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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해하기 11] 아브람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추방하다(창세기 21장 1~14절)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3-01-25 17: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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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e Doré - Abraham Sends Hagar and Ishmael Away[우성훈 기자] 하갈은 사라의 이집트인 여종이었다. 그에게 후계를 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을 믿고 가나안으로 이주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하던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첩을 두어 자신들의 후계를 잊게 하자고 아브라함에게 요청한다. 사라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겐 출산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고 아브라함이 첩을 두면 혹시나 자식을 낳을 수 있을까 기대한다면서 아브라함에게 첩을 두기를 종용한다. 결국 사라의 청에 의해 아브라함은 이집트인 여종 하갈을 첩으로 맞아들여 그녀를 통해 이스마엘이라는 사내아이를 얻게 된다. 그런데 이 종인 하갈이 자신이 아이를 임신함을 알자 여주인이었던 사라를 모욕하며고 멸시하는 게 아니겠는가? 또 나중에 사라가 이삭을 낳으니 이번엔 이스마엘이 형제 이삭을 놀리면서 그를 모욕했다. 그러자 이에 모멸감을 느낀 사라가 이스마엘이 가문의 기업을 잊지 못할 것이라 저주하면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아브라함에게 호소한다. 


이 일로 아브라함은 매우 근심하게 된다. 물론 평생을 함께하고 자신과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곁을 지켜줬던 정실인 사라를 하갈보다 사랑했지만 하갈도 그의 소중한 부인이며 이스마엘도 결국 소중한 그의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일로 아브라함은 심히 근심하게 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그에게 근심하지 말고 사라의 말을 들으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이삭이 정당한 후계자가 되겠지만 그래도 이스마엘 또한 큰 민족을 이루게 될 테니 아브라함에게 근심하지 말고 아내인 사라의 말을 따르라고 한다. 그리하여 다음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떡과 가죽 부대 물동이만을 쥐여준 채 그의 장막에서 광야로 그들을 내쫓는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사라와 아브라함의 믿음 약함의 결과였다. 그들은 초창기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후계자를 주신다는 약속에 부푼 기대를 안고 살던 곳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 그들에게 자녀가 들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들은 아예 엘리에셀이라는 종에게 자신들의 후계를 잇게 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집트와 가나안에서 그들에게 기적과 권능을 보여주고 아브라함의 씨로 후사를 잇게 할 것을 강하게 약속하니 그들은 점차 기대를 넘어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면서 그들의 후손으로 민족을 이루게 되는 기적을 점점 믿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 조금도 그들 사이에 자식이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고 사라는 자신이 이미 꼬부랑 할머니가 돼 자식을 생산치 못할 거라 여긴 사라는 자신의 몸종이었던 이집트 여인 하갈을 첩으로 둬 그녀를 통해 자녀를 봄으로써 후계를 이을 인간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고 마침내 그녀를 통해 이스마엘을 얻자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후사와 세상 사람들과 온 열방의 민족에 축복을 주는 하나님의 기업을 이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사라의 생리를 열어 그녀가 임신하게 해 사라가 이삭을 낳게 하심으로 콧방귀까지 뀌며 사라가 자식을 낳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그들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닫게 한다. 아브라함의 가정에 인간적인 생각으로 낳은 이스마엘과 하나님이 주신 이삭이 함께 살게 된다.


