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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말씀대로 사신 참사도(6)"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3-01-16 05: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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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종교인 추양 한경직 목사...하나님의 품으로, 청빈한 기도의 삶을 이어가다


(사)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에서 제작한 한경직 다큐멘터리 시리즈


[우성훈 기자] # 청빈한 기도의 삶을 이어가다


"한경직 목사 장례예배"(2000년 4월 24일)노년에 한경직은 교회에서 마련한 좋은 집을 마다하고 남한산성 영락여자신학교 근처에 있는 18평짜리 국민주택을 거처로 삼아 검소한 생활을 했다. 목회자는 돈과 여자와 근검절약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따른 선택이었다. 그는 남의 집에서 임시로 몸을 붙여 산다는 뜻의 ‘한경직 우거처’라는 팻말을 붙여놓고 지냈다. 그는 이 우거처와 근처 기도바위에서 우리나라와 민족, 그리고 남북통일을 위해 날마다 기도했다. 나라와 이웃과 함께한 98년의 생을 마치다


한경직은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고난주간인 2000년 4월 19일 오후 1시 15분에 영락교회 안에 있는 사택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98세였다.


영락교회에 마련된 빈소에는 어린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영부인에서부터 이름없는 평범한 이들까지, 기독교계 지도자뿐만 아니라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과 불교 송월주 조계종 전 총무원장까지 많은 이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4월 24일 장례예배에는 8천여 명이 참석해 한경직의 마지막을 함께했고 그와 함께 한국 교회를 위해 다양한사역을 펼쳤던 김준곤, 방지일, 정진경, 강원용 목사의 기도와 설교, 조사가 이어졌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영락교회에서 하관예배를 드린 후 그는 아내 김찬빈과 합장됐다.


한경직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 한 칸, 땅 한 평, 통장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그가 남긴 재산은 말년에 타고 다녔던 휠체어와 지팡이, 겨울 털모자, 옷 몇 가지, 생필품이 전부였다.


“세계는 가장 위대한 크리스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을 잃었지만, 천국에서는 사도와교부에 버금갈 신앙의 거장을 얻었습니다” (빌리 그래함)“우리가 오늘 여기 이토록 슬픈 것은/당신이 주님 곁에 가심이 싫어서가 아니요/당신을영원히 우리 곁에 두고 싶어서도 아닙니다/ 아무리 둘러봐도/당신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당신 같은 스승은 하나도 없고/당신 같은 목자는 하나도없고/이 텅빈 세상이 너무 슬퍼서입니다“(고훈)/사진-한경직 목사 기념회 홈페이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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