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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134] 달빛이 부서지는 물결을 바라볼 수 있다 는 '월파정'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2-12-11 07:37:55
  • 수정 2024-04-10 10: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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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파정의 옛 집[박광준 기자] 동작구 노량진 1동 15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로, 옛날 판서였던 장선징의 정자로 지금의 수산시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정자는 1776년(정조 즉위년) 정조가 노들강 기슭에다 세운 것이라고 전해지는데, 그보다 훨씬 이전에 세종 때의 영의정 김종서가 터를 잡고 살았다고도 한다. 


일제 때는 '아라이'라는 일본인 재벌이 소유하면서 한국에서 유명한 한국에서 유명한 비석 등을 옮겨다 놓아 지금도 뒤뜰에는 각종 비석들이 뒹굴고 있다. 그 후 광복 초기에 수도경찰청장(지금의 서울시경국장)을 지내고 후에 국회의원,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장택상의 별장으로 사용했다. 


월파정-사충사-육신묘 부분(한성도, 1760년대,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홍경화.한동수, '한국건축역사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 논문집'에서 캡처)대지가 원래는 2,000평이었으나 수산시장에 매각했다. 또한 이곳에는 임진왜란 당시에 화포 2문과 소포 3문이 있었는데, 정부에 기증해 현재는 갑곶진 유적지에 보존돼 있다고 있다. 


옛날에는 한강물이 사육신묘 뒤편으로 흘러 월파정 합에서 합수돼 여의동 샛강으로 빠졌으나 노량진-인천간 철도가 개설도미에 따라 이때까지 있던 월파정 부근의 낚시터가 없어지고대지로 변했다고 한다. 또 옛날에는 월파정 앞 샛강은 이무기가 많이 살고 있어서 무서운 강으로 알려졌었다고 전했다.


한편 월파정은 정조때 활동한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1787년(정조 11) 월파정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읊었던 '월파정야유기(月波亭夜游記)'를 통해 월파정을 소개했다.

 

월파정과 장택상 별장 터에 있는 식당/박광준 기자 '월파정야유기'는 '다산시문집'에 수록돼 전하고 있다. 현재 월파정의 건물은 모두 소실됐다. 


# [원문] 月波亭夜游記 (월파정야유기)


丁未夏, 余于李休吉【名基慶】江亭, 共治儷文, 權永錫·鄭弼東諸君, 亦來會焉。 一日小雨新霽, 碧落澄廓。 李君曰: “人生幾何? 誰能戚戚然以筆硯勞苦哉? 家釀火酒適出, 瓜善者又至, 盍載酒浮瓜, 爲月波之游乎!” 僉曰: “善哉, 之言也!”

於是乘小舟, 泝流自龍山, 中流容與, 東瞻銅雀之渡, 西望巴陵之口, 烟波浩渺, 一碧萬頃。 至月波亭而日沒, 相與憑欄命酒, 以候月出。 少焉水烟橫抹, 微波漸明。 李君曰: “月今至矣。” 遂復登舟以候之, 但見萬丈金標, 條射水面, 轉眄之頃, 千態百狀, 盪漾流灕, 其動者, 破碎如珠璣之迸地, 其靜者, 平滑如玻瓈之布光。 捉月戲水, 相顧樂甚。 有言賦詩者, 余曰: “今日之事, 逃文墨也。 復有肯皺眉稜撚髭毛, 戞戞乎競病推敲之中, 而空負此月波亭乎? 諸君不飮, 無以名斯亭。” 遂各痛飮, 取醉而還。


장택상씨 노량진별장 소장 불랑기포(조인복, '한국고화기도감', 문화재관리국, 1974)[번역] 월파정에서 밤에 노닌 기


정미년(1787, 정조 11) 여름에 내가 이휴길(李休吉)1)【이름은 기경(基慶)이다.】의 강가 정자에서 함께 변려문(騈儷文)2)을 공부하였는데, 권영석(權永錫)과 정필동(鄭弼東) 등 제군도 와서 이곳에 모였다. 하루는 가랑비가 막 개어서 하늘이 푸르고 깨끗하였다. 이군(李君)이 말하였다.


“우리네 인생 얼마나 산다고 그 누가 서글프게 글 짓는 일로 수고롭겠는가. 집에서 빚은 소주(燒酒)를 마침 내어 왔고 좋은 오이도 가져왔으니, 어찌 술을 싣고 오이를 띄우며3) 월파정(月波亭)에서 놀지 않겠는가.”


그러자 모두들 말하였다.

“이 말이 정말 좋다.”


작은 배를 타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갔는데 용산(龍山)에서 출발하여 중류(中流)에서 맴돌며 동쪽으로는 동작(銅雀) 나루터를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파릉(巴陵)4) 어귀를 바라보니, 물안개와 물결이 아득하여 끝없이 온통 푸르렀다.


철제대포, 일본인 헌병대위(荒井)의 노량진 별장 현관문 기둥으로 사용된 포(이강칠, '한국의 화포', 2004년)월파정에 도착하자 해가 져서 서로 난간에 기대어 술을 권하며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물안개가 강을 가로지르고 잔잔한 물결이 점점 밝아졌다. 이군(李君)이 “달이 지금 떠오른다.”라고 말하기에 마침내 다시 배에 올라 달을 기다렸다. 만 길 정도의 황금 빛줄기가 수면을 쏘아 비추는 것만 보이더니, 잠깐 사이에 천태만상으로 일렁이며 요동쳤다. 수면이 요동칠 때는 부서지는 달빛이 진주가 땅에 쏟아지는 듯하고, 고요할 때는 번들대는 수면이 유리에 빛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달을 잡겠다고 물에서 희롱하며 서로 돌아보고는 매우 즐거워하였다.


시를 짓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말하였다.

“오늘의 일은 글 짓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니, 다시 눈썹을 찌푸리고 수염을 꼬아 가며 어려운 운자(韻字)로 시를 짓고5) 고심하며 힘겨워하느라 이 월파정 유람을 공연히 망칠 것이 있겠는가. 제군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이 정자에 이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마침내 각자 술을 한껏 마시고 실컷 취해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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