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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의 슬픈 자화상, 근원적 해법은 무엇일까
  • 윤호창/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
  • 등록 2019-04-12 14: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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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5일은 사상 최악을 미세먼지를 기록했다. 짙은 미세먼지가 우리 사회의 불확실한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한국은행은 우리나라가 사상 최초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윤호창/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

지난 3월 5일은 사상 최악을 미세먼지를 기록했다. 짙은 미세먼지가 우리 사회의 불확실한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한국은행은 우리나라가 사상 최초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 ‘3만 불 시대’라는 빛 좋은 개살구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8년 4/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1349달러(원화기준 3449.4만 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3인 가족으로 환산하면 1억138만 원, 4인 가족은 1억3797만 원을 벌어들였다는 이야기다. 1일당 국민소득 3만 불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간다는 중요한 지표이기에 축포를 터트릴 만한 일이지만 자축할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이 뉴스를 접했을 때 일반 시민들의 감정을 어땠을까? 연합뉴스에 의하면, 1인당 소득 3만 불 기사에 화가 난다는 표시를 한 사람이 86.7%를 차지했다고 한다. 화가 나는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국민소득 3만 불이라는 숫자가 주는 비현실감에 더해,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이 상대적 빈곤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국민총생산(GNP) 자체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토목·건설로 4대강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전쟁으로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도 GNP는 성장하기 때문이다. 과연 GNP가 보통사람들의 살림살이를 평가하기에 적절한 지표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다. 때문에 살림살이의 가치가 들어있지 않은 GNP 대신에 GNH(국민총행복) 지표를 사용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어쨌든 대다수 국민들에게 국민소득 3만 불 뉴스는 우리 사회의 팽배한 불신에 새로운 불신을 하나 더했을 뿐이다. 


# 우리는 타인과 사회를 얼마나 믿고 있을까 


우리 사회가 행복이나 삶의 질 수준이 경제력에 비해 낮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2017년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OECD 35개 국가 중에서 경제력은 11위, 행복순위는 29위로 나타났으며, 청년 행복순위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런 경제력과 행복감 간 불일치의 이면에는 ‘사회 불신’이라는 원인과 ‘사회 갈등’이라는 결과가 내포되어 있다. 


한국인들은 좀처럼 타인이나 사회를 믿지 못한다. OECD가 35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사회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26.6%만이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74.9%의 국민이 긍정적인 답변을 해 OECD가 35개 회원 국가들 중 사회신뢰도 1위를 차지한 덴마크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신뢰도 성적은 1/3일 수준에 그친다. 


세계의 사회과학 연구자 네트워크인 세계가치조사협회(World Value Survey Association)는 1981년부터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가치조사는 세계 50여 개 국가에서 240여 개의 질문이 담긴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세계인들의 가치와 믿음을 조사하는 학술 프로젝트인데, 5년 주기로 조사해서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세계가치조사의 질문에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관계에서 조심해야 한다고 보십니까?”라는 항목이 있다. 이 문항에 대해 사람들은 “대부분 믿을 수 있다.”와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에서 대답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 믿을 수 있다” 응답률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응답률을 뺀 후 100을 더한 수치를 일반신뢰지수로 사용한다. 때문에 100이 넘으면 신뢰가 불신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100보다 낮으면 불신이 더 높다는 뜻이다. 


2005년 5차 조사 결과를 보면, 총 59개 국가에서 조사가 진행됐고 평균은 54.1%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전체 응답자 1200명 중 “대부분 믿을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28%,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71.1%로 나타나서 일반신뢰지수 56.9을 기록하며 30위를 차지했다. 이는 전체 평균보다 근소하게 높은 수치이나 상위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매우 낮은 것이다.


상위 10개 국가를 살펴보면, 1위 노르웨이(148.0), 2위 스웨덴(134.5), 3위 중국(120.9), 4위 핀란드(117.5), 5위 스위스(107.4), 6위 베트남(104.1), 7위 호주(92.4), 8위 네덜란드(90.6), 9위 캐나다(85.9), 10위 벨라루스(85.2)의 순서였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네덜란드 등 주로 중·북부 유럽 국가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고,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베트남이 포함됐다. 사회주의 국가의 전통이 있는 중국과 베트남을 제외하면 상위권 국가들은 대부분 유럽 복지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복지국가는 왜 신뢰지수가 높을까? 복지국가에서 신뢰지수가 높은 것은 국가가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보장해주고, 설령 경쟁에서 밀려난다고 하더라도 낙오되지는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다른 구성원들을 신뢰할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이나 미국, 일본 같은 신자유주의 국가는 경제력이 높더라도 사회적 신뢰 수준이 높지 않다. 즉 경제성장이 사회구성원들의 신뢰를 촉진시키는 요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도 지수의 변화를 볼 수 있는데, 유럽 복지국가들은 복지의 증대와 함께 사회적 신뢰가 증가했지만, 영국, 미국, 일본은 정체 상태에 있거나 하락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삶의 불안에서 벗어나야만 서로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가치조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 신뢰와 갈등의 사회경제학 


그렇다면 이런 신뢰와 불신이 빚어내는 경제적 효과와 비용은 얼마나 될까? 신뢰가 주는 경제적 효과와 갈등이 주는 사회적 비용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미 이루어졌다. 몇 개의 결과만 살펴보자.


