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성경 이해하기 12] 황야의 이스마엘과 하갈(창세기 21장 14절~20절)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3-01-25 18:00:08

기사수정

Hagar and Ishmael in the Wilderness

[우성훈 기자]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는다. 자신의 여주인인 사라와 그의 아들이삭을 모욕한 하갈과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사라의 말에 따라 그의 장막에서 내쫓는다. 살인적인 땡볕이 내리쬐는 중동의 브엘세바 광야에서 아브라함이 쥐여준 가죽 부대의 물과 떡만 가진 채 방황하던 그들은 결국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떨어져 광야의 사막에서 말라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 순간 하갈은 차마 자기 아들이 죽는 것을 두 눈으론 못 보겠다며 한 화살 거리만큼 떨어진 관목 덤불 아래에 아들 이스마엘을 놓아두곤 한탄하면서 울기 시작한다. 


종의 신분에서 아브라함의 첩이 돼 대족장 아브라함의 후계를 잇는 복을 누릴 뻔한 하갈은 그러나 은혜도 모르고 그 주인과 아들을 모욕함으로써 쫓겨난 하갈은 이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광야에서 그 자식과 비명횡사할 위기에 놓이게 됐다. 그런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라면서 죽어가는 자식 이스마엘을 붙들어 세우라고 한다. 그리고 하갈에게 이스마엘을 통해 민족을 이룬다고 하면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 그들을 살린다. 그리고 그렇게 살리신 이스마엘에게 그가 장성할 때까지 함께 하셔 그가 광야의 들에서 살아가는 민족을 이루개 한다. 광야에서 목말라 죽게 될 뻔한 하갈과 이스마엘이 하나님으로 인해 목숨을 건지고 복을 받는다.


이스마엘과 하갈이 내쫓긴 것은 결국 그들이 하나님의 가문에 들기엔 알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갈은 대대로 유목민의 집안이었던 아브라함의 가문과 달리 정착민이었던 이집트의 여인이었다. 또 하나님을 섬기던 아브라함 가정에서 태양신이며 다양한 신을 섬기던 이집트에서 나고 자란 하갈의 영향력은 하나님만을 유일한 신으로 섬기는 아브라함의 가문에는 어울리지 않는 영향력과 사고관을 그 후예들에게 형성하기에 십상이었다. 


또 적자인 이삭에 비해 이스마엘은 서자일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지 못한 아브라함의 믿음 약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직접 그 태를 열어 사라를 통해 생산하게 한 신이 주신 아이 이삭보다 정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게다가 하갈과 이스마엘은 그처럼 응당 하나님의 기업을 잇는 정통성은 사라와 이삭에게 양보해야 함에도 가문의 권력과 지위만을 욕심내어 자신의 주제를 넘는 짓을 벌여 결국 주인과 주인의 신인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잘못까지 저지른다.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의 출신과 배경과 또 개인적인 성품으로 인해 하갈과 이스마엘은 쫓겨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처럼 신의 일을 하는데 적합하지 않은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나타나 그들의 목숨을 구원해 줄뿐만 아니라 그들이 큰 민족을 이룬다며 어쩌면 사라와 이삭이 받은 복 못지않은 축복 또한 허락해 준다. 어째서 하나님은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그와 같은 축복을 허락하셨을까? 물론 하갈은 아브라함의 씨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비록 하나님을 믿지 못해 제멋대로 하나님의 사업을 그르칠 뻔한 적도 있는 등 하나님 앞에 완전한 의인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돌이키고 회개해 더 나은 자신의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자였다. 따라서 이런 변화의 가능성을 지닌 아브라함의 씨 이스마엘 역시 아브라함의 모습을 닮을 가능성이 있는 자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나타나신 것은 하갈이 아브라함의 육체적 혈육만을 이은 존재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 하갈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복을 기대하는 믿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하갈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모욕하기 이전, 이미 아브라함의 첩으로 들어갔을 때 이스마엘을 임신할 때 그의 주인 사라의 임신하지 못함을 가지고 그 여주인을 모욕해 쫓겨난 전례가 있다. 비록 그 자신의 주제넘음의 결과로 하나님의 가문에서 쫓겨남에도 이미 하나님은 하갈에게 나타나 그에게 자신의 사자를 통해 하갈에게 하갈의 씨를 크게 번성해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니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는 말을 전한다. 그러자 하갈은 그 말에 감동해 하나님이 자신의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다면서 그곳을 브엘로 헤 이스라엘이라 이름 지으며 그를 학대하던 여주인 하갈에게로 돌아간다. 


