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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6-안동시 편(1)] 안동 지방의 대표적인 서원 ‘호계서원’ 外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7-25 13:51:11
  • 수정 2022-08-01 23: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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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잠정적으로 여행을 중지했던 본지가 다시 한국의 서원을 준비했다. 하지만 한국의 서원 6편과 8편에 이어 지역별 서원들을 종합 편집해 게재한다. 지난호 경남 함양군의 서원들에 이어 이번 호와 다음 호에서는 안동시의 서원에 대해 살펴본다.<편집자주>

 

# 호계서원



호계서원은 안동 지방의 대표적인 서원으로 1575년(선조 8) 지방사림들이 안동부(安東府) 동북쪽 여산촌(廬山村) 오로봉(五老峯) 아래에 있는 백련사(白蓮寺) 절터에 여강서원(廬江書院)을 세워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위패를 봉안하고 도학을 강론했다. 1605년(선조 38) 대홍수로 인해 유실되자 중창했다.


숙종 2년 사액되면서, ′호계′로 개칭됐다.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다가 7년 뒤 강당만 새로 지었다. 광해군 12년 퇴계선생의 수제자인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양 선생을 추향했다. 호계서원은 안동 유림의 본거지에 300여년 문화의 발상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안동의 수서원으로서 세분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호계강회가 열렸고, 지금까지도 안동 유림들이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원래 월곡면(月谷面) 도곡동(道谷洞)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 수몰지구로 1973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이황은 도산서원, 김성일은 임천서원, 류성룡은 병산서원으로 각각 위패를 옮김으로써 지금은 강당만 남아 있다. 이곳에서 매년 1회 당회(堂會)를 개최하고 있다.


# 묵계서원 


묵계서원은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조선후기 김계행과 옥고를 추모키 위해 창건한 서원 및 교육시설로 시도민속문화재로, 숙종 13년(1687) 에 창건됐다. 




1684년(숙종 10) 서원을 세우고, 1706년(숙종 32) 묘우(廟宇)인 청덕사(淸德祠)를 건립해 김계행(金係行)과 옥고(玉沽)를 제향했다.


이 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됐다. 뒤에 강당과 문루인 읍청루과 진덕문, 동재 건물 등을 복원했다. 또한 서원 옆에 보백당 선생 신도비와 비각을 건립했다. 강당은 정면 5간 축면 2간의 팔작기와 지붕건물로 가운데 3간을 마루로 꾸미고, 좌우에 온돌을 들인 일반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서원 좌측에는 이를 관리하는 정면 6간 축면 5간의 ′ㅁ′자형 주사 가 있다.



보백당 선생은 조선초기 성종때 대사성을 역임, 이조판서 양관대 제학으로 추증됐고 시호는 정헌공인 명헌이며 응계 선생은 세종때 사헌부 장령을 지낸 바 있다. 서원에서 멀지않은 마을 한가운데에 묵계종택이 자리잡고 있다. 종택내에는 보백당이 있는데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묵계리에서 ′묵계새마을교′ 를 건너 하리 골짜기길을 따라 500m쯤 가면 자연과 조화를 이룬 만휴정이 있다. 그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이다. 정자에는 만후정 현판외에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이란 선생의 유훈 및 류도원, 김굉, 김도행, 정박, 이돈우, 김양근공 등 명망이 있는 분들의 시판과 김양근공의 중수기가 게판돼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 중정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고, 제품은 4변(籩) 4두(豆)이다. 묵계서원 및 안동김씨 묵계종택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9호로 지정돼 있다. 


# 역동서원



역동서원은 선조3년(1570)에 퇴계(退溪) 선생의 발의로 역동(易東) 우탁(禹倬)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키 위해 서원을 창건해 위패를 봉안했다. 


숙종10(1684)에 역동(易東)이라 사액돼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오던 중, 고종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다가 1969년 11월 현 위치에 이건 복원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상현사(尙賢祠), 8칸의 명교당(明敎堂), 신문(神門), 입도문(入道門), 1칸의 전사청(典祀廳), 1칸의 장서각(藏書閣), 10칸의 주소(厨所) 등이 있다. 사우인 상현사에는 우탁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강당인 명교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돼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강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전사청은 제수(祭需)를 장만해 보관하는 곳이고, 주소는 서원을 수호하는 고자(庫子)가 사용하고 있다.



숙종이 사액한 현판은 유실됐으나 아직까지 퇴계 선생이 손수 써서 게판했던 ‘역동서원’, ‘광명실’ 등 현판들이 남아 서원을 더욱 정채있게 해준다. 또한 최근 역동서원이 자리잡았던 지역에 안동대학교가 옮겨오면서 그 관리를 맡아 향사 의식 등 제반 서원 운영과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2월 하정(下丁)과 8월 하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고,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 고산서원



고산 서원은 18세기 유학자인 문경공 대산 이상정(文敬公 大山 李象靖)선생을 추모키 위해 1789년(정조 13)에 사림의 공의로 건립됐다. 


선생은 25세에 급제해 여러 벼슬을 거쳐 공조참의에 제수됐으나 사퇴하고 퇴계의 학통을 계승해 성리학을 연구하는 한편 후진을 양성했고 선생의 문인록에 등재된 제자만도 273인이나 된다. 



1882년(고종 19) 이조판서에 증직되고 1910년 문경공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문집 27책이 있고 이기휘편, 제양록, 퇴계서절요, 사례상변통고, 병명발휘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췄다. 특히 앙지재와 백승각의 양 끝은 개방된 마루를 두어 주변 경관을 음미토록 꾸며져 있다. 전사청은 향사 때 제수를 마련하는 곳이고, 동재인 앙지재는 제관들이 숙소로 사용한다. 서재인 백승각에는 서원의 유물이 보관돼 있다. 향도문은 향사 때만 집사들의 출입문으로 사용된다. 앙지재와 백승각의 양끝은 개방된 마루가 있어서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동.서쪽에 3단으로 설치돼 있고, 뜰에는 정요대가 2기 설치돼 있다. 이 정요대는 일명 불받침대라고도 하면서 서원행사 때 그 위에 관솔불을 지폈다.


# 타양서원 



타양서원은 영조17년(1741) 정평공(靖平公) 손홍량(孫洪亮),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 파산(巴山) 류중엄(柳仲淹) 선생을 제향키 위해 설립된 서원이다. 


대원군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돼 일직 송리 뒷산에 단(壇)을 쌓아 제향해 오다가 1984년 사림에 의해 복설돼 매년 3월 중정일에 제향하고 있다. 사당은 상현사(尙賢祠), 당은 성경당(誠敬堂), 동재는 진수재(進修齋), 대문은 경앙문(景仰門)이다. 서재(西齋)는 마련되지 못했다./사진출처-문화재청.한국관광공사.안동시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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