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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9대 성종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의 능 그리고 정종의 능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09-08 11:36:08
  • 수정 2024-02-12 20: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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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릉과 정릉

# 선릉:조선 9대 성종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의 능


정형왕후의 능

선릉 정현왕후능 좌측 무인석

조선 9대 성종의 능조선 9대 성종의 능의 난간석

[사진-박광준 기자] 성종(1457-1494, 재위 1469-1494)은 세조의 손자이자 왕으로 추존된 덕종(의경세자)과 소혜왕후(인수대비) 한씨의 둘째 아들이다. 1461년(세조 7) 잘산군에 봉해졌고, 1469년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 정희왕후의 명으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동안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과 ‘대전속록’ 국가의례를 정리한 ‘국조오례의’를 완성하여 반포했고, 선비들을 등용해 기존의 훈구세력과 국정의 균형을 이루게 했다. 38세의 나이로 창덕궁 대조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선릉 홍살문정자각


정현왕후 윤씨(1462-1530)는 영원부원군 윤호의 딸로 1473년(성종4) 성종의 후궁(숙의)이 되었고, 1479년)성종 10) 당시 왕비였던 연산군의 생모 윤씨가 폐위되자 이듬해 왕비로 책봉됐다.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자순왕 대비가 되었으며, 1506년 중종반정 때 왕대비의 권한으로 연산군을 폐위하고 친아들 중종의 즉위를 허락했다. 69세의 나이로 경복궁 동궁 정침에서 세상을 떠났다.  


비각수복방선릉은 능역 안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각각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을 조성했다. 정자각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서쪽 언덕이 성종의 능, 동쪽 언덕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선릉은 1494년 성종이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만들어졌는데, 원래 이곳은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의 묘역이었으나 선종의 능자리로 정해지면서 광평대군의 묘를 다른 곳으로 옮긴 후 선릉을 조성했다. 선릉은 정릉과 함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능을 파헤치고 재궁까지 불에 타는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난간석주


이 곳에 노출된 석물인 난간석주는 조선시대 정현왕후 릉 조성 당시 또는 그 후 보수과정에서 파손되어 능 주변에 묻혀 있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의 관람로가 신설된 후 토양이 빗물에일부 유실되어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현왕후의 능은 능제 형식에 맞게 12게의 난간석주로 완자하게 구성되어 있다. 




# 정릉:조선 11대 중종의 능


홍살문

홍살문에서 바라본 정자각

정자각정자각 측면

중종(1488-154, 재위 1506-1544)은 성종과 정현왕후의 아들로 1494년(성종 25)에 진성대군에 봉해졌고, 1506년 반정으로 이복형 연산군이 폐위되자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동안 연산군 시절의 잘못된 정치와 제도로 바로 잡았고, 향약을 전국적으로 실시해 유교적 향촌질서를 바로 잡게 했고, 서적편찬 사업도 활발히 진행해 인쇄술의 발달에도 기여했다. 57세의 나이로 창경궁 환경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정릉 비각, 조선 제11대 왕인 중종의 무덤인 정릉의 비각이다.

비문1544년 중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현 경기 고양시 서삼릉에 위치한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서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고, 능의 이름을 정릉으로 바꿨다. 그러나 1562년(명종 17)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의 뜻으로 중종의 능만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이는 문정왕후 본인이 사후 중종과 같이 묻히고자 했기 때문이었으니, 정릉을 옮겨 온 현재의 자리가 비가 오면 침수되는 일이 잦자 문정왕후는 현재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태릉에 묻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중종과 세왕비(단경왕후, 장경왕후, 문정왕후)의 능은 모두 따로 흩어지게 됐다. 


정릉은 선릉과 함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능이 파헤쳐져 재궁(관)까지 불에 타는 수난을 겪었다. 정릉은 선릉의 성정릉과 마찬가지로 ‘국조오례의’ 규정에 따라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고 문석인과 무석인 등의 석물을 배치했다. 정릉의 석물은 현재의 자리로 옮기면서 새로 제작한 것이다./사진-박광준 기자 


선릉과 정릉 재실, 사적 제199호로 지정된 선릉과 정릉 내에 있는 재실의 모습이다. 재실은 선·정릉을 찾는 제관들의 목욕재계와 관인들이 제향을 준비하며 시설을 관리하는 사무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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