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준 기자] 화성 축성의 마지막 작업은 화성을 지켜주는 신령을 모시는 성신사(城神祠)를 만드는 것이었다. 3여년에 걸쳐 만들어진 화성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은 성신사춘추상향축문(城神祠春秋常享祝文)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성성역이 막바지에 다른 정조 18년(1796) 7월에 시작한 성신사 건축은 한 달도 되지 않아 마무리되고, 성신사의 위패(位牌)는 길일을 기다려 9월 19일에 정당(正堂)에 모셨다. 성신사는 팔달산 오른쪽 기슭 병풍바위(屛巖) 위에 동향해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아 의궤의 묘사된 정도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위패를 모신 정당은 3칸×3칸으로 전돌이 깔린 단 위에 올라서 있고, 사방에는 담이 둘러쳐 있다. 담의 전면에는 삼문(三門)을 두고, 삼문의 북쪽에는 외부를 향해 문이 열린 재실(齋室)을 두어 관리인이나 제사 참석인들이 사용케 했고, 남쪽으로는 담장 안쪽으로 열린 전사청이 있어 제사에 사용되는 용품을 보관하게 했다. 사당 안 가운데 탁자 위에는 위패를 모시고, 매년 봄가을 음력 첫 달(孟朔)에 제사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