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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24] 전조생을 배향한 의령 '태암서원'
  • 이승준
  • 등록 2022-10-17 02:05:18
  • 수정 2022-10-17 02: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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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1997년 12월 31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됐다. 이 서원은 조선시대인 1789년(정조 13)에 전조생(田祖生)과 그의 손자 전자수(田子壽)를 향사키 위해 유림(儒林)과 담양전씨 후손이 건립했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철됐다가 그뒤 중건됐다.



이 서원은 200여 평의 대지에 정면 6칸, 측면 2칸의 강당과 3칸의 별묘(別廟)로 구성돼 있다. 별묘에는 전조생의 영정과 두 사람의 문집 등을 보존하고 있으며 해마다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전조새의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계경(季耕). 호는 경은(耕隱). 아버지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전희경(田希慶)이고, 어머니는 웅신서씨(熊神徐氏)로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 서성윤(徐成允)의 딸이다.



1336년(충숙왕 복위 5) 문과에 급제했고, 1341년(충혜왕 복위 2)에 왕이 전조생을 불러 두 왕자를 한(漢)나라 곽광(霍光)과 제갈량(諸葛亮)같이 보필해 줄 것을 부탁했다. 1346년(충목왕 복위 2)이제현(李齊賢).이곡(李穀) 등과 '편년강목(編年綱目)'을 찬정(撰定)했고, 우탁(禹倬)을 따라 정주(程朱)의 성리학을 강명(講明)했다.





1349년(충정왕 1) 찬성첨의부사(贊成僉議府事)에 제수됐고, 1351년 다시 찬성첨의부사에 올랐을 때 왕이 강화에서 손위(遜位)하자, 이강(李岡).박사신(朴思愼).한수(韓修) 등과 호종(扈從)했다가 그 길로 운둔해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계자시(誡子詩)'와 '경학문(警學文)'을 지어 후진을 계도했다. 태암서원(泰巖書院)에 별향(別享)됐고, 구산서원(龜山書院).소계서원(蘇溪書院)에 배향됐다.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전자수의 자는 백인(伯仁), 호는 회정(晦亭) 또는 월호(月湖)로 일찍이 벼슬에 나가 광정대부 첨의평리 겸 집현관 대제학을 지냈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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