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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0] 조선 전기의 명유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한 서원 ‘도동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7-11 14:46:29
  • 수정 2022-07-13 02:5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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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동에 있는 서원. 조선 전기의 명유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한 서원으로 1604년(선조 37)에 건립됐다. 보물 제350호로 지정된 강당.사당과 주변 담장 외에 서원 앞의 신도비, 은행나무 등을 포함한 서원 전역이 사적 제488호로 지정돼 있다.


1605년(선조 38) 지방 유림의 공의(公議)로 김굉필(金宏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키 위해 창건해 위패를 모셨다. 1607년 ‘道東(도동)’이라고 사액됐고, 1678년(숙종 4) 정구(鄭逑)를 추가 배향했다.



도동서원 입구에 들어서면 김굉필나무라고 이름 지은  은행나무의 늠름한 자태에 입이 벌어진다 증손 정구가 이 자리에 도동서원을 세울 때 심은 것으로 수령 400년 이상 된다. 낙엽이 질 때면 이 앞마당에 온통 은행잎이 깔려 답사객들은 그 노란 카펫 위를 건지느라고 좀처럼 서원 안으로 들어갈 줄을 모르곤 한다.


도동서원은 가파른 비탈에 자리 잡아 앞마당부터 사당까지 무려 18단의 석축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자연의 형질을 변형시키지 않고 각 레벨을 살리면서 건물을 배치한 것이 도동서원 건축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은 서원 안쪽을 가로막고 버티듯 서 있는 수월루로 인해 우리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본래 1605년 창건 당시에는 수월루가 없었으나, 철종 6년(1855)에 증축했다. 본래 도동서원의 대문은 매우 작은 환주문으로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갓 쓴 이의 갓이 닿을 정도로 낮다. 그리고 강당인 중정당은 아주 높직한 석축 위에 올라앉아 마루에 앉으면 환주문을 눈 아래에 두고 은행나무 너머 낙동강을 멀리 내려다보는 조망을 갖게 돼 있었으나, 수월루로 인해 그렇게 펼쳐지는 시야가 막혀버린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도동서원은 남향을 버리고 북향을 택한 북향집이다. 이는 낙동강을 유유히 바라보는 전망을 갖기 위한 것으로, 남에게 보여주는 외관보다는 내가 사용하는 내관을 중시했다. 그래서 강당의 왼편이 서쪽, 오른편이 동쪽으로 된다. 그러나 이 서원의 서쪽에 있는 거인제를 동재, 동쪽에 있는 거의재를 서재라고 한다. 



특히 도동서원은 기둥머리마다 흰 한지를 돌렸다. 이는 이 사당에 모신 분은 문묘에 배향된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멀리서도 알아보게 한 것이다. 환주문의 문지방이 있을 자리에 꽃봉오리 돌부리가 있어 여닫이문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붕은 사모지붕에 오지로 구운 절병통이 얹혀 있다. 환주문에서 중정당으로 가는 안마당에는 가지런히 돌길이 갈려 있고, 중정당 석축 앞에 낮게 단을 쌓았다. 이 돌길과 석단이 만나는 자리에 고개를 내민 돌거북이 조각돼 있다. 이 돌거북은 위에서 보면 곡 올빼미 같지만 바짝 쪼그리고 앉아 정면으로 보면  이빨을 옆으로 나온 영락없는 거북인 것을 알 수 있다. 


또 중정당으로 오르는 석축에는 두 개의 돌계단이 좌우로 비껴 있다. 디딤돌이 7단이나 될 정도로 높다. 이 석축은 마당의 얼굴로 막돌하듯 층쌓기가 아니라 반듯한 돌을 차곡차곡 가지런히 쌓았다. 돌의 크기도 제각기 다르고, 빛깔도 연한 쑥색, 연한 가짓빛, 연한 분홍빛 등 여러 가지 연한 색이 은은히 퍼져 있어 아름다운 조각보를 보는 듯하다. 





석축이 머릿돌을 바치고 있는 자리에는 여의주를 문 네 마리의 용머리가 실감나게 조각돼 앞으로 돌출했다. 이 용머리 조각은 근래 어는 문화재 절도범이 뽑아간 것을 되찾게 돼 원본은 따로 보관하고 세 마리는 복제품으로 대신해 오직 한 마리만 원래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준다.


도동서원은 조각뿐만 아니라 기와돌담도 매우 아름답다. 나라에서 중정당을 보물 제350호로 지정할 때 돌담까지 포함시켰다. 또 멋뿐 아니라 기능에서도 다른 서원보다 뛰어나다. 제사지내는 데 필요한 구조물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특히 사당 옆 담장에 사각형으로 뚫린 빈 공간이 있다. 이는 제사가 끝난 다음 제문을 태우는 감이라는 것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毁撤) 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인 이 서원은, 1964년 전면 보수했고, 경내의 건물로는 사당(祠堂).중정당(中正堂).거인재(居仁齋).거의재(居義齋).수월루(水月樓).환주문(喚主門).내삼문(內三門).장판각(藏板閣).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보물 제350호로 지정돼 있는 도동서원강당사당부장원(道東書院講堂祠堂附墻垣)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사당에는 김굉필을 주벽(主壁)으로 해 정구의 위패가 봉안돼 있고, 좌우에는 창건 당시에 그린 벽화 2점이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된 강당인 중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 및 학문의 강론 장소로 사용됐고, 장원(墻垣)이 부속돼 있다. 거인재와 거의재는 각각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로서, 유생들이 기거하던 곳이다.


매년 2월과 8월 중정(中丁)에 향사(享祀)를 지내고 있고, 소장전적은 하사서적(下賜書籍)인 ‘춘추(春秋)’ 10권, ‘오경백편(五經百篇)’ 5권, ‘경현록(景賢錄)’ 등 95종 529책이 있다.


그 밖에 하사제기(下賜祭器)인 상준(象尊).희준(犧尊).궤(簋).보(簠).작(爵).촛대(燭臺) 등의 유물이 있고, 재산으로는 대지 1200평, 전답 5,000평, 임야 3정보 등이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도동서원은 2019년 7월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명칭으로 다른 8곳의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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