우리 사회의 갈등 비용에 대해서는 계산 방식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최대 246조 원에 달한다고 보고되고 있으며, 이는 국민총생산(GDP)의 2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단순하게 계산하자면, 개인들이 매년 약 1천만 원을 사회갈등 비용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갈등이 많고, 그래서 많은 비용을 치루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회 구성원들 간의 신뢰지수가 낮고 통합과 갈등조정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갈등지수는 0.71로 OECD 평균인 0.44를 한참 상회하고 있으며, OECD 회원국 중에서 4번째로 사회갈등이 심한 국가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갈등 수준이 OECD 평균 갈등지수인 0.44로 완화될 경우, 1인당 GDP는 27%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의 사회적 자본 축적 실태와 대응 과제 연구’(2016, 대한상공회의소)에 의하면, 한국 사회의 사회적 신뢰는 27%에 불과하다. 만약 우리나라의 사회적 신뢰 수준이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북유럽 국가 수준인 69.9%로 향상되면, 경제성장률은 1.5%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에서 신뢰 구조만을 제대로 구축하더라도 환경 부하나 별도의 재정 투입 없이도 4%대의 경제성장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왜 이렇게 신뢰가 부족하고 갈등이 많이 일어나는 것일까? 위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의 감성적 기질과 특성, 단기간의 압축 성장, 식민지와 독재정권의 경험, 정치인들의 무능과 부패, 남북분단, 민주주의의 부족 등 다양한 원인들이 제시되고 있다. 또 위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1,000명 가운데 1위로 ‘정치인의 무능과 부패’(41.4%)를 꼽았으며, 2위로 ‘서로 배려하는 민주적 시민의식의 부족’(21.0%), 3위로 압축적인 경제성장(17.3%)을 꼽았다. 결국, 민주주의 부족과 정치의 실종이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할 정치권과 국회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인 것이다. 국회의 신뢰도는 15%로 압도적인 최하위를 언제나 기록하고 있다.(한국행정연구원, 2018)


# 한 손에는 복지, 다른 한 손에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위의 다양한 연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가 갈등이 많고, 신뢰가 낮은 것은 제대로 된 복지국가 시스템과 민주주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서 복지국가와 민주주의는 새의 양 날개 혹은 이빨과 입술의 관계와 같다. 복지국가가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디딤돌이라면, 민주주의는 복지국가를 강화하는 촉매제이다. 북유럽에서 복지국가와 민주주의가 함께 발전하는 것은 이 둘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제대로 된 복지국가 시스템과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민주화 이전에는 지역 갈등이 심했으나, 이후에는 이념 갈등(87%), 빈부 갈등(82%), 노사 갈등(76%), 세대 갈등(64%), 종교 갈등(59%), 남녀 갈등(59%)의 순으로 갈등이 나타났다(한국행정연구원, 2018). 그리고 지난해 ‘미투 현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청년층을 중심으로 남녀 갈등도 점차 심해지고 있는 추세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 사회의 갈등이 이렇게 중층화·다양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을 조정하고 통합하지 못하는 정치와 언론의 무능이다. 갈등은 어쩌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런 현상이다. 개인이나 계층마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갈등의 발생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은 사회 갈등을 적절한 방식으로 공론화하고, 정치는 이를 통합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등을 해결하고 사회를 통합해야 할 국회나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가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당사자로 전락했다. 기관별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언제나 압도적으로 꼴찌를 차지하며, 그 다음으로 검찰과 법원이 낮은 신뢰를 보였다. 그나마 특별한 변화는 그동안 검찰이나 법원과 비슷한 신뢰도를 보였던 중앙행정부처가 45%의 신뢰도로 지난 5년간 약 10% 정도 높아졌다는 점이다.(한국행정연구원, 2018) 


결국, 문제를 풀 핵심은 시민들의 민주주의 역량이다. 기성의 입법, 사법, 행정의 기득 권력들이 스스로를 반성하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권력의 속성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권력들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소환하는 시민의 민주주의 능력, 그리고 견제와 균형의 제도화 없이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자욱한 미세먼지 속에 발표된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에서 벗어나 국민행복의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는 길은 민주주의와 제도적 복지의 강화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그래서 촛불시민혁명을 일구었던 깨어있는 시민들의 복지국가를 향한 기대와 열망, 그리고 용기 있는 혁신적 상상력이 지금 다시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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