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준 기자] ‘배재학당 동관’은 사울특별시 기념물 제16호로,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34번지 5호에 소재하고 있다.
이 건물은 1916년 준공해 배재중.고등학교가 1984년 2월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동교사(東校舍)로 사용한 곳이다. 배재학당은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가 1885년 8월에 세운 학교로 처음에는 주변의 민가를 사들여 교사로 사용했다.
교정에는 이 동관(東館)을 비롯, 1887년 준공해 1932년에 철거된 본관, 1923년에 준공한 서관(西館), 1933년에 준공한 대강당, 광복 후에 세워진 현대식 교사 등 많은 건축물 등이 이었다. 이 중 서관은 고덕동으로 이전해 복원됐고, 다른 건물들은 배재공원을 만들 때 철거됐다. 이 건물의 외관은 그대로 유지돼 배재중.고등학교 이전 후 문화재로 지정(2001년 3월 15일)됐고, 내부 골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외장 및 치장쌓기 벽돌구조가 뛰어나고 정면 현관과 양 측면 출입구의 부재들이 건립 당시의 원형대로 잘 보존돼 있어 한국 근대건축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근대 교육의 발상지에 현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의 내부는 코로나19로 인해 취재할 수 없었음)
# 아펜젤러 기념공원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1858-1902)는 펜실베니아에서 1858년2월 6일 출생, 프랭클린 마샬신학교를 졸업하고 드류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884년 미국 북감리교 선교회에서 조선으로 파견한 첫 번째 감리교 선교사로 임명돼 아내 엘라 닷지 아펜젤러와 함께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제물포(인천)에 도착했다.
이펜젤러는 이곳 정동에서 1885년 8월 3일 두 명의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교육사업을 시작했고, 이에 고종황제는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교명을 하사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의 시작이었다.
성경말씀(마태 20:26-28)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는 교훈 아래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배재학당은 배재 중.고등학교와 배재대학교로 성장해 한국근현대사에 커다란 공헌을 한 교육기관으로 발전했다. 또한 아펜젤러는 복음전파를 위해 정동제일교회를 설립해 이 땅에 빛과 생명을 전했고, 삼문출판사를 통해 독립신문, 협성회보, 천로역정, 매일신문, 그리고 성서와 교과서 등을 출판해 당시 한국의 청년들에게 자유주의와 만주주의 사상을 심어 주었다.
아펜젤러는 조선의 근대화와 기독교 전파를 위해 17년 동안 교육, 선교, 의료, 출판사업 등에 많은 업적을 남겼고, 1902년 6월 11일 성서번역을 위해 목포로 가던 중 어청도 부근 해역에서 선박사고가 발생했고, 동행하던 여학생을 구하려다가 44살의 젊은 나이에 일생을 마쳤다.
학교법인 배재학당에서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숭고한 정신과 삶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선교사 탄생 160주년을 맞아 ‘아펜젤러 기념공원’을 조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