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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7]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 '월정사'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1-10-24 22:40:15
  • 수정 2024-04-02 03: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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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는 동대 만월산을 뒤로 하고, 그 만월산의 정기가 모인 곳에 고요하게 들어앉은 월정사는 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띤다. 그 앞으로는 맑고 시린 물에서 열목어가 헤엄치는 금강연이 또한 빼어난 경관을 그리면서 흐르고 있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산(聖山)으로, 산 전체가 불교성지가 되는 곳은 남한에서는 오대산이 유일하다. 


월정사는 자장율사에 의해서,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창건된다. 자장은 중국으로 유학해 산서성 오대산의 태화지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다. 이때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를 전해준 뒤, 신라에서도 오대산을 찾으라는 가르침을 주게 된다. 이후 귀국해 찾게 된 곳이 강원도 오대산이다. 이때 월정사를 창건하고 오대 중 중대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조성했다. 


오대산 월정사 전경 오대산신앙은 자장에 의한 문수신앙에서 시작되지만, 통일신라에 이르면, 보천태자와 성덕왕에 의해서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하는 5만 보살신앙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정립된 것이, 중앙의 1만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동쪽의 1만 관세음.남쪽의 1만 지장.서쪽의 1만 대세지.북쪽의 1만 미륵보살의 5만 보살이다. 이때부터 월정사는 오대산의 다양한 신앙과 사찰들을 총괄하는 중심사찰의 위상을 확보하게 된다.


월정사는 이후 통일신라 말과 고려 초에는, 9산 선문 중 하나인 강릉 사굴산문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고려 말에는 나옹스님이 주석하게 되고, 조선 초에는 나옹문도들에 의한 불사와 정비가 이뤄진다.


월정사 적광전 전경 이후 조선 중기에 이르면 사명당이 주석하고, 또 조선왕실의 외사고(外史庫)가 오대산에 들어오게 되면서 숭유억불기에도 사세가 번성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이번에는 역으로 사굴 산문의 본찰인 굴산사가 오대산의 영향권으로 편입된다. 


월정사는 해방을 전후해서 종정(교정)을 4번이나 역임하신 한암스님께서 주석하고, 승가오칙(僧伽五則)을 통한 청정한 기상을 진작하게 된다.


이로 인해 월정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의 위상을 확립하고, 동국대학교 건립을 주도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1.4후퇴 과정 중에, 아군에 의해 월정사를 비롯한 오대산의 암자들이 전소되면서, 오대산은 개산(開山) 이래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금강교와 오대천 그럼에도 화엄학의 대가이자, 불교경전은 물론 동양사상 전반을 아우른 탄허스님께서 주석하면서 월정사는 점차 추슬러진다.


이때 탄허스님의 제자 만화스님이 현 적광전을 중건하고, 이후 현해스님이 대법륜전을 건립한다. 그리고 현 주지인 정념스님에 의한 각고의 노력으로, 가람이 일신되면서 오대산의 성세가 재현되기에 이른다.


현재 월정사는 명상마을과 성보박물관 등을 전통사찰의 영역 밖에 새롭게 조성하면서, 2018평창 동계올림픽을 문화올림픽 으로 전개하는 메카로 작용하고 있다.


# 적광전(寂光殿)



팔각구층석탑 뒤에 만월산 자락의 한 기운이 엉긴 곳에 자리한 적광전은 정면 다섯 칸, 측면 네 칸의 매우 큰 법당으로, 팔작지붕에 다포계 양식으로 세워졌고 갖가지 문양이 어우러진 단청은 매우 화려하다.


1930년대의 조선고적도보에 의하면 과거 7불을 보신 칠불보전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6.25 전쟁 때 아군에 의해 소실됐다가 1968년에 만화스님이 주지로 계실 때 다시 중건됐다.

적광전 외부 기둥 18개 중 16개는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소나무이고 2개는 괴목이며, 내부기둥 10개는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전나무로 만들었다. 적광전이 소실되기 전에는 칠불보전七佛寶殿이라 했다. 


대체로 적광전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 통례인데 이곳 적광전은 그 통례를 깨고 석굴암의 불상 형태를 그대로 따른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이는 1964년 만화스님 법당 중창당시에는 현판이 대웅전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탄허스님의 오대산수도원을 기념하기 위해 결사의 주(主) 경전이었던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의미로 적광전으로 고쳐 현판을 달았다.


