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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79] 박순 등 5위를 배향한 나주 ‘월정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9-20 23:37:49
  • 수정 2022-09-21 22: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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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 광곡마을에 있는 서원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 박순 등 5위를 배향한다.


1659년(효종 10)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사암 박순(朴淳 1523~1589)의 학덕을 흠모하는 사림들이 상소를 올려 서원을 창건했고, 1669년(현종 10) 사액이 내려졌다. 1787년(정조 11) 중수했고, 1789년 김계휘(金繼輝 1526~1582), 심의겸(沈義謙 1535~1587), 정철(鄭澈 1536~1593), 홍천경(洪千璟 1553~?)이 추가로 배향했다.


박순의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화숙(和叔), 호는 사암(思菴). 은산군사(殷山郡事) 박소(朴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균관사 박지흥(朴智興)이고, 아버지는 우윤(右尹) 박우(朴祐)이며, 어머니는 당악김씨(棠岳金氏)이다. 기묘명현(己卯名賢) 목사(牧使) 박상(朴祥)의 조카이다.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다.



154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553년(명종 8) 정시 문과에 장원한 뒤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교리(校理),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등을 거쳤다. 1561년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로 있을 때 임백령(林百齡)의 시호 제정 문제에 관련, 윤원형(尹元衡)의 미움을 받고 파면되어 향리인 나주로 돌아왔다.


이듬해 다시 기용돼 한산군수(韓山郡守)로 선정을 베풀었고, 1563년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을 거쳐, 그 뒤 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승정원동부승지.이조참의 등을 지냈다. 1565년 대사간이 돼 대사헌 이탁(李鐸)과 함께 윤원형을 탄핵해 포악한 척신 일당의 횡포를 제거한 주역이 됐다. 그 뒤 대사헌을 거쳐, 1566년 부제학에 임명되고, 이어 이조판서·예조판서를 겸임했다.


1572년 우의정에 임명되고, 이듬해 왕수인(王守仁)의 학술이 그릇됐음을 진술했고, 같은 해 좌의정에 올랐다. 그 뒤 1579년에는 영의정에 임용돼 정승으로 15년간 재직했다. 이이(李珥)가 탄핵됐을 때 옹호하다가 도리어 양사(兩司)의 탄핵을 받고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 영평(永平) 백운산(白雲山)에 암자를 짓고 은거했다.



일찍이 서경덕(徐敬德)에게 학문을 배워 성리학에 널리 통했다. 특히 ‘주역(周易)’에 대한 연구가 깊었다. 문장이 뛰어나고 시에 더욱 능해 당시(唐詩) 원화(元和)의 정통을 이었고, 글씨도 잘 썼다.


중년에 이황(李滉)을 사사(師事)했고, 만년에 이이.성혼(成渾)과 깊이 사귀어 ‘이 세 사람은 용모는 달라도 마음은 하나’라고 할 정도였고, 동향의 기대승(奇大升)과도 교분이 두터웠다. 나주의 월정서원(月井書院), 광주(光州)의 월봉서원(月峰書院), 개성의 화곡서원(花谷書院), 영평(永平)의 옥병서원(玉屛書院)에 제향됐고, 저서로는 ‘사암집(思菴集)’ 7권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김계휘(金繼輝, 1526∼1582)은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회(重晦), 호는 황강(黃崗). 아버지는 지례현감(知禮縣監)호(鎬)이고,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로 공조정랑(工曹正郎)광원(光元)의 딸이다. 장생(長生)은 그의 아들이다.



일찍이 경서와 사서 등을 폭넓게 읽었고, 문장에도 뛰어났다. 1549년(명종4) 식년문과에 을과로 합격해 사가독서(賜暇讀書)에 뽑혔다.그 뒤에도 벼슬은 올랐지만 오랫동안 사가독서를 했다.


1557년 김홍도(金弘度)와 김여부(金汝孚)의 반목으로 옥사가 일어났을 때 김홍도의 당으로 몰려 파직됐다가, 1562년 다시 전의 관직인 이조정랑으로 복직됐으나 아버지의 상중이어서 나가지 않았다. 3년 상을 마치고 다시 벼슬길에 올라 첨정.사간(司諫).집의(執義).응교(應敎)·전한(典翰)·직제학 등을 역임했고, 1566년 문과중시에서 장원을 차지해 동부승지에 제수됐다. 


