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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38]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 순천 '선암사(3)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2-10-12 00:32:49
  • 수정 2024-04-02 03: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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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 


[박광준 기자] # 선암사 목장승


선암사 목장승은 순천 선암사 입구의 동부도전과 순천 선암사 승선교 사이의 길 양편에 각각 한 기씩 세워져 있다.


순천 선암사 입구에서 보아 오른쪽에 있는 장승에는 ‘호법선신(護法善神)’, 왼쪽 장승에는 ‘방생정계(放生淨界)’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모두 밤나무 재질로 만들었고, 온통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선암사 목장승 오른 장승은 머리에 모자를 쓴 듯하고 커다란 눈망울, 주먹코, 치아가 드러나게 웃음 짓고 있고, 곱슬한 수염이 새겨져 있고, 왼쪽 장승도 이와 유사하지만, 광대뼈가 도드라지고 직선 형태의 수염과 굳게 다문 입이 다르다.


선암사 목장승은 현재 두 기가 있다. 하나는 1904년에 세워진 목장승으로, 목장승 뒷면에 ‘갑진년(甲辰年)’이라 적혀 있어서 1904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이 목장승은 훼손이 심해 현재 선암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후 1987년 제작된 목장승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선암사 목장승은 사찰 입구에 세워 사찰의 경계를 표시하고, 사찰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아주는 수호신적인 기능을 지닌 장승으로서 한국의 전형적인 사찰장승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원통전과 장경각 사이에 나 있는 작은 문을 넘어서면 선암사 들목에서 보았던 차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너른 차밭이 펼쳐진다. 차밭을 지나면 주변에는 선암사중수비와 고려시대 부도 3기가 각각 흩어져 있다.


무우전장경각 뒤로 난 좁은 문을 지나 경내를 벗어나면 차밭이 펼쳐진다. 일주문 입구 키 큰 나무들 아래에 자리한 차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데 이곳에서 만든 차는 맛과 향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


선암사중수비는 무우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전나무 숲속에 있다. 귀부와 이수, 비신을 모두 갖추고 있고, 선암사의 중수 경위와 선암사의 형국, 창건 유래 등을 기록하고 있다. 또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 약휴가 성심으로 선암사를 보호하므로 호암이라 부른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 중수비는 숙종 33년(1707)에 세워졌고 당대의 문장인 채팽윤(1669~1731)이 글을 짓고 명필인 이진휴(1657~1710)가 썼다. 높이는 5.02m이다.


선암사중수비 바로 옆에는 1929년에 세워진 선암사사적비가 있다. 선암사사적비는 아도화상이 초창했다는 초기 기록과 연혁상 황을 비교적 상세히 적고 있다. 


순천 선암사의 중수비와 사적비무우전에서 운수암으로 오르는 길목에 서 있다. 두 비 모두 귀부 위에 비좌를 마련하고 그 위에 비신과 이수를 얹은 형식이다. 왼쪽 비가 1707년에 세운 중수비이고 오른쪽 비는 1929년에 세운 사적비이다.


경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선암사 외곽의 부도 세 점은 무우전 부도, 선조암터 부도, 대각암 부도라고 불리는 팔각원당형의 부도들이다. 이 세 기의 부도는 조형미를 갖추고 있음에도 모두 외진 곳에 있고 잘 알려지지도 않아 제대로 돌보아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먼저 무우전 부도는 경내에서 가장 외진 무우전 뒤쪽으로 약 200m 떨어져 있다. 높이 2.51m로 세 기의 부도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무우전 부도로 불리기는 하지만, 무우전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우전 부도/사진-문화재청 무우전 부도는 전체적으로 팔각원당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고 지붕돌 일부가 파손된 것을 빼고는 기단부에서 상륜부까지 각 부재가 온전하다. 세부를 살펴보면 8각 지대석 위에 안상이 새겨진 굄대가 놓여 하대석을 받치고 있고, 하대석에는 구름이 치밀하게 조각됐고, 중대석에는 물결무늬가 있다. 중대석과 하대석은 한 석재이다. 


