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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16] 부처님 치아사리가 모셔진 '건봉사'
  • 박광준
  • 등록 2022-09-17 07:55:04
  • 수정 2024-04-02 03: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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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거대한 육산이 가로 누워 끝이 없을 듯 길게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하는 금강산, 민족의 영산으로 주저없이 꼽히는 금강산으로 향하는 심사는 그러나 그 초입인 건봉산(911m)에서부터 안타깝게도 단절된다. 군사분계선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간성읍 대대리 교동교를 지나 북쪽으로 교동천을 낀 시멘트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보면 ‘신나는 병영 생활’이라는 글줄이 눈에 밟히고, 비포장길을 따라 기약 없이 또 달려가면 부대 두어 곳을 지나 금강산(정확히 하자면 건봉산) 아래 절이 나선다. 설악산의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을 정도로 거대했던 건봉사이다. 민간 통제 구역 안이지만 지난 1988년 건봉사로 출입하는 길만 민통선에서 해제되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자유로워졌다.





불이문은 한국전쟁 때 불타지 않은 유일한 건물이다. 보통 일주문은 기둥이 2개인데 건봉사 일주문은 4개의 기둥을 세워 지었다.


사지(寺誌)에 신라 법흥왕 7년(520) 아도화상이 창건한 원각사라는 기록이 있으나, 믿을 만한 것은 아니다. 법흥왕 7년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8년 전이고, 아도화상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무려 154년 전에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사람이다. 혹 ‘아도’라는 이름의 다른 승려일까 싶기도 하지만 승려의 행적을 기록한 불교 문헌들에는 ‘아도’라는 이름의 동명이인은 없다. 그렇다면 이는 다만 속설을 기사화하느라 연대를 잘못 맞춘 것으로 여길 수밖에.





6·25전쟁 전까지는 31본산의 하나였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520년(법흥왕 7) 아도(阿道)가 창건하고 원각사라 했고, 533년(법흥왕 20) 부속암자인 보림암(普琳庵)과 반야암(般若庵)을 창건했다. 758년(경덕왕 17) 발징(發徵)이 중건하고 정신(貞信).양순(良順) 등과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10,000일 동안 염불을 계속하는 모임)를 베풀었다. 이것이 우리 나라 만일회의 효시이다.


여기에 신도 1,820명이 참여했다. 그 중 120명은 의복을, 1,700명은 음식을 마련해 염불인들을 봉양했다. 782년 염불만일회에 참여했던 31명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 극락왕생했고, 그 뒤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차례로 왕생했다고 한다.


810년(헌덕왕 2) 승전(勝詮)이 당나라 현수(賢首)에게서 화엄학을 배우고 귀국해 '화엄경'을 강설했고, 845년(문성왕 7) 백화암(白華庵)을 창건했다.




신라 말에 도선(道詵)이 중수한 뒤 절의 서쪽에 봉형(鳳形)의 돌이 있다고 해 서봉사(西鳳寺)라 했고, 1358년(공민왕 7) 나옹(懶翁)이 중건하고 건봉사라 했다. 1464년(세조 10) 세조가 이 절로 행차해 자신의 원당(願堂:소원을 빌기 위한 지정 사찰)으로 삼은 뒤 어실각(御室閣)을 짓게 하고 전답을 내렸고, 친필로 동참문을 써서 하사했다.


이 때부터 조선왕실의 원당이 됐다. 성종은 효령대군(孝寧大君).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조흥수(趙興洙) 등을 파견해 노비와 소금을 하사하고 사방 10리 안을 모두 절의 재산으로 삼게 했다.



1523년(중종 18) 보림(普琳)이 이 절과 보림암을 중수했고, 1605년(선조 38) 유정(惟政)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오면서 불사리와 부처님 치아를 되찾아와서 이 절에 봉안한 뒤 1606년에 중건했고, 혜능은 안양암(安養庵)과 적명암(寂明庵)을 중건했다.


1673년(현종 14) 수흡(修洽)과 도율(道律)이 1,200근의 범종을 주조해 봉안했고, 1683년(숙종 9) 명성왕후(明聖王后)가 시주한 1,000금으로 불상을 개금(改金)했다. 이 때 명성왕후는 불장(佛帳)과 탁의(卓衣)도 시주했다.




1708년 능파교(凌波橋)의 비(碑)를 세우고 동대암(東大庵)을 창건했고, 1724년(경종 4) 주지 채보(彩寶)가 구층탑을 건립하고 부처님의 치아를 봉안하자 명성왕후가 천금을 내렸다.


1726년(영조 2) 석가치상탑비(釋迦齒相塔碑)를 세웠고, 육송정 홍교(六松亭 虹橋)를 중건하고 비를 세웠다. 1754년 정성왕후(貞聖王后)가 상궁 이씨와 안씨를 보내어 석가상을 만들게 하고 팔상전을 세워 원당으로 정했고, 8월에는 영조가 숙종의 어제절함도(御製折檻圖)와 어필서(御筆書)를 내려 어실각에 봉안토록 했다.



