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태국- 미얀마 살원강변 번지 없는 마을 이야기
  • 양승천 기자
  • 등록 2023-01-12 15:44:44
  • 수정 2023-01-12 17:48:57

기사수정


[양승천 기자]  태국- 미얀마 국경도시 메솟(Mae sot) 에는 총회(PCK) 예장에서 2005년 파송된 허춘중 선교사가 협력 선교사로  살원강변에서 카렌족 난민과 자녀들의 교육과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행하며 일하고 있다.

 

태국- 미얀마 국경도시 메솟(Mae sot) 태국 국경출압국 관리소

태국- 미얀마 국경도시 메솟(Mae sot)살원강 건너 미얀마 국경도시 미야와디살원강 국경을 건너 태국으로 도강하는 미얀마 카렌족 난민들허춘중 선교사 (글) 이곳에 새로운 손님들이 많이 왔다. 미얀마와 태국의 국경에 새로 오는 손님맞이로 분주하다. 이곳은 지난 30년 간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난민이란 이름으로 각고의 세월로 살아오고 있는 곳이다.

 

1988년 8월, 당시 국명 버마의 전역에서 전 시민들 특히 젊은 학생들이 참여한 가열찬 반군부 민주화 운동이 있었다. 그 항쟁으로 밀려서 밀려서 남의 나라 영토 태국에 들어와 난민이라는 신분으로 고달픈 삶의 자리를 잡은 지 30여 년이 지난 것이다.

 UN 관할 난민캠프 난민으로 등록된 난민에게는 인간이 셍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료와 식량이 제공된다.(미등록 난민은 지원이 없다.)



세월은 흐르고 상황이 바뀌어 미얀마는 2015년 정권교체를 이뤘고 이곳 난민들은 행여 꿈에도 그리는 고향 땅, 자기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가 오손도손 공동체를 이루며 살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

 


카렌족 난민과 자녀들의 교육과 여러 프로그램을 민주주의 와 자유를 나름 누렸다. 가판대에 일간지 신문이 등장했고 TV에서 아웅산 수지를 보게 되고 술집에서 정치를 논하고 군부를 욕해도 되는 이전에는 상상도 못 할 정치적 자유를 누렸다.


이들은 다시는 노예같이 숨죽이며 살아온 굴종, 군부독재의 군홧발에 차이면서 살아온 치욕, 강요당한 침묵과 폭정 아래 살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군부는 2021년 2월 1일, 다시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정부를 찬탈했다.


지난 5년 간 맛본 자유와 민주, 인간 존엄성의 가치가 저들을 참여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대열에 참여하게 한다. 지금 미얀마는 무정부 상태의 내전이 진행 중이다. 또한 직속되는 코로나 위기와 경제마비로 민중들의 삶은 질곡에 빠져 버렸다.

 

많은 미얀마 사람들은 저녁시간, 황금시간대에 한국 드라마를 즐긴다. 그 시간에 거의 모든 방송들이 한국 드라마를 방영한다. 다분히 군부의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다. 이 영향으로 이들은 한국을 좋아하고 "오빠" "아저씨" "사랑해요"등 한국말을 알고 있다.


이분들이 한국정부와 시민사회가 자신들의 민주화운동 지지와 후원에 깊은 감사를 표하고 있다. 자신들이 처한 고난에 공감하며 보내는 적극적인 응원과 후원에 진정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 더 지지하고 함께 했으면 좋겠다. 이 분들의 투쟁에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행동이 있으면 좋겠다. 특히 소수민족 마을을 습격하고 방화, 약탈, 성폭력, 공중폭격을 피해서 피난길에 오를 난민들을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좋겠다.

 

황정민 배우가 열연한 국제시장 첫 장면은 1950년 12월 12일 흥남 철수작전의 마지막 남은 배인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지휘관 아몬드 장군이 "태우라"라고 명령하고 이에 피난민 14,000명이 배에 올라서 생명을 구하는 장면이다.

 

"우리나라의 시민사회가 깨어 각성된 민주적이고 양심적이며 행동하는 세계의 시민이...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