상대석에는 앙화가 조각됐다. 연꽃 안에 또 다른 꽃무늬가 장식돼 있다. 높직한 굄돌 위에 올라선 몸돌은 전체적으로 위쪽이 아래쪽보다 좁은 사다리꼴 모양이다. 각 면에는 문비와 무기를 든 신장상이 조각돼 있다. 문비의 자물쇠 부분에는 가릉빈가의 모습이 뚜렷하고, 문비 아래에는 신방석도 표현돼 있다. 


지붕돌 낙수면 경사는 매우 완만한 편이고 지붕면을 따라 경사져내린 우동마루의 표현이 뚜렷하고 추녀 끝에 귀꽃 장식이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과 앙화.보개.보주 등이 차례로 남아 있다. 상륜부를 제외한 탑신부와 기단부의 비율이 거의 1:1로 전체 높이 3.3m이다.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전반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보물이다.


선조암 부도/사진-문화재청 팔각원당형의 선암사 3부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부도 몸돌의 문비 아래에는 다른 부도에서 볼 수 없는 심방석까지 새겨져 있다.


절 뒤쪽 무성한 차밭을 가로질러 북쪽 산길로 방향을 잡으면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길이 잣나무 숲속으로 이어진다. 이 숲 깊숙한 곳에 선조암터 부도가 자리잡고 있다. 상륜부 일부와 지붕돌 귀꽃 장식 두 개가 파손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온전하다. 무우전 부도와 대체로 비슷한 모습이나 약간 작고 더 화려하다. 부도의 주인공이 도선국사라 한다. 하지만 믿기는 어렵다. 이 부도는 고려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전체 높이는 약 2.4m이고 보물이다.


선조암터 부도의 기단부는 팔각지대석 위에 높직한 굄을 마련해 상하 2단의 하대석을 뒀는데, 하단에는 사자상, 상단에는 운룡문을 새겼다. 이 운룡문 사이로 배수시설도 마련돼 있다. 높직한 팔각 굄대 위에 안상과 꽃무늬가 장식된 고복형 중대석이 있고, 앙련 모양의 상대석은 중대석과 한 돌이다. 


순천 선암사 대각암 부도/사진-문화재청 몸돌 각 면에는 우주와 창방(昌枋), 그리고 전후면에 문비가 장식돼 있다. 문비 양쪽 면에 조각된 인왕상은 무우전 부도에 비해 훨씬 양감이 있다. 지붕돌은 평박한 편이고 기와골은 표현되지 않았다. 합각선의 우동마루가 뚜렷하고 추녀 끝에 큼직한 귀꽃이 있다. 상륜부는 노반.복발.보륜.보개가 있고, 보주는 사라지고 없다. 10세기경 고려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선암사 세 부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 여겨진다. 전체적으로 탑신부에 비해 기단부가 훨씬 크며 장식적 요소 또한 기단부에 치우쳐 있다.


또 조계산 등산로를 따라 약 300m쯤 올라가면 대각암이 나온다. 이 길 중간쯤에 마애여래입상이 하나 있다. 길 왼편으로 높직하게 서 있는 암벽에 선각으로 새겨져 있는 이 불상은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작품은 아니지만, 높이 5m로 전남지역에서는 큰 마애불상 가운데 하나이다. 표정과 머리 장식이 독특해 이국적인 인상마저 풍긴다. 고려 중기나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계산에서는 유일한 마애불이다. 이국적인 표현이라든지 도식화된 법의, 그리고 신체의 상단에 비해 하단이 간략화 된 것 등으로 보아 고려 중.후기에 제작됐을 것으로 여긴다.


마애여래입상/사진-문화재청 화엄종과 법상종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는 불교계를 개혁키 위해 천태종을 개창한 의천이 선암사를 중창 불사할 때 이 대각암에 머물렀다고 한다. 대각암 뒤편 언덕에는 대각국사의 것이라고 알려진 부도가 자리하고 있다. 부도는 높이 2.5m의 팔각원당형으로, 지붕돌의 귀꽃 일부가 파손된 것을 제외하고 기단부에서 상륜부의 보주에 이르기까지 각 부재가 온전하게 보존돼 있다.