적광전 뒷면 벽화는 10개의 소를 찾아 다니는 이야기를 그린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적광전 현판과 주련(柱聯) 글씨는 탄허스님의 친필이다.


팔각구층석탑# 팔각구층석탑


월정사의 본당인 적광전의 앞뜰 중앙에서 조금 비껴난 자리에 팔각구층석탑이 서 있다. 팔각구층석탑은 연꽃무늬로 치장한 이층 기단과 균등하고 우아한 조형미를 갖춘 탑신 그리고 완벽한 형태의 금동장식으로 장엄한 상륜부 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뛰어난 석탑이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하나, 그 무렵의 탑들은 평면 정방형에 삼층 또는 오층의 탑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아, 이 탑은 평면이 팔각형이며 탑의 층수도 구층에 이르는 늘씬한 자태를 이뤄 고려시대의 석탑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탑은 전체를 화강암으로 조성하고 상륜부에 일부 금동장식을 더했다. 여러 차례의 화재로 손상을 입은 부분이 더러 있으나 오늘날까지도 본래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해 오고 있다. 기단은 아래층 각 면에 안상을 새기고 연꽃 장식을 베풀었다.



그 위로는 굄돌을 놓아 위층 기단을 정성스레 받들어 기단 전체가 마치 부처님의 연꽃 대좌처럼 장식됐다. 그 위에 탑신을 받았으니 탑신은 곧 부처님이다. 탑신 안에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으니 불사리는 부처님의 진신이나 다를 바 없고 그러한 진신의 부처님이 연꽃 대좌 모양의 기단 위에 계신 것은 당연하다. 그리해 기단 위에는 부처님을 앉히기 위한 방석과 같은 석재를 별도로 끼웠고 탑 앞의 석조보살 좌상도 부처님과 같은 탑 앞에서 공양하는 자세를 하고 있다.


탑신은 각 층마다 줄어듦이 적고 층수는 구층을 헤아려 탑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느낌을 더해주고 있다. 팔각은 불교의 실천수행에 기본이 되는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한다.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이뤄지고 일층의 사면에는 네모난 감실이 하나씩 있는데, 남면의 감실이 가장 크며 문틀을 단 흔적도 있다.


몸돌은 모서리마다 귀기둥이 새겨지고 끝은 밑면이 수평이고 위는 곡면으로 처리해 추녀 끝이 살짝 위로 솟아 가뜬해 보이고 추녀 끝마다 풍탁이 달려 탑은 언제나 바람의 향기를 음미한다.



흐트러짐이 없는 정연한 상륜은 보탑의 격조를 한층 더해 주고, 여기에 금동장식을 더해 탑 위에 보관을 얹은 듯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해 보탑의 절정부는 세련된 조형미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여러 번의 화재로 인해 1970년 해체보수를 통해 1층 2층 6층 9층을 새 돌로 갈았고, 그 당시에 1층과 5층에서 총 12점의 사리구가 발견됐다. 은제의 불상 1구와 4점의 청동 거울, 금동 향합과 향주머니, 진신사리경 등의 총 12점의 유물들은 2003년 6월 보물로 일괄 지정됐다. 또한 2000년 8월 월정사석조보살좌상 보수공사 시에 지하 1m 아래에서 탑의 기단부로 보이는 또 하나의 유구가 발견돼 학계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팔각구층석탑은 높이 15.2m로 우리나라의 팔각석탑으로는 가장 클 뿐만 아니라 그 아름다움에서도 단연 으뜸이고 고려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려시대 초기인 10세기경의 작품으로 국보 제48호이다. 


# 석조보살좌상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팔각구층석탑 앞에는 탑을 향해 오른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공양을 드리는 모습을 한 석조보살좌상이 있다.


