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한국의 전통사찰 45]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속초 '신흥사'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2-10-20 10:06:02
  • 수정 2024-04-02 03:40:38

기사수정

[박광준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이다. 652년(진덕여왕 6)에 자장(慈藏)이 창건해 향성사(香城寺)라 했고, 당시 계조암(繼祖庵)과 능인암(能仁庵)도 함께 지었다. 이때 자장은 구층탑을 만들어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했다고 하는데 이 구층탑이 어느 탑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향성사는 698년(효소왕 7)에 능인암과 함께 불타 버린 뒤 3년간 폐허로 남아 있었다.


701년에 의상(義湘)이 자리를 능인암터로 옮겨서 향성사를 중건하고 절이름을 선정사(禪定寺)라고 고쳤다. 이때 의상은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의 3존불을 조성해 이 절에 봉안했다. 선정사는 1000년 동안 번창했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구층탑이 파괴됐고, 1642년(인조 20)에는 화재로 완전히 타 버렸다.


신흥사 전경 1644년에 영서(靈瑞).연옥(蓮玉).혜원(惠元) 등이 중창을 발원하던 중, 하루는 세 승려가 똑같이 소림암(小林庵)에서 나타난 신인(神人)이 이곳에 절을 지으면 수만 년이 가도 3재(災)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고 일러주는 꿈을 꾸고, 선정사 옛터 아래쪽 약 10리 지점에 다시 절을 짓고 이름을 신흥사라 했다.


그 뒤 신흥사에는 수많은 불사(佛事)가 이뤄졌다. 1647년에는 대웅전을 건립했고, 1661년(현종 2)에는 해장전(海藏殿)을 짓고 ‘법화경(法華經)’ 등의 판본을 뒀고, 1715년(숙종 41)에 설선당(說禪堂)이 불에 타 버리자 1717년에 취진(就眞).익성(益成) 등이 다시 중건했다.


1725년(영조 1)에는 해장전을 중수했고, 1737년에는 명부전을 창건하고 지장보살상을 봉안했고, 1801년(순조 1)에는 벽파(碧波).창오(暢悟) 등이 용선전(龍船殿)을 짓고 열성조(列聖朝)의 위패를 봉안했다. 1813년에는 주운(周雲) 등이 불이문(不二門)과 단속문(斷俗門)을 세웠고, 벽파 등은 보제루(普濟樓)를 중수했다.



1821년에는 극락보전(極樂寶殿)을 중수했고, 1858년(철종 9)에는 벽하(碧河).명성(明成) 등이 16나한을 구월산 패엽사(貝葉寺)에서 해장전으로 옮기고 해장전의 이름을 응진전(應眞殿)이라고 고쳤다. 그 뒤 1909년에는 용선전이 헐렸고, 1910년에는 응진전이 불탔고, 1912년에는 건봉사(乾鳳寺)의 말사가 됐다.


1924년에는 설선당 후각(後閣) 32칸을 중수했다. 1965년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가 돼 양광.속초.강릉 등지의 사암을 관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절의 주지를 지냈던 성원(聲源)이 대소의 당우들을 거의 모두 중건 또는 중수했고, 범종을 새로 만들었다. 최근 절이름을 ‘神興寺’에서 ‘新興寺’로 고쳐 부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명부전.영산전.보제루.천왕문.일주문.불이문.적묵당(寂默堂).설선당 등과 1985년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보제루가 있다. 이 가운데 197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극락보전은 1644년에 세운 건물로 중앙의 공포(拱包: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맞추어 댄 나무쪽들)와 단청이 지극히 아름답다.



현재 봉안된 삼존불은 의상이 중건할 때 조성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또한, 보제루는 휴정(休靜) 등 고승 60여 인의 진영(眞影)이 안치돼 있고, 조선시대 효종이 하사한 향로와 김정희(金正喜)의 진필(眞筆)이 있다. 절 일원이 1984년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됐고, 중요문화재로는 1966년 보물로 지정된 향성사지삼층석탑과 청동시루.범종, 197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신흥사 경판 277매(枚), 사천왕상 등이 있다.


청동시루는 순조의 하사품으로 벽파가 역대 왕조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것이고, 경판은 효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한자.한글.범어(梵語)가 혼합돼 있는 희귀한 것으로 가치가 크다. 경판의 종류로는 ‘은중경(恩重經)’ 전질과 ‘법화경’ 일부 등이 소장돼 있다.


범종은 경내 보제루에 보존돼 있다. 이 종은 1400여년 전 향성사의 종이라고 전한다. 향성사가 불탈 때 깨졌던 것을 1748년에 원각(圓覺)이 개주했으나 소리가 완전하지 못해 1758년에 홍안(弘眼)이 다시 개주했다. 이 종의 무게는 600㎏으로 6.25전쟁 때 총상을 입은 뒤 1963년에 수리해 보존 중이다. 사천왕상은 인도산 마디가원목을 사용해 1981년에 조성, 봉안한 것이다.


신흥사 경판 

최근에는 1997년 10월 높이 14.6m로 세계 최대의 청동불좌상이 조성한 지 10년 만에 일주문 앞에 봉안됐다. 이 청동대불은 통일을 염원하면서 세운 것으로, 일명 ‘통일대불’로도 부른다. 부속 암자로는 선정사의 옛터에 세워진 내원암(內院庵)과 655년에 건립한 계조암, 1785년(정조 9)에 창건한 안양암(安養庵) 등이 있다.