대각암 뒤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부도이다. 지붕돌의 귀꽃 일부가 파손된 것을 제외하고는 기단부에서 상륜부까지 각 부재가 온전하게 보전돼 있는데 무우전 부도나 선조암 부도에 비해 다부져 보이는 인상이다.


대각암 부도의 기단부는 지대석.하대석.중대석.상대석이 각기 1매씩의 석재로 돼 있다. 네모난 지대석 위에 안상을 새긴 굄돌을 놓고 그 위로 구름이 장식된 하대석을 얹었고, 중대석 각 면에는 안상이, 상대석에는 활짝 핀 연꽃이 조각돼 있다. 그 위에 올라앉은 몸돌에는 우주가 모각돼 있고, 앞뒤쪽 면에는 문비가 조각됐다. 지붕돌 낙수면에는 굵은 우동마루가 표시돼 있고 추녀 끝에는 큼직한 귀꽃이, 상륜부에는 앙화와 보륜, 보주 등이 마련돼 있다. 대각암 부도는 세 부도 가운데 가장 시대가 늦은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 선암사 서편 부도군



조선 후기에는 유력한 승려들이 머물렀던 사찰들을 중심으로 많은 양의 부도가 건립됐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불교가 다시 부흥하고, 승려들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부도가 살아생전 법계에 따라 건립되지 않고 입적 이후 추모적인 성격으로 인식이 변화되면서 많은 승려의 승탑이 건립됐다. 


특히 사찰의 입구나 특정한 공간에 법맥이나 사제관계 등에 따라 부도를 건립했다. 선암사 서편의 서부도전에 건립된 부도들도 조선 후기 순천 선암사에 주석했던 승려들의 승탑이 건립되면서 하나의 군을 이루게 된 것이다. 조선 후기 성행했던 석종형과 원구형 양식의 부도가 건립돼 전해지고 있다.


선암사 서편 부도군 12기 부도들의 주인공은 조선 후기 순천 선암사에 주석하면서 수행과 중생 구제 활동을 했거나, 선암사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입적한 승려들로 확인되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법맥이나 사제관계 등을 고려해 사찰의 특정한 장소에 입적한 승려들을 추모하고 공양키 위해 부도를 건립해 줬다. 선암사 서편 부도군 승탑들도 조선 후기에 현재의 공간에 지속해서 부도를 건립해 주면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선암사 서편 부도군은 조계산 자락에 있는 선암사의 중심 사역을 중심으로 서쪽 편에 있는 숲속에 넓은 공간을 마련해 조성했는데, 외곽에 담을 쌓아 일정한 공간을 조성한 후 그 안에 총 11기의 부도가 건립돼 있고, 1기는 담 외곽에 있다.


현재 선암사 서편 부도군 담 안에는 환허당(幻虛堂), 능허당(凌虛堂), 모현당(慕玄堂), 일명 부도, 유암당(柳巖堂), 일명 부도, 향서당(向西堂), 호암당(護巖堂), 지환당(知幻堂), 연화당(蓮華堂), 월암당(月巖堂) 승탑까지 11기가 세워져 있고, 담 외곽으로 독특한 양식의 성윤수좌 사리탑(性允首座 舍利塔)이 있어 총 12기의 부도가 남아 있다. 


이 중에서 주인공을 알 수 없는 2기의 일명 부도, 유암당, 향서당의 승탑은 석종형 양식으로 조선 후기에 건립됐고, 석종을 범종의 형태처럼 치석(治石)해 초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호암당[1738년경], 환허당[1742년경], 능허당, 월암당, 모현당, 지환당의 승탑은 원구형 양식으로 조선 후기인 18.19세기대에 걸쳐 건립됐다. 연화당 승탑은 탑신을 석주형으로 마련한 독특한 형태이고, 성윤수좌 사리탑은 거석형으로 마련해 앞면에 명문을 새겨 승려의 사리탑임을 알 수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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