석조보살좌상입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는 이 보살상을 일명 약왕보살藥王菩薩이라고도 한다. 강원도 일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형태로 조성된 이 보살상은 턱이 약간 길고 눈두덩이 두껍고 뺨은 도톰하면서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고 있어 복스럽게 느껴진다. 머리 위에 높다란 원통형 관을 쓰고 있다. 관 옆에 작은 구멍이 얕게 파져 있는 것으로 보아 관에 장식이 달려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보발寶髮은 양 어깨의 앞과 뒤로 단정하게 드리워져 있고, 두 귀는 보발 등으로 살짝 감추어져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를 새기고 앞가슴은 영락으로 장엄한 채 두 손은 가슴 앞에 모아 무엇을 잡고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 석조보살좌상 복제


이 보살은 탑을 향해 한가운데가 아닌 오른쪽으로 조금 치우쳐 앉아 있고, 상체가 하체에 견주어 큰데 이것은 우리 눈의 착시현상을 감안한 것이다. 그리고 오른쪽 무릎을 꿇은 것은 고대 인도의 관습에 따라 자신을 낮추고 스승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이 보살상이 약왕보살임은 법화경에 잘 나와 있다.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에는 과거 일월정명덕日月淨明德 부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희견보살喜見菩薩이 부처님으로부터 법화경 설법을 듣고 현일체색신삼매炫一切色身三昧를 얻었다. 환희심에 가득한 보살은 여러 가지 공양을 올렸고, 마침내 천이백 년 동안 향을 먹고 몸에 바른 후 자신의 몸을 태우며 공양했다. 


그리고 다시 몸을 받아 일월정명덕국日月淨明德國의 왕자로 태어났을 때 일월정명덕여래는 그가 장차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주었다. 희견보살은 부처님의 사리를 수습해  팔만사천의 사리탑을 세우고 탑마다 보배로 만든 깃발과 풍경을 매달아서 장엄하게 꾸몄다. 그러고도 모자라 탑 앞에서 자신을 두 팔을 태우면서 칠만 이천 세 동안 사리탑을 공양했으니 이 분이 바로 약왕보살이다. 좌상의 전체 높이는 1.8미터이고 국보 제48-2호이다.


# 수광전(壽光殿)/무량수전(無量壽殿)



무량수전은 서방 극락정토의 교주 아미타불을 모신 곳으로 수광전, 극락전 이라고도 불리운다.


아(阿)란(아미타(바)Amitabha 무량광無量光.무량수無量壽) 한량없다 無의 뜻이며 미타는 수명을 뜻하니 목숨이 없는 수명의 다함이 없는 부처님이란 뜻이다. 


월정사 무량수전은 상단에는 아미타부처님과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좌우에 모시고 뒤쪽으로 극락의 법회 장면을 묘사한 목각탱화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를 모시고 있다.


중단에는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지장시왕(地藏十王) 목각탱화를 봉안하고 있으며, 하단에는 지옥의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인로왕보살님을 금선묘(金線描)의 탱화로 봉안하고 있다. 지금 무량수전은 1989년 도명스님 때 시작해 1992년 현해스님이 완공(廻向)했다.


# 대법륜전(大法輪殿)



큰 법을 굴리는 집이란 뜻으로 사찰에서의 강당을 의미한다.석가모니께서 정각을 이룬 후 녹아원에서 처음으로 설법을 한 역사적 사실에서 당호의 이름을 지었다. 1층에는 강당이 지하에는 공양채가 있다.


# 개산조각(開山祖閣)



적광전 寂光殿 뒤에 자리잡은 개산조각開山祖閣은 규모가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으로 돼있다.


월정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진영(眞影)을 모신 곳이다. 자장율사의 진영은 1804년에 제작된 통도사에 모셔져 있는 자장율사의 진영이 가장 오래 됐으나 월정사의 자장율사 진영은 최근에 제작한 것이다. 1958년 영해당 경덕 스님이 중건했으니 현존하는 월정사 당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 진영각(眞影閣)




진영각은 개창주(開創主)나 중창주(重創主)와 같은 고승의 진영을 모시는 전각이다. 월정사의 진영각은 개산조각을 따로 두어 개창주를 따로 모시고 있어 근.현대의 스님들만을 모시고 있다.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 형태인 월정사 진영각은 근대 월정사에 주석한 조계종 초대 종정이신 한암스님, 현대불교학의 아버지이신 탄허스님,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 지암스님, 6.25의 전란후 월정사를 중건하신 만화스님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 1975년 만화스님이 중건하고 1994년에 현해스님이 2009년 퇴우 정념스님이 증축했다.


# 삼성각(三聖閣)



삼성각은 독성 나반존자, 산신님, 칠성님을 함께 모신 곳이다. 나반존자는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십이연기(十二緣起)를 깨달은 성자로 우리나라에서는 단군을 신격화한 것으로 신앙되고 있다. 칠성님은 본디 중국에서 유입된 도교신앙의 신으로 북두칠성의 별자리를 신격화한 것으로 한국에 들어와 토착화 됐다.