# 속초 신흥사 명부전


신흥사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모시기 위한 불전으로 1737년(영조 13)에 창건됐고 1797년(정조 21)과 1975년에 중수됐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5량가 구조로 출목 2익공 형식을 취하고 있고, 지붕은 겹처마에 맞배 기와지붕이다. 2011년 12월에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신흥사 명부전은 주불전인 극락보전(極樂寶殿)의 동쪽에 남향으로 나란히 앉아 있다. 명부전은 1737년(영조 13)에 창건됐고 1797년(정조 21)과 1975년 두 차례에 중수된 기록이 있다. 명부전 내부 중앙에는 닫집을 갖추고 목조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 목조도명존자입상과 목조무독귀왕입상을 봉안했고, 지장보살 후면에는 지장탱화를 걸었다.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5량가 건물로, 지붕은 겹처마를 갖춘 맞배 기와지붕으로, 좌우 측면에 풍판을 달아 비바람을 막도록 했다. 포작은 출목 2익공 형태로 구성했다.


건물 내부 천정은 중도리 상부에서 우물천장을 구성하고, 중도리와 주심도리 사이에 빗천장을 대었다. 이는 대들보를 드러내고 건물의 높이를 확보하려는 의도였으나, 다양한 천정 마감으로 장식적인 효과도 만들어냈다. 정면 어칸과 협칸에는 꽃살 창호를 설치해 장식했고, 좌우 협칸의 창호는 폭과 높이를 줄여 어칸과 차별성을 뒀다.



신흥사 명부전은 전체적으로 18세기 사찰 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나, 그중에서 공포 형태와 창호 구성이 독특하다. 기둥머리에 구성되는 공포는 출목 2익공이다. 외부로 뻗어나간 초익공과 이익공은 쇠서형으로 조각했고, 내부로 뻗어나간 초익공은 연꽃 봉우리를 조각했고, 이익공은 보아지로 대들보를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익공 형태는 18세기에 유행하였던 것으로 시대성을 반영한다.


명부전의 창호는 정면에만 구성됐다. 후면과 측면에 창호가 없으므로 주로 정면의 협칸 창호를 통해 출입하게 된다. 그러나 협칸 창호는 성인 키보다 작게 만들어 고개를 숙이고 명부전에 출입토록 하려는 의도가 보이는 형태다.



전면 창호의 구성이 독특하다. 출목 익공 구조는 주심포로 구분해야 한다는 견해도 다분한 만큼, 명부전의 공포는 주심포와 익공 양식이 절충돼 동시대의 건축 양식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신흥사에 있는 극락보전이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의 유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됐고, 2018년 6월 4일 보물 제1981호로 승격됐다. 


설악산 동쪽 기슭에 있는 신흥사의 본전(本殿)으로 조선 인조 25년(1647)에 처음 지어졌고, 영조 26년(1750)과 순조 21년(1821)의 큰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잘 다듬어진 화강석으로 쌓은 높은 장대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석을 두고 그랭이질한 후, 다시 그 위에 약간의 배흘림이 있는 둥근 기둥을 세웠다. 


3출목의 공포에 앙서를 조성하고, 주두, 소로와 첨차 등에서 굽받침이 없이 아랫부분이 직면으로 비스듬히 잘린 조선시대 후기 건축의 일반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전면 중앙의 꽃살 문양 문과 협칸의 빗살 문양 문이 돋보이고, 영조 37년(1761)에 다시 조성된 3계 5단의 전면 석계단은 진경 시대의 조각수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소맷돌을 용 모양으로 마감하고, 바깥 면에는 귀면 형태의 나어두와 삼태극 및 비운문 문양을 양각하고, 위아래로 안상대를 둘렀다. 사찰에 잘 쓰이지 않는 다양한 문양으로 만들어졌으나 그 조각이 뛰어나다.


극락보전 석조계단 조선 중기 이후에 조성된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다.


속초 신흥사는 외설악 동사면 기슭에 위치하는 사찰로 신라 진덕여왕 6년(652년) 자장율사(慈藏律師)가 향성사로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창건 후 소실 된 사찰을 임진왜란 이후 1644년(인조22년) 향성사 옛터에서 아래로 10리 떨어진 곳에 신흥사로 다시 세웠고,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흥사 극락보전은 ‘설악산신흥사대법당중창기’(1749년), ‘신흥사극락전중수기’(1770년), ‘신흥사극락보전중수상량문’(1821년) 등의 자료에 의하면 영조 25년(1749년)부터 순조 21년(1821년)까지 근세 이전에 네 차례 수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보수공사 기록 등 연혁을 확인할 수 있는 풍부한 문헌 기록을 갖고 있어 건물의 역사를 입증하고 있다.


신흥사 극락보전 내부전경/사진-문화재청 신흥사 경내의 중심 영역은 마당을 중심으로 주불전인 극락보전과 출입문인 보제루가 마주보고 있고 마당 좌우에 운하당과 적묵당이 자리잡고 있는 사동중정형(四棟中庭形) 배치를 이루고 있다. 


극락보전은 18세기 중엽에 중건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多包)식 팔작지붕 건물로서, 18~19세기 영동지방의 중요한 왕실 원당사찰로서 세부의장 및 공포형식이 우수하고 기단과 계단, 창호 등 높은 품격의 요소들을 잘 보존하고 있다. 특히 기단의 모란, 사자 문양과 계단 소맷돌의 삼태극, 용두 문양 조각들은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귀한 사례이다.



창호는 소슬빗꽃살 등 다양하고 화사한 꽃살로 장식했고 보존상태도 우수한 편이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화려함과 품위를 동시에 가지고 있고 조선후기 다포식 공포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물천장 등의 구조와 내부 닫집의 섬세한 조각형태 그리고 건립 당시로 추정되는 단청문양이 남아 있다.


이처럼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은 형태, 구조, 장식 측면에서 뛰어날 뿐만 아니라 보존상태 또한 양호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역사적, 건축적, 예술적 가치가 충분하다./다음호에 계속(사진-박광준 기자)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