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독립기념관, 11월의 독립운동가 전시회 개최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11-12 08:35:16

기사수정
  • 좌우를 넘어 민족유일당 운동을 이끈 박건병-강경선-배천택

'오늘 우리의 혁명', '독립신문'/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1926년 7월 8일 삼일당에서 개최한 연설회에서 안창호가 선언한 임시정부 유지에 대한 의지 표명과 함께 혁명당 조직 촉구에 대한 안창호의 연설 내용이 게재됐다. [이승준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민족유일당 운동을 이끈 박건병, 강경선, 배천택 선생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1920년대 중반, 국내외에서는 전 민족이 단결한 정당을 조직하고 이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자는 민족유일당운동이 일어났다. 민족유일당운동은 1926년 안창호가 대독립당 결성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확산됐고, 1926년 10월 베이징에서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 결성을 시작으로 1927년부터 상하이.광둥.우한.난징 등에서 잇따라 촉성회가 성립됐다. 


그리고 1927년 11월 상하이에서 각지의 촉성회를 연결해 유일당 조직을 주비할 모임을 결성키 위해 5개 촉성회 단체가 연합한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가 결성됐다. 박건병.강경선.배천택은 베이징과 상하이 등에서 민족유일당운동에 적극 동참하면서 촉성회 성립과 활동을 주도했다.

  

박건병은 1892년 강원도 김화에서 태어났다.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에서 활동하고 임시의정원 강원도 의원을 역임했다. 이후 베이징으로 건너가 1920년 북경군사통일촉성회에 합류했고 1923년 베이징 대표로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했고 북경한교동지회(北京韓僑同志會)에서도 활동했다. 중국 관내지역에서 민족유일당운동이 시작되자 1926년 북경촉성회 결성에 참가해 집행위원으로 활약했고, 1927년 한국독립당 관내촉성회연합회 결성 때 집행위원으로 선출됐다. 정부는 박건병의 공훈을 기려 199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국민대표회의 개조파 성명서, 1923년 1월부터 6월까지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독립운동계의 현안을 논의한 국민대표회의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개조를 주장하는 독립운동가들이 반포한 성명서이다. 강경선은 1891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 상하이를 근거지로 활동하면서 상해대한인거류민단(上海大韓人居留民團) 간사와 대한적십자회 상의원 등을 역임했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에 참가했고 이후 인성학교 교감, 임시의정원 평안도 의원, 임시정부 경제후원회 활동 등을 통해 임시정부의 운영과 지원을 위해 노력했다. 


중국 관내지역 민족유일당운동에 동참해 1927년 상하이 지역에서 한국유일독립당 촉성회를 결성할 때 25명 중 한 명의 집행위원으로 선출됐다. 정부는 강경선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배천택은 1892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서로군정서에 동참했고 1920년 북경군사통일촉성회 결성에 참여했다. 1923년 1월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자 서로군정서의 대표로 참석했다. 이후 베이징으로 돌아와 북경한교동지회에 참여하며 실행위원으로 활약했다. 


1926년 북경촉성회를 조직할 때 집행위원으로 선출돼 창립선언서와 간장(簡章)을 기초했다. 1927년 한국독립당 관내촉성회연합회의 결성에 참여해 집행위원이자 상무위원으로 활동했다. 정부는 배천택의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