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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121] 용이 뛰놀고 봉이 높이 나른다는 '용왕봉저장'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2-11-21 22:10:26
  • 수정 2024-04-10 10: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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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동작구 본동 10-30에 있는 조선시대 후기의 정자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됐다. '용왕봉저장'이란 용이 뛰놀고 봉이 높이 나른다는 뜻이다. 


한강대교 남쪽(노량진 수원지 건너편) 언덕에 있는 이 정자는 정조 13년(1789)에 시역해 2년 후에 완공한 건물로 정조가 수원 화산에 있는 부왕인 장조, 곧 사도세자의 원묘인 현륭원에 참배하러 다닐 때, 노들강(한강)에 배다리를 설치하고 건너가 잠시 어가를 쉬게 하기 위해 행궁으로 스던 곳이다. 



이 터는 선조 때에 영의정을 지낸 이양원의 집터였다고 전한다. 따라서 그의 호도 노량진을 뜻하는 노저라고 했다고 한다. 조선 말기에는 한때 구당 유길준이 이곳에 살았다. 


장조의 원묘인 영우원은 당초 양주 배봉산에 있었는데 효성이 지극한 정조는 부왕의 원묘가 너무 협소하고 규모도 보잘 것 없는 것을 가슴아파하다가 1789년 11월 수원 화산으로 천묘하고 현륭원이라고 고쳐 불렀다. 그리고 자주 행행하였는데, 당시의 모습을 이신이 그린 '노량진주교 및 행궁도'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은 잠시쉬면서 주식(점심)을 하던 곳이라 하여 일명 주정소라고도 칭했고 이때에는 주교 가설을 담당하는 주교사와 주교대장도 두었었다. 주교사가 맡아보던 배다리는 관유와 사유로 도합 28척의 배로 한강을 건너지르고 그 위에 긴 널판 1천여장을 깔았으며 양 가에는 난간을 설치했다. 난간에는 갓대를 쭉 꽂고 배다리 양 쪽 끝에는 홍살문을 세웠다. 주교사는 고종 19년(1882)에 폐지됐다. 


당초 이 행궁에는 정문과 누정 등 두세 채의 건물이 있었던 듯하나 고종 때 유길준에게 하사돼 그 후 전전하다가 1930년 일본인 지전의 손에 들어가 건물 일부를 철거하고 부근 5,300여평에 온천, 욕탕, 운동장, 식당 등을 두어 오락장으로 삼고 이름도 '용봉정'으로 고쳤다. 



광복과 함께 이를 국유로 환원해 오락시설을 철거하고 원래의 이름으로 고쳤다. 


2단의 나즈막한 기단 위에 각주를 세운 이 정자는 정면 6칸, 측면 2간으로 건평 10평이다. 중앙부는 온돌방으로 꾸미고 방의 외벽에는 띠살분합문을 달았고 방의 둘레에는 퇴간을 두어 마루를 구몄다. 정면 중앙 3칸은 개방돼 디딤돌을 통해 마루로 올라가게 됐고 둘레에는 난간을 돌렸다. 네모기둥머리에는 초익공을 결구하고 2중량을 둔 5량구조에 겹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는데 간결하면서도 격식을 갖춘 특수기능의 건물이다. 



경승지를 이룬 한강변에는 많은 누정이 즐비했지만 지금은 유일하게 이 저장만 남아 있다. 


정측괴수는 임진왜란 당시 도원수로 있던 이원명이 기념을오 심었다고 전한다.    


'화성행행도팔첩병'의 그림은 오른쪽 제1폭부터 화성의 문선왕묘(文宣王廟)에서 치러진 알성의(謁聖儀)를 그린 '화성성묘전배도(華城聖廟展拜圖)', 화성.광주.시흥.과천의 유생들을 대상으로 치른 문무과 정시별시(庭試別試)의 합격자 발표 광경을 그린 '낙남헌방방도(落南軒放榜圖)', 화성행궁의 봉수당에서 거행된 진찬례를 그린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 수원부 노인을 초대해 낙남헌에서 베푼 양로연을 그린 '낙남헌양로연도(落南軒養老宴圖)', 화성 성곽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서장대에서 밤에 군사 조련하는 장면을 그린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 화성행궁의 득중정에서 정조가 활쏘기를 하고 혜경궁과 함께 불꽃놀이를 즐겼던 장면을 그린 '득중정어사도(得中亭御射圖)', 환궁하는 여정 중에 숙소인 시흥행궁(始興行宮)으로 향하는 어가행렬을 그린 '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 노량진에 설치된 주교를 사용해 한강을 건너는 환어 행렬을 그린 '한강주교환어도(漢江舟橋還御圖)'의 순서로 8폭이 배열돼 있다.


김득신(金得臣), 1754∼1822 외 | 화성능행도(華城陵幸圖) 8폭 병풍, 1795년경, 비단에 채색, 각 151.5 × 66.4cm, 국립중앙박물관(상단 왼쪽부터 오른쪽 방향으로) 8폭 한강주교환어, 7폭 환어행렬, 6폭 득중정어사, 5폭 서장대야조, 4폭 낙남헌양로연, 3폭 낙남헌방방, 2폭 봉수당진찬, 1폭 화성성묘전배'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이 병풍을 그린 최득현(崔得賢), 김득신(金得臣, 1754-1822), 이명규(李命奎), 장한종(張漢宗, 1768-1815), 윤석근(尹碩根), 허식(許寔, 1762-?), 이인문(李寅文, 1745-1821) 등 7명의 화원 명단이 기록돼 있다. 이들은 모두 규장각(奎章閣)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으로서 당대 최고의 기량을 지닌 화가들이다. '화성행행도팔첩병'은 원행(園幸) 이듬해인 1796년에 완성됐음이 홍석주(洪奭周, 1774-1842)의 문집에서 확인된다. 이는 제5첩 '서장대야조도'에 1796년 완공된 화성의 전체 모습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화성행행도팔첩병'은 궁중행사도의 꽃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구도, 섬세한 표현, 우수한 필치가 구사된 작품이다. 정면부감의 좌우대칭적인 화면 구성에서 탈피해 대각선 구도, 원형 구도, 지자형(之字形) 구도 등을 사용하고 풍속화적인 요소를 강조해 사실적이고 현장감 넘치는 장면을 창출했다. 특히 18세기 후반에 널리 수용된 원근법과 선투시도법을 적극 활용해 장대하고 화려한 행사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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