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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101]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1-11-19 23:42:01
  • 수정 2024-04-10 1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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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은 조선 마지막 왕 순종황제의 장인 해풍부원군 윤택영의 집이다. 그의 딸이 세자빈(순정효황후)으로 책봉돼 창덕궁에 들어갈 때 지은 집이다. 제기동에 있었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재실이다. 평면도이 으뜸원자(元)구조로 돼 있다. 제일 윗터에 사당을 배치하고 그 아래에 안채(왼쪽, 여자 공간)와 사랑채(오른쪽, 남자 공간)를 뒀다. 순종이 홍릉에 행차할 때 머물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부원군은 임금의 장인에게 주던 작호로, 통상 정1품에 봉해졌다. 받는 사람의 본관인 읍호(邑號)를 앞에 붙였다. 윤택영은 순종의 장인이자 친일파이다.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아 많은 부를 누렸음에도 채무가 많아 ‘채무왕’이라고 불렸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오른쪽에 사랑채 출입문이, 가운데에 중간마당 출입문이 있다.


안채는 몸채, 행랑채, 문간채가 ‘ㄷ’형을 이루고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국왕을 수행하는 많은 인원이 머물 수 있도록 많은 방을 두고 있다. 대청마루는 그리 넓지 않고 방을 여러개 두었다. 


안채 왼편에는 아궁이가 있는 부엌이 있는데 규모는 크지 않다. 몸채와 문간채 사이에 연결된 행랑채에도 많은 일행이 머물 수 있도록 방이 여럿있다. 2개의 광이 있는 문간채(광)에는 제사 등에 필요한 물품 등을 보관하고 있다.




사당은 4.19혁명때 불타고 없어진 것을 이전할 때 새롭게 복원했다. 사당은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는 곳으로 조상의 영혼을 모신 곳이다. 왕의 조상을 모신 곳을 종묘, 이곳처럼 사대부의 조상을 모신 곳을 가묘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성리학이 크게 발달한 조선 중기부터 유행했다.사당은 이 집에서 가장 위계가 높은 집이다. 석축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 익공양식(사랑채가 민도리(납도리)식과 비교)으로 치장했다. 




사랑채도 안채와 마찬가지로 몸채, 행랑채, 문간채가 연결돼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 또한 수행원들을 위해 많은 방을 두고 있다. 사랑채 한쪽 끝에는 정자 역할을 하는 누마루가 있다. 사랑채에는 문간채 대신 날개채를 두고 있다. 안채와는 달리 수행원들이 머물 수 있는 방으로 돼 있다. 





사랑채는 보통 남자들의 공간이므로 주인의 일상 거처일뿐 아니라 손님의 접객과 교류가 이뤄 지는 공간이다. 따라서 가문의 위용을 나타내기 위해 정성을 다해 꾸며진다. 권위를 나타내는 편액과 주련을 걸기도 한다.<끝>/사진-박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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