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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19] 박광전을 추모하고 있는 '용산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10-10 09: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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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용산서원은 전라남도 보성군 미력면에 있는 조선후기 박광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박광전의 본관은 진원(珍原). 자는 현재(顯哉), 호는 죽천(竹川). 할아버지는 선교랑 박간(朴衎)이고, 아버지는 진사 박이의(朴而誼)이며, 어머니는 습득 최명기(崔命夔)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업했고, 1568년 진사시에 합격했다. 유희춘(柳希春)이 감사(監司)였을 때 천거돼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이 됐고, 다시 헌릉참봉(獻陵參奉)으로 옮겼으나 곧 그만뒀다. 1581년 왕자의 사부(師傅)가 됐고, 함열(咸悅)·회덕(懷德)의 현감을 역임했으나 상관의 뜻을 거슬려 파직됐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계영(任啓英).김익복(金益福).문위세(文緯世) 등과 보성(寶城)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정병 700여 명을 모집하고, 문인 안방준(安邦俊)을 종사(從事)로 삼고 장자인 박근효(朴根孝)를 참모로 삼았으나, 병으로 의병을 통솔할 수 없자 임계영을 의병장으로 추대했다. 




1597년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 적이 호남을 침범하자, 전 판관(判官) 송홍렬(宋弘烈), 생원 박사길(朴士吉) 등에게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고 의병장이 됐다. 동복(同福)에서 적을 크게 무찔렀으나 병이 악화돼 죽었다. 좌승지에 추증되고 보성의 용산서원(龍山書院)에 제향됐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이 서원은 1607년(선조 4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박광전(朴光前)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키 위해 창건해 위패를 모셨다. 1707년(숙종 33)에 ‘용산(龍山)’이라고 사액돼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왔다. 매년 3월과 9월에 향사를 지내왔으나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돼 복원하지 못했다가, 1929년에 유허비를 건립하고, 1987년에 재건립됐다. 죽천집(竹川集) 목판을 소장하고 있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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