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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2]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 추모키 위해 지은 '남계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7-14 12:41:14
  • 수정 2022-08-23 09: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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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경남 함양 남계서원은 조선 시대 동방 5현 및 동국 18현 가운데 한 사람인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했다. 


함양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에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키 위해 지어졌고, 1566(명종 21)년에 ‘남계(灆溪)’를 사액으로 받았다. ‘남계’는 서원 근처에 흐르는 시내 이름이다. 1597년(선조30)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1603년(선조 36)에 나촌(또는 구라촌)]로 옮겨 지었다가 1612년(광해군 4)에 옛터에 재건했다. 





정여창 외에도 숙종 때 인물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 개암(介庵) 강익(姜翼)[1523~1567]을 추가로 제향하고 있다. 별도의 사당에는 임계(林溪) 유호인(兪好仁)[1445~1494]과 송탄(松灘) 정홍서(鄭弘緖)[1571~1648]를 모셨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전국에 걸쳐 서원 훼철이 진행됐지만 함양 남계서원은 존속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됐고, 2009년 5월 26일 사적 제499호로 승격 지정됐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돼 사적으로 재지정됐다. 2019년 한국의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남계서원은 매년 2월과 8월의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함양 남계서원은 앞쪽 낮은 곳에는 강학 공간을 둬 강습을 하도록 했고, 뒤쪽의 높은 곳에는 사당을 두어 제향 공간을 이루는 전학후묘(前學後廟) 전형으로 배치돼 있다. 사당에는 정여창을 주벽(主壁)[사당이나 사원(祠院)에 모신 여러 위패 가운데 주장되는 위패]으로 해 좌우에 정온과 강익의 위패가 각각 모셔져 있다.


누문(樓門)인 풍영루를 들어서면 강학 공간을 구성하는 중심 건물인 명성당(明誠堂)이 위치하고 있다. 명성당은 1559년에 완성됐고, 정면 4칸 규모의 건물이다. 




명성당의 앞쪽 양옆으로는 유생들의 생활공간인 양정재[동재]와 보인재[서재]가 있다. 양정재와 보인재의 1칸은 누마루 형식으로 만들어 각각 애련헌(愛蓮軒), 영매헌(咏梅軒)이라 이름했다. 





이 누마루 아래 누문 쪽으로 연당(蓮塘)[연못]이 하나씩 꾸며져 있다. 이처럼 연당이 두 개 조성된 서원은 드물다. 이 밖에 전사청, 고직사, 정여창.정온.강익을 칭송하는 송덕비인 묘정비가 있는 묘정비각 등이 있다. 서원 입구에는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다.


함양 남계서원은 문민공(文敏公)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세운 소수서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창건된 유서 깊은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철폐할 때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된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사진출처-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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