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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서 가시가 돗는다’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1-11-09 10:53:36
  • 수정 2021-11-09 10: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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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를 사랑한 선각자 '안중근(2)


[이승준 기자] 귀국 후 안중근의사는 실력양성의 방안으로 교육운동을 구상했다. 


안 의사는 평소 교육을 통한 문명개화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1897년 천주교 세례를 받은 뒤 서양의 선진 문명사회를 알게 됐고, 천주교 전도활동으로 하는 과정에서 근대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한국의 문명개화와 천주교 전도를 위해 대학 설립이 필요했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1900년경 안 의사는 위텔 주교를 찾아가 천주교대학의 설립을 건의했다. 


위텔 주교는 “만일 학문이 있게 되면 교(敎 )를 믿는 일에 좋지 않을 것”이라면서 대학 설립을 반대했다. 


이에 안 의사는 “교의 진리를 믿을지언정 외국인의 심정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생각해 프랑스어를 배우던 것도 중단했다. 사실상 안 의사는 한국에서 대학설립을 실제로 시도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안중근의사는 청국에서 돌아온 뒤 학교 설립에 착수했다. 그리고 1906년, 사재를 털어 두 동생과 함께 진남포에 삼흥학교를 설립했다. 이어 진남포성당 소속 학교로서 운영이 어려워 폐교 상태에 있던 돈의 학교를 인수해 교사를 확장하고 교사와 학생을 증원했다. 



이처럼 안 의사는 2개의 학교를 경영하면서 교육활동에 힘썼다. 


그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1910년 순국을 앞두고 “우리들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해 학문에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라고 동포에게 쓴 유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돗는다’는 안 의사의 유묵은 그가 얼마나 교육을 중요시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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