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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68] 단종의 복위 도모했던 위패 10인 모신 영월 '창절 서원(彰節書院)'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8-26 16: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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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1685년(숙종 11) 장릉(莊陵: 단종의 능)을 개수하면서 감사 홍만종(洪萬鍾)과 군수 조이한(趙爾翰)이 도내에 통문을 돌려 기금을 모아,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하위지(河緯地).유응부(兪應孚) 등 사육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사우를 창건해 위패를 모셨다.



1699년(숙종 25) ‘창절(彰節)’이라 사액돼 서원으로서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왔다. 1791년(정조 15)에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지낸 호장 엄흥도(嚴興道)와 금성대군(錦城大君)을 추가 배향하고, 그 뒤 화의군(和義君)을 추가 배향했다.



경내에는 김시습(金時習).남효온(南孝溫).이맹전(李孟專).원호(元昊).조려(趙旅).성담수(成聃壽).권절(權節) 등의 생육신 위패를 아울러 모시고 있었다. 1741년(영조 17) 왕명으로 서원을 훼철하고, 위패는 매립한 뒤 유적지만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1868년(고종 5)경 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고, 일제강점기 때 복원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창절사(彰節祠).강당.동재(東齋).서재(西齋) 등이 있다.


사우에는 박팽년.성삼문.이개.유성원.하위지.유응부 등 사육신의 위패가 봉안돼 있고,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창절사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돼 있다./사진출처=영월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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