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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20] 박세희 등 3인의 유풍 추모키 위해 건립한 '이천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7-31 17:56:27
  • 수정 2022-08-01 23: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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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 흘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인 이천서원(伊川書院)은 조선 중기의 문신 박세희(朴世熹)[1491~1530].박증손(朴曾孫)[1496~1573].박대붕(朴大鵬)[1525~1592] 3인의 유풍(儒風)을 추모키 위해 건립했다.


박세희는 자가 이회(而晦)이고, 호는 도원재(道源齋)로, 1514년(중종 9)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박세희는 이조좌랑.충청도도사.장령.홍문관응교.좌부승지 등을 역임했고, 기묘사화(1519) 때에 조광조(趙光祖) 일파로 몰려 강계(江界)에서 10여 년 후에 생을 마감했다.




박증손은 자가 대이(大而), 호는 운곡(雲谷)으로, 사마시에 합격해 조광조 등과 교유했고 더 이상은 과거시험에 나아가지 않았다.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박증손은 순천(順天)으로 와서 운곡당을 짓고 후학들에게 강론하면서 살았다.


박대붕은 호가 남포(南浦)이며, 1556년(명종 11) 사마시에 합격해 주부 벼슬을 역임했다. 박대붕은 진사(進士)로서 1589년(선조22) 기축옥사(己丑獄死) 때 정암수(丁巖壽) 등과 올린 소 때문에 투옥된 뒤 풀려났다. 박대붕은 임진왜란 때에 고경명의 의병대에 가담해 금산싸움에서 싸우다 순절했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됐다.





이천서원은 순천시 상사면 동백길 56[흘산리 568]에 있다. 뒤로는 수리봉이 있고 마을 앞쪽으로는 이사천이 흐르는 배산임수 지형에 동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천서원은 1827년(순조 27) 건립됐다가,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고, 1961년 후손들이 기금을 모아 옛 자리에 복설했다.


외문을 들어서 계단을 오르면 마당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강당이 있다. 마당 왼쪽에 기념비가 있고, 마당 오른쪽으로 돌계단을 올라 내삼문을 지나면 정면 3칸, 측면 1칸의 사당 이천사(伊川祠)가 있다. 이천사 오른쪽으로 담장을 끼고 정면 3칸, 측면 1칸의 또 다른 강당이 있다. 이곳에 ‘이천서원(伊川書院)’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천서원의 편액에는 박증손이 1528년 현 순천시 상사면 쌍지리 운곡마을 운곡정사(雲谷精舍)에서 선비로서 안빈낙도하면서 쓴 것으로 추정되는 다음과 같은 시가 걸려 있다.


'호남천지소강남(湖南天地小江南)[호남 천지 작은 강남으로]

어해추비미정감(魚蟹秋肥味正甘)[물고기와 게가 가을이면 살이 올라 맛이 정말 좋다]

안씨생애단음일(顔氏生涯簞飮一)[안연은 밥 한 그릇과 물 한 바가지로 살았고]

요군세계토계삼(堯君世界土階三)[요임금은 세상을 다스렸으되 삼층의 흙 계단뿐이었네]


이천서원은 상주박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고, 매년 양력 3월 13일에 향사한다.


이천서원은 기묘사화 때 도학 정신과 임진왜란 때 의병 정신을 간직한 곳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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