비록 그녀는 아브라함의 가문과 출신도 또 신분도 다르고 믿는 신도 다른 존재였지만 적어도 자신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에 신뢰해 자신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룬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면서 자신을 학대하는 주인 밑으로 다시 복종하기 위해 들어가는 용기를 지닌 자였다. 하갈은 아브라함과 달리 인종도 신분도 겸손한 성품 또한 지니지 못했지만, 아브라함과 만나 하나님의 가문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의 복을 기대해 용기를 낼 수 있는 아브라함과 같은 가능성을 지닌 자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가능성을 보고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임했다.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아이가 자라 어엿한 성인이 될 때까지 그와 함께 하면서 그가 장성해 광야에서 거주하면서 활 쏘는 자가 되어 결국 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해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어 이스마엘은 민족을 이루게 된다. 비록 하갈과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하나님께선 그들에게 다른 가능성, 다른 모양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존재해 번성할만한 가치를 보신 것이다. 


비록 그렇게 번성한 무리가 이스마엘이 이삭을 모욕한 것처럼 하나님의 민족 이스라엘과 다투며 싸우기도 하는 역사를 되풀이하기도 했지만 하갈이 그 태생적인 신분과 배경과 지위를 넘어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대해 용기를 낸 것처럼 그 가운데서 그들이 변화하고 이스라엘과 관계 맺으며 교류한다면 그들이 그 태생적인 한계를 넘어 다시 자신을 넘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하갈과 이스마엘의 후손을 이 땅에 남겨둔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업을 잇는 일에 적합하지 않을 뿐, 이 세상에 다른 모습,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번영할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갈과 이스마엘의 존재를 후대로 잇는다.


결국 하나님이 이처럼 하갈과 이스마엘을 돌보신 것은 하나님이 사라와 이삭 못지않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가문을 돌보신 궁극적인 이유가 하갈과 이스마엘 같은 히브리인과 다른 이방 민족, 온 세상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민족은 결국 하나님의 사업 즉 모든 민족과 사람들에게 축복과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기 위해 선택된 민족이다. 따라서 그런 막중한 사명을 갖춘 민족은 엄격한 자격요건을 갖춰야 했고 배경과 또 출신에 있어서 특수성을 지녀야만 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런 아브라함의 가문에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제한 것은 그들의 자질이 하나님의 기업을 잇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 그들을 미워하거나 아브라함의 가문만을 편애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단순히 조금만 생각을 한발 더 나아가 본다면 아브라함의 존재 이유,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기업을 잇는 가문의 존재 이유는 하갈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민족을 위해서라는 점에서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 못지않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구원이 정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선 그들이 하나님의 가문을 이을 자질이 없다고 해서 그들을 내팽개쳐 두고 죽든 말든 알아서 하게 방치해두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하나님께선 아브라함의 가문을 통해 그의 위대한 사업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즉 하갈이 아브라함의 나약함, 어쩌면 아브라함이 부족하고 하나님을 불신해 생긴 관계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주인과 이삭을 모욕해 쫓겨난 사람들이라도 상관없이 그들이 아브라함과 관계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복을 받고 또 구원을 받는 모습은 결국 사람의 부족함이나 나약함에 상관없이 그 한계를 지닌 인생사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만으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한계를 넘어 우리의 가죽 부대의 물을 채우시겠다는 본질을 보여주시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하갈과 이스마엘에게도 아브라함과 같은 사랑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갈과 이스마엘이 생명을 이어 민족을 이루는 구원을 얻게 된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