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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3] 경남 함양군의 서원들(1)...구천서원.도곡서원 등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7-14 16: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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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잠정적으로 여행을 중지했던 본지가 다시 한국의 서원을 준비했다. 하지만 한국의 서원 6편꽈 8편에 이어 지역별 서원들을 종합 편집해 게재한다. 지난호 전북 정읍시의 서원들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경남 함양군의 서원들을 살펴본다.<편집자주> 


# 구천서원



구천서원은 조선 후기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건립된 서원으로, 조선 전기 학자들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키 위해 경상남도 함양 지역 유림들이 뜻을 모아 1701년에 창건했다. 


조선 전기 인물인 박맹지(朴孟智), 양관(梁灌)[1437~1507], 강한[1454~?], 표연말(表沿沫)[1449~1498], 양희(梁喜)[1515~1581], 하맹보(河孟寶)[1531~1573]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기 위해 건립됐다. 



1701년(숙종 27)에 창건됐으나 1868년(고종 6)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됐다. 그 뒤 후손들이 불망계(不忘契)를 조직해 구천재와 유허비를 세우고 제향을 올렸다. 1984년에 구천서원을 복원하고 양홍주(梁弘澍)[1550~1610]를 추가로 배향했다.


남원양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향사(享祀)는 지내지 않는다.



현재의 구천서원 건물은 1984년에 복원된 것으로, 입구의 홍살문을 지나 소로를 따라 수십 미터 들어가면 구천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솟을대문 양식의 정문인 청순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강당 건물[정면 5칸, 팔작지붕]이 있다. 구천서원내에는 1919년에 세운 여섯 선생의 기록과 관련된 ‘구천서원 유허비’가 있고, 강당 뒤편으로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유력 씨족 가운데 중시조 급에 해당하는 인물들을 제향함으로써 여러 문중 간 단합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 당주서원 


당주서원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에 있었던 서원으로, 1581년(선조 14)에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을 배향키 위해 창건됐다. 나중에 노진스승인 당곡(唐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를 배향했다.


당주서원 유허비1581년에 창건된 서원으로, 1660년(현종 원년)에 ‘당주(溏洲)’라는 편액을 받은 사액(賜額) 서원으로, 별도의 사당을 두고서 노진의 스승 정희보를 배향했다. 그러나 1869년(고종 6)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毁撤)됐다. 초기에는 노진과 정희보 제자들이 많이 활동했으나, 노진 직계 후손들이 전라북도 남원 지역으로 이주한 뒤 점차 교육 역할은 줄어들고 제향만 봉행하게 됐다.


1868년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고 난 후 복원되지 못했다. 현재는 당주서원 터에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1893~1950]가 글을 지은 유허비만 남아 있다.


# 도곡서원 

 


도곡서원은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에 건립된 조선 후기 서원으로, 1701년(숙종 27)에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있는 유림들이 함양 출신 명사들을 추모키 위해 창건했다. 창건 초기에는 고려 후기 문신이며 학자이자 두문동 72현 가운데 한 사람인 조승숙(趙承肅)[1357~1417],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정복주(鄭復周)[1367~?], 조선 전기 문신 노숙동(盧叔仝)[1403~1463]과 노우명(盧友明)[1471~1523]을 모셨다. 



순조 대에는 조선 후기 학자 노사예(盧士豫)[1538~1594]와 정수민(鄭秀民)[1577~1658]을 추가로 배향했고, 2001년 복원 때는 조선 후기 학자 정덕하(鄭德河)를 추가 배향했다.


도곡서원은 창건 당시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마을 어귀에 있었으나, 1869년(고종 6)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毁撤)된 뒤 함양 지역 유림들이 위패를 묻은 곳에 단을 세우고 향사를 지냈다. 2001년에 후손들과 함양 지역 유림들이 원래 서원이 있던 곳의 서쪽인 현재의 위치에다 서원을 복원했다.




현재는 하동정씨, 풍천노씨, 함안조씨 3개 문중이 함께 서원을 운영하고 있다.


도곡서원은 홍살문을 지나 정문인 숭앙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간다. 도곡서원의 강당인 수성당(守誠堂)[정면 4칸의 팔작지붕], 사우인 경덕사(景德祠), 양재에 해당하는 존양재(存養齋)와 진수재(進修齋)가 갖춰져 있다. 진수재 뒤편으로는 관리사가 자리 잡고 있다.


# 백연서원 


백연서원은 조선 후기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에 있던 서원으로,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를 흐르는 위천 근처 소고대 주변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통일신라 시대의 대학자 최치원(崔致遠)[857~?]과 조선 전기 영남 사림의 정신 지주로 있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학덕을 추모키 위해 건립됐다.


1670년(현종 11)에 지방의 유림들이 최치원과 김종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키 위해 서원을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다. 이후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9년(고종 6)에 훼철(毁撤)됐다.


1869년에 서원이 훼철되고 난 뒤 복원되지 못하고 옛 서원 자리에 유허비만 남아 있다./문화재청, 함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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