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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인간적 면모 담긴 친필 편지.엽서, 문화재 된다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8-11 18: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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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가 쓴 친필 편지와 엽서가 국가등록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이육사가 친척과 친구에게 보낸 친필 편지와 엽서 등 총 4점을 '이육사 친필 편지 및 엽서'라는 명칭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올릴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한문으로 작성해 친족인 이상하에게 보낸 편지는 이육사가 '중외일보' 대구지국에서 근무하던 때인 1930년 6월 6일 자 소인이 찍혀있고, 당시 겪었던 생활 형편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편지 발신인에는 이육사가 작품을 발표할 때 썼던 것으로 알려진 '활'(活)이라는 이름이 적혔다.


1931년 11월 또 다른 친족인 이원봉에게 보낸 엽서에는 친척 간의 정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이, 1936년 7월 시인 신석초(본명 신응식)에 보낸 엽서에는 두 사람의 진한 우정이 담겨있다.


문화재청은 이육사의 인간적인 면을 파악할 수 있는 친필 자료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또 1921년 건립된 이후 독립운동과 사회계몽 활동이 이뤄진 주요 장소였던 옛 천도교 중앙총부 본관도 함께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에 소재한 천도교 중앙대교당과 함께 건립된 '서울 구(舊) 천도교 중앙총부 본관'은 1969년 도시 개발 사업으로 철거 위기에 놓였다가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천도교 봉황각 옆으로 이전했다.


문화재청은 당대 건축술의 한계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민족종교 활동 및 민족운동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1931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소가 경매로 팔릴 위기에 처하자 국내외 동포들이 성금을 쾌척하면서 작성한 편지 등 기록물을 국가등록문화재로 확정했다.


당시 묘소와 위토(位土.문중에서 조상의 제사 경비 마련을 위해 농사짓는 땅)를 보존키 위해 1932년 3월까지 국내외 2만여 명과 400여 단체가 모금에 동참했고, 화폐가치 기준으로 약 1만 6천 원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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