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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9] 퇴계선생의 가르침이 남아있는 곳, 한국정신문화의 성지 '도산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7-08 15:33:34
  • 수정 2022-12-26 10: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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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도산서원 [이승준 기자] 도산서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키 위해 1574년(선조 7)에 지어진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위치하고 있다. 사적 제 170호로 1969년 5월 28일 지정됐다.  


서원의 건축물들은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졌고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하고 있다.


도산서원강당

안동 도산서원_현판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건립돼 추증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에 설립됐다. 퇴계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을 위해 지었고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했다고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됐다. 


안동 도산서원_전사청 

안동 도산서원_전사청 

안동 도산서원_연락서재 1570년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보물 제211호)에 모실 것을 결정했다. 2년 뒤 지방 유림의 공의로 사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했고, 전교당(보물 제210호)과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에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하사 받음으로써 사액(賜額)서원으로서 영남유학의 총 본산이 됐다. 1615년(광해군 7), 사림이 월천(月川) 조목(趙穆,1524-1606) 선생을 종향(從享)했다.


도산서원은 주교육시설을 중심으로 배향공간과 부속건물로 이뤄져 있다. 전체 교육시설은 출입문인 진도문(進道門)과 중앙의 전교당(典敎堂)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으로 배열돼 있다. 동.서로 나눠진 광명실(光明室)은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오늘날의 도서관에 해당한다. 동.서재는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는 건물이다.


안동 도산서원_상덕사 정면 

안동 도산서원_상고직사 

안동 도산서원_삼문 동편 도산서당건물을 ‘박약재(博約齋)’와 서편 건물을 ‘홍의재(弘毅齋)’라 한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중앙의 전교당은 강학공간과 원장실로 이뤄져 있고, 동재 뒤편으로는 책판을 보관하는 장판각(藏板閣)이 자리하고 있다.


배향공간인 사당 건축물로는 위패를 모셔놓은 상덕사(尙德祠)와 각종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典祀廳)이 있는데 삼문을 경계로 서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 


안동 도산서원_천연대 부속건물로는 서원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상고직사(上庫直舍)가 있다. 이는 홍의재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서원 입구 왼쪽에는 1970년 설립된 유물전시관 ‘옥진각(玉振閣)’이 있는데, 퇴계선생이 직접 사용했던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1969년 본 서원을 중심으로 임야 및 전답 19필 324.945㎡이 사적 170호로 지정됐고,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증축 사업을 진행했고 우리나라 유학사상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 됐다. 1977년 도산서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고 관리운영조례를 제정 공포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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