비록 하갈과 이스마엘이 자신들이 하나님을 완전히 믿지 못해 생긴 관계였음에도 서로 협력해 화목하게 지낸다면 아무 문제는 없었을 것이지만, 그러나 결국 필연적이게도 아브라함과 사라의 인간적인 선택은 결국 처첩 갈등과 후계자 문제라는 인간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어쩌면 현대인의 시각에선 그냥 애들 다툼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이스마엘의 모욕은 서자와 적자의 엄격한 분리와 서열의 권위가 중요한 고대 유목민 부족에겐 그들의 질서와 부족의 존속을 위협하는 크나큰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삭이 가문의 진정한 후계자이자 하나님의 기업을 이을 적자로 알고 있음에도 이삭을 모욕하고 이를 막지 못한 하갈은 이삭의 권위를 인정한 하나님의 권위 또한 무시한 것이 되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을 섬기는 아브라함의 가문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기도 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가문의 존재 이유가 부정당하는 문제다. 즉 하갈을 내쫓고 이스마엘이 이삭을 모욕한 문제는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를 넘어 아브라함의 가정 내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가문의 사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부분을 잘라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가문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쉽사리 내칠 수 없다. 이스마엘이 자신의 부족한 믿음의 결과라도, 그들을 내쳐 가문의 질서와 이삭의 권위를 공고히 하는 게 가정의 안녕과 또 하나님의 사업을 잇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일지는 몰라도 아브라함에게 있어 하갈과 이스마엘은 남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하는 자식이자 사랑하는 아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쉽사리 그들을 내칠 수 없다. 머리로는 그들을 내치고 매정하게 돌아서는 게 맞을지 몰라도 그들이 광야에 내쫓기면 분명 죽을게 분명하기 때문에 그들을 쫓을 수 없다. 마치 자기 손가락을 자르기 어려움같이 그들은 자신을 닮은 자신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치기 어려워한다.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안심시키면서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 또한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니 하갈과 이스마엘을 그의 장막에서 내보내라면서 아브라함을 안심시키고 그에게 중요한 결단을 이끌게 한다. 어쩌면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자신을 불신해 생긴 이러한 불행에 꼴좋다면서, 네가 선택한 것이니 알아서 해결하라고 내치는 것이 마땅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리하지 않는다. 이는 아브라함이 정실인 사라와 적자인 이삭뿐만 아니라 그의 부끄러움과 믿음 약함의 결과인 하갈과 이스마엘마저 자신의 일부로 여김과 같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나약함, 그의 잘못된 선택과 자신을 믿지 않는 부정적인 모습조차 자신의 일부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 약함의 결과물을 자신의 품,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다. 당장 광야로 내쫓겨 마실 물이 떨어지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존재이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영원에 이르는 존재의 일부로 받아들였기에 그들은 죽음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선택으로 인한 결과, 아니 어쩌면 결코 장점만 있을 수 없고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의 모든 계획과 그 결과마저 자신의 책임, 자신이 지고 갈 짐이라고 여긴 하나님의 책임감이 사람의 나약함마저 덮어 그 나약함마저 영생과 축복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여느 가문이나 나라가 그러하듯 후계자 다툼, 구성원 간의 갈등과 다툼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람의 모임을 하나님의 긍휼로 그 생명을 영원으로 잇는다. 사람의 나약함마저 자신의 책임으로 끌고 가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브라함 가문의 모든 구성원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나약함마저 사랑할 만큼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위대한 영웅이거나 또 자신의 말을 철두철미하게 따르는 강한 믿음의 소유자였기에 아브라함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아브라함은 이처럼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현실적인 문제 앞에 넘어지고 불신해 제멋대로 하다가 일을 키우는 하나님 앞에 그릇된 모습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런 아브라함을 아끼고 사랑한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보는 시각은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보는 시각과 같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하갈과 이스마엘은 마치 하나님이 인류를 홍수로 지우려고 했던 것처럼 지우고 싶은 과거의 잘못일지도 모른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없다면 가정의 불화와 후계자 문제 같은 가문의 기강이 흔들리는 심각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때 하나님을 더 믿고 기다렸다면 오히려 이삭에게 더 많은 축복이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쉽사리 그들을 버릴 수 없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하갈과 이스마엘은 이미 후계를 이을 도구를 넘어, 아내의 종이자 다른 이민족 여인이라는 점을 넘어 자신의 가족이자 자신의 일부로서의 의미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그 마음과 같은 마음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품었다. 아브라함은 비록 이삭을 모욕한 이스마엘과 다를 바 없이 자신에게 가나안 땅에서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업신여겨 이집트 땅으로 또 아비멜렉에게 사라를 넘기는 부족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버릴 수 없다. 그런 부족함이 있더라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있어 자신의 일부 자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브라함의 사랑 하갈과 이스마엘을 사랑한다. 어쩌면 하갈과 이스마엘은 자신을 모욕하고 자신을 불신한 결과임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 준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보듬어 주듯 아브라함의 나약함마저 보듬어 주고 싶어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나약함마저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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