처음에는 약사(藥師)신앙과 결합됐다가 조선 중기 이후 수명신의 본디 모습이 강조돼 병자나 자식낳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신앙이 됐다. 우리나라에는 산에 호랑이가 많았고 산을 주재하는 산악신이 있다고 믿었다. 산신님의 다른 모습은 호랑이라고 믿었고 주로 호랑이와 같이 표현된다. 이는 모두 불교가 들어오면서 호법신장(護法神將)의 하나로 흡수된 것으로 불교의 포용력과 흡수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상단에 칠성탱화와 칠성조각을 모시고, 향우측(向右側)으로 산신탱화와 산신조각, 향좌측(向左側)으로 독성탱화와 조각을 봉안하고 있다. 1994년 현해스님 때 중건했다.


# 금강루(金剛樓)

 


월정사의 금강루는 사천왕문을 지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으로 이어지는 한국사찰의 가람배치에 있어서 월정사는 불이문의 자리에 금강문을 두고 있다. 금강문의 오른쪽에는 움금강역사상이라고도 하는 나라연금강이, 왼쪽에는 훔금강역사상이라고도 불리우는 밀적금강이 있다. 


윤장대

특히 밀적금강역사는 지혜의 무기인 금강저를 들고 부처님을 호위한다. 이는 일체만물의 생성에서부터 소멸까지를 표현한 것으로 금강역사의 강한 힘과 지혜로 불법을 호지護持하고 사찰을 수호하면서 불교의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전면 3칸, 측면 2칸, 2층 누각으로 1997년 12월 현해스님이 착공해 1999년 10월에 낙성했다.


# 천왕문(天王門)



금강교를 지나 제일 먼저 만나는 문이 천왕문이다. 일명 사천왕문(四天王門)이라고도 하고 대개 일주문 다음에 천왕문(天王門)이 있다.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수미산 중턱에 살고 있는 불법을 외호(外護)하는 신장(神將)을 모신 전각이다. 이 천왕들은 수미산 중턱의 동, 서, 남, 북에서 그들 무리와 살면서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며 불법을 수호한다.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왼손에 비파를 들었고, 남방 증장천왕(僧長天王)은 오른손에 보검을 들었고,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오른손에 용을 왼손에 여의주를 들었고,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은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다.



월정사의 천왕문은 조선시대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천왕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벽화에는 중국선종의 제2대조인 혜가, 부모은중경, 자장율사, 지장보살, 포대선인, 기인 한산의 설화가 그림으로 설명돼있다. 1974년 만화스님이 중건했다.


# 종고루鐘鼓樓


적광전 정면에 있는 앞면 3칸, 측면2칸의 2층누각인 종고루(鐘鼓樓)

종고루鐘鼓樓는 적광전 정면에 있는 앞면 3칸, 측면2칸의 2층누각이다. 범종, 목어 운판, 법고 등의 불전사물을 봉안해 새벽예불과 저녁예불 때 사용한다. 이 사물은 모두 소리를 통해 부처님의 진리를 중생에게 전하고, 해탈성불을 이루게 한다는 교화의 의미를 가진다.


즉 법고를 두드려 부처님의 법으로 축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고, 목어는 잠잘 때에도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와 같이 항상 깨어 있으라는 의미를 지녔고, 물속 중생의 제도를 기원한다. 운판을 치는 것은 날짐승을 위한 기원이고, 범종을 치는 것은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사람 등 일체 중생의 구제를 기원하는 의미이다. 목어와 법고는 나무와 가죽으로 만들며 범종과 운판은 금속으로 만든다. 나무와 가죽은 땅의 소리를, 금속은 하늘의 소리를 의미하며 온 세상에 진리의 소리를 전하고자 하는 부처님의 마음을 담고 있다.


일주문 '월정대가람'은 탄헌스님의 친필이다일주문은 절의 입구를 알리는 문으로, 절에 들어서기까지 거치게 되는 세 개의 문 중 첫 번째 문이다. 모든 중생이 자유롭게 드나들라는 의미에서 문짝을 달지 않았고 기둥을 양쪽으로 일직선상으로 세워 문을 지탱하는 구조에서 일주문이라는 이름이 유래됐다. 현판의 '월정대가람(月精大伽籃)'은 탄허스님의 친필이다./사진-이승준 기자 


금강교와 오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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