1799년 강원도 순찰사 남공철(南公轍)이 유정의 기적비(紀績碑)를 세웠고, 1802년(순조 2) 용허(聳虛)가 제2회 염불만일회를 열었고, 1804년 왕비 김씨가 금 1,000금과 오동향로.오동화준(梧桐花樽).양산 등을 내려 순조의 성수를 축하했다. 1805년 왕비 김씨는 나라를 위한 재(齋)를 올리고 병풍과 '화엄경' 1부를 하사했고, 1828년 유정의 영각(影閣)을 지었다.


1851년 유총(侑聰)이 제3회 염불만일회를 열었고, 1865년(고종 2) 화은(華隱)을 청해 강원(講院)을 개설했가. 이 때부터 대표적인 강원의 하나로서 많은 강사들을 배출했다.




1878년 4월 3일 산불이 일어나서 건물 3,183칸이 전소됐다. 이 때 학림(鶴林)이 불 속에 뛰어들어 팔상전의 삼존불상과 오동향로.절감도 등을 꺼내었다. 1879년 개운사.중흥사(重興寺).봉은사.봉선사(奉先寺).용주사 등의 도움을 얻어 대웅전'어실각.사성전.명부전.범종각.향로전.보안원.낙서암.백화암.청련암을 중건했다.


1881년 관준(寬俊)이 제4회 염불만일회를 설했고, 1885년 운파(雲坡)가 모연금으로 대웅전.관음전.명부전.사성전의 문을 개조하고 대웅전 후면을 돌로 쌓았고, 1886년 명례궁(明禮宮)의 토지를 매입했다. 1888년 청련암과 대원암이 불탔고, 1889년 인파(仁坡).관준 등이 팔상전.진영각.노전.극락전을 중건했다.




1891년 신정왕후(神貞王后)의 소상재를 올렸고, 범운(梵雲)이 부처님 치아를 천안 광덕사에서 받아 와 팔상전에 봉안했고, 1894년 관준이 선원(禪院)을 만들었다. 1906년 사적비를 세웠고, 어산청범음계(魚山廳梵音契)에서 석가영아탑봉안비(釋迦靈牙塔奉安碑)를 세웠고, 봉명학교(鳳鳴學校)도 설립했다. 1908년 제4회 만일염불회를 회향한 뒤 의중(宜重)이 제5회 염불만일회를 열었다.



1911년 조선사찰령에 따라 30본산의 하나가 됐고, 9개 말사를 관장하게 됐다. 또한 상해에서 신간 대장경 일부를 구입해 봉안했고, 1914년 소신대(燒身臺)에 31명의 부도를 세우는 한편 간성군에 포교소를 세웠다.


1917년 팔상전과 낙서암을 중수했고, 1918년 능허(凌虛)와 경해(景海)가 극락전을 중수했고, 운파는 중종(中鐘) 5좌(坐)와 불기(佛器) 30좌를 비치했다.


1919년 능허가 1,000원을 시주해 불이문(不二門)과 영빈관.별실.문수교를 새로 세우고 산영교(山映橋)를 고쳤다. 1920년 인천 포교당과 봉림학교(鳳林學校)를 세웠고, 한암(漢巖)을 청해 무차선회(無遮禪會)를 베풀었다.



1924년 사무소를 중수하고 극락전과 만일회의 부속건물 등을 중건했고, 1926년 불교전문강원을 설치하고 공비생(公費生) 30명을 양성했고, 불상 7위(位)를 개금하고 장구사(葬具舍)를 세웠고, 덕성(德性)의 주재로 제5회 만일염불회를 계승했다.


6.25전쟁 때 이 절은 완전히 폐허가 됐다. 당시까지 현존했던 당우로는 대웅전.관음전.사성전.명부전.독성각.산신각.단하각.진영각.범종각.봉청루.보제루.대지전.동지전.서지전.어실각.어향각.동고.낙서암.극락전.만일원.보안원.선원.원적암.사무소.불이문.여관.장의고.성황당.수침실(水砧室) 등 총 642칸에 이르렀다.




중요 문화재로는 도금원불(鍍金願佛).오동향로.철장(鐵杖).대종.절감도.차거다반(硨磲茶盤) 등과 불사리탑 등 탑 8기, 부도 48기, 비 31기, 고승 영정 44점 등이 있었다.


또 부속 암자로는 보림암.백화암.봉암암.극락암.백련암.반야암.청련암.대성암.적명암.보리암.보문암.대원암.일출암.안양암.동대암.망해암 등이 있었다.


현재 고성 건봉사지는 1982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됐고, 6.25전쟁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불이문은 1984년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됐다. 그 밖에도 능파교와 십바라밀을 상징하는 조각이 새겨진 두 개의 돌기둥, ‘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새겨진 돌기둥 등이 있다./사진-박광준 기자


참고문헌 건봉사[乾鳳寺](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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