1571년(선조4)이조참의·예조참의에 제수돼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황해도·전라도의 관찰사를 거쳐 공조참판.형조참판과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등을 역임했다. 1575년 동서 분당 때 심의겸(沈義謙)과 함께 서인으로 지목된 적도 있으나, 당파에는 별로 깊이 간여하지 않고 오히려 당쟁 완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 뒤 평안도관찰사로 있다가 1581년 종계변무(宗系辨誣)를 위한 주청사(奏請使)로 중국에 다녀왔다. 이어서 예조참판에 올라 경연관(經筵官)이 됐다.


우리나라의 산천·마을·도로·성지 등의 형세와 전술적인 문제점, 농작물의 생산 현황, 각 지방의 전통·연혁·씨족 원류 등을 두루 파악해 기록으로 남겼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이조판서로 추증됐고, 나주 월정서원(月井書院)에 제향됐다. 


심의겸(沈義謙, 1535∼1587)은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방숙(方叔), 호는 손암(巽菴)·간암(艮菴)·황재(黃齋).사인(舍人)순문(順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의정 연원(連源)이고, 아버지는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강(鋼)이다.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증판서 대(蹶)의 딸이다.



족부인 감찰 홍(泓)에게 입양됐다. 명종의 비인 인순왕후(仁順王后)의 동생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55년(명종10)진사시에 합격하고, 1562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청요직에 임명됐다. 1563년 사림들이 이량(李樑)으로부터 화를 입게 되자 외숙인 양을 탄핵하며 권세와 간계를 배척하는 등 사림의 입장을 옹호하는 데 힘썼으나 도리어 왕의 외척으로 일을 꾸민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1564년 지평(持平)·검상(檢詳)·사인(舍人)을 거쳐 이듬해 사간·부응교(副應敎) 등을 역임했다. 이어 1566년 집의(執義)·군기시정(軍器寺正)·직제학·동부승지 등을 지냈다. 1569년(선조2) 좌부승지.대사간을 지내고, 1572년 이조참의 등을 지내는 동안 척신 출신으로서 사림들 간에 명망이 높아 선배 사류들에게 촉망을 받았다. 


이 때 김종직(金宗直)계통의 신진세력인 김효원(金孝元)이 김계휘(金繼輝)에 의해 이조정랑으로 천거됐는데, 김효원이 일찍이 명종 때 권신이던 윤원형(尹元衡)의 집에 기거한 사실을 들어 권신에게 아부했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했다. 


1574년 결국 김효원은 이조정랑에 발탁됐는데, 이번에는 1575년 그의 아우 충겸(忠謙)이 이조정랑에 추천되자, 김효원이 전랑(銓郎)의 직분이 척신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 해 반대,두 사람은 대립하기 시작했다. 이에 구세력은 그를 중심으로 서인(西人), 신진세력은 김효원을 중심으로 동인(東人)이라 해 동서분당이 발생했다. 즉,김효원이 한성부의 동부에 산다 해  그 무리들을 동인이라 하고, 심의겸이 서부에 거주했기 때문에 서인이라 했다. 



당시 정승 노수신(盧守愼)과 이이(李珥)가 사림간의 분규가 격화될 것을 우려해 올린 소에 의해 개성유수로 나갔다가 전라감사를 거쳐, 조정으로 돌아왔다. 그 뒤 한때 낙향해 은퇴했으나, 1580년 예조참판으로 함경감사를 역임했다. 이 때 장령(掌令)정인홍(鄭仁弘)이 그를 질투해 탄핵을 받았으나 이이의 상소로 무사해 전주부윤이 됐다.


1584년 이이가 죽자 이발(李潑)·백유양(白惟讓)등이 일을 꾸며 동인과 합세해 공박함으로써 파직 당했다. 그러나 벼슬이 대사헌에 이르렀고, 세습으로 청양군(靑陽君)에 피봉됐다. 효성이 지극하고 검소했고, 외척으로 있으면서도 권세를 함부로 부리지 않았다. 나주의 월정서원(月井書院)에 제향됐다. 


1796년(정조 20) 강당, 1802년(순조 2) 동.서재와 삼문을 중수했고, 1832년(순조 32)에도 중수가 이뤄졌다. 1868년(고종 5) 서원훼철령으로 인해 철폐되자 옛터(금성산 월정봉 아래)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다가 1974년 현재의 위치(나주시 노안면 금안리 광곡마을)에 복설했다.


현재 서원은 사당(27㎡)과 강당(51.4㎡), 내삼문과 외삼문으로 구성돼 있다. 사당은 정면 3칸.측면 1.5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전면에 마루가 설치돼 있다. 강당은 정면 4칸이고, 내.외삼문은 각각 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경내에는 월정서원유허비, 월정서원묘정비가 있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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