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준 기자] 농촌계몽소설 '상록수'를 쓴 소설가 겸 영화인. '상록수'는 브나로드 운동을 남녀 주인공의 숭고한 애정을 통해 묘사한 작품으로서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다. 1981년에는 일본에서도 이 책이 번역.간행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본명은 대섭(大燮)이며, 호는 해풍(海風)이다. 1901년 서울 노량진에서 태어나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1917년 조선 왕족인 이해영(李海暎)과 혼인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투옥됐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4개월간 복역하고 출옥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1921년 항주 지강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23년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한 뒤 다음 해 부인과 이혼,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하면서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6년 '동아일보'에 영화소설 '탈춤'을 연재한 것이 계기가 돼 영화계에 투신, 이듬해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와 '먼동이 틀 때'를 원작.각색.감독했다.
1928년 조선일보사에 기자로 입사했고, 1930년 '동방의 애인'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다 일제의 검열로 중단됐고, 그해에 시 '그날이 오면'을 발표했다. 1931년 '조선일보'에 '불사조(不死鳥)'를 연재했고, 1933년 '조선중앙일보'에 '영원의 미소'와 1934년 '직녀성'을 연재했다.
1935년에는 농촌계몽소설 '상록수'가 '동아일보' 창간 15주년기념 현상소설에 당선되면서 크게 각광을 받았다. 이 소설은 당시의 시대적 풍조였던 브나로드 운동을 남녀 주인공의 숭고한 애정을 통해 묘사한 작품으로서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고, 1981년 일본에서도 번역.간행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했다./사진-박광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