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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47-하동군 편] 최탁의 학문.덕행 추모한 하동 ‘인천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8-16 14:24:33
  • 수정 2022-08-19 16: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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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1719년(숙종 45)에 지방 유림과 전주최씨 후손들이 최탁(崔濯)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해 옥정리 남포마을에 창건했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됐는데 1903년에 최탁이 태어난 북천면 서황리에 경현당(景賢堂)을 세우고 인천서원의 현판을 옮겨 걸었다. 1960년에 경현당 뒤에 사당인 경인사(景仁祠)를 건립해 인천서원에 모시던 네 인물의 위패를 봉안했다.



최탁은 본관이 전주(全州). 자는 극수(克修), 호는 죽당(竹塘). 할아버지는 최정(崔涏)이며, 아버지는 군수 최기변(崔琦抃)이다.


최탁(崔濯)은 1598년(선조 31)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에서 태어났다. 1630년(인조 8) 무과에 급제해 선전관 겸 비국랑이 됐고, 1636년 광양현감에 제수됐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서 싸웠으나 인조가 청나라 군대에게 항복하자, 심양(瀋陽)에 볼모로 잡혀 가는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모시고 따라갔다.



1645년(인조 23) 귀국해 죽산부사에 제수됐으나 곧 사퇴하고 속리산에 은거했다. 관직을 버린 죄로 남양(南陽)에 유배됐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려나 재자관(齎資官)으로 청나라에 들어가게 됏다. 이때 최탁은 눈물을 흘리면서 청나라 오랑캐에게 자신을 ‘신하’로 일컬을 수 없다면서 벼슬을 그만두려 했으나, 인조의 간곡한 당부로 부득이 청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 옥하관(玉河關)에서 병사했다.



후손들이 최탁(崔濯)의 행적을 적은 ‘죽당실기(竹塘實記)’ 1책이 전한다.


왕명으로 반장(反葬)해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호사리에 안장했다. 


우부승지에 증직됐고, 지역 유림이 인천서원(仁川書院)을 건립해 제향했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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