하는 송산학원을 경영하다가 계우회사건(鷄友會事件)에 연루되어 대동경찰서에서 1년간 구류생활을 하기도 했다.


1942년 '성서조선'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1년간을 서대문경찰서에서 미결수로 복역했다. 1947년 3월 월남해 YMCA에서 성서강해를 계속했다.


그는 1956년부터 '사상계'에 자신의 글을 발표하면서 정치적.사회적 문제들을 기탄없이 비판했였고, 1958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면서 자유당정권에 도전했다.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에는 ‘5.16을 어떻게 볼까’로 군사혁명정권에 도전했다. 1962년 미국무성 초청으로 방미했을 때 퀘이커교(Quaker敎)와의 친밀관계를 굳혔다. 1967년 장준하(張俊河)의 국회의원 옥중출마를 지원하기도 했다.


1970년 4월 '씨imagefont의 소리'를 창간했고, 민중운동을 전개하면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주요저서로는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1948) '인간혁명'(1961) '역사와 민족'(1964) '뜻으로 본 한국역사'(1967) '통일의 길'(1984) 등이 있다./자료출처-네이버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