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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28] 농촌계몽소설 '상록수'를 쓴 소설가 겸 영화인 '심훈'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1-05-29 21:13:39
  • 수정 2024-03-14 05: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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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은 경기도 시흥군 북면 노량진리 검은돌집(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1901년에 태어나, 인생의 상당부분을 이 곳 흑석동에서 살았다. 심훈이 태어난 곳은 '효사정문학공원' 정상부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바로 앞에 있는 천주교 흑석동성당 자리이다./사진-박광준 기자 

[박광준 기자] 농촌계몽소설 '상록수'를 쓴 소설가 겸 영화인. '상록수'는 브나로드 운동을 남녀 주인공의 숭고한 애정을 통해 묘사한 작품으로서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다. 1981년에는 일본에서도 이 책이 번역.간행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30년 3.1만세운동 11주년을 맞아 기념해서 지은 항일 저항문학원 시집 '그날이 오면'에는 심훈의 고향 흑석리를 그리워하는 시 '고향은 그리워도' 실려있다./사진-박광준 기자본관은 청송(靑松)이고, 본명은 대섭(大燮)이며, 호는 해풍(海風)이다. 1901년 서울 노량진에서 태어나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1917년 조선 왕족인 이해영(李海暎)과 혼인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투옥됐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4개월간 복역하고 출옥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1921년 항주 지강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심훈/자료사진

1923년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한 뒤 다음 해 부인과 이혼,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하면서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6년 '동아일보'에 영화소설 '탈춤'을 연재한 것이 계기가 돼 영화계에 투신, 이듬해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와 '먼동이 틀 때'를 원작.각색.감독했다.


흑석당 성당에 있는 '심훈생가 터' 표석. 심훈 생가터(현 흑석동성당)는 현 위치에서 580m, 도보 10분 거리에 위치해있다. /사진-박광준 기자1928년 조선일보사에 기자로 입사했고, 1930년 '동방의 애인'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다 일제의 검열로 중단됐고, 그해에 시 '그날이 오면'을 발표했다. 1931년 '조선일보'에 '불사조(不死鳥)'를 연재했고, 1933년 '조선중앙일보'에 '영원의 미소'와 1934년 '직녀성'을 연재했다.


심훈 문학로/사진-박광준 기자

1935년에는 농촌계몽소설 '상록수'가 '동아일보' 창간 15주년기념 현상소설에 당선되면서 크게 각광을 받았다. 이 소설은 당시의 시대적 풍조였던 브나로드 운동을 남녀 주인공의 숭고한 애정을 통해 묘사한 작품으로서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고, 1981년 일본에서도 번역.간행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했다./사진-박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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