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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유형문화재 6]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의 교구본사이자 총본산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10-02 05:52:34
  • 수정 2023-10-12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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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128호 조계사 대웅전


[박광준 기자] 조계사 대웅전은 2000년 9월 1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1935년 한용운.박한영.송종헌 등이 중심이 되어 불교 총본산 건립운동을 추진하던 중, 1936년 전라북도 정읍의 보천교(普天敎) 교주 차경석이 죽으면서 법당으로 쓰이던 십일전(十一殿)이 경매에 부쳐지자 이를 사들여 1937∼1938년 조계사의 전신인 태고사(太古寺) 대웅전으로 사용하다가 태고사가 조계사로 바뀌면서 조계사 대웅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단층 석조기단 위에 지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규모가 웅장하고 부재 단면도 크다. 겹처마이고 공포는 외부 5출목, 내부 7출목으로 짠 다포식(多包式) 7량 구조이고, 내부 전후면에 8.5m짜리 내진주(內陳柱)를 각 6개씩 총 12개 세웠다. 기단 윗면에는 화강암을 전돌처럼 다듬어 깔았고, 네모난 이중받침 위에 정교하게 다듬은 원형 주춧돌을 놓았다. 기둥 하단에 석주(石柱)를 끼워넣어 비가 들이쳐 썩는 현상을 막았는데 결과적으로 보천교의 십일전보다 건물이 더 높아졌다.








천장은 소란반자와 외진부에 빗반자를 마련한 우물천장이다. 소란 안에는 학무늬, 봉황무늬, 희자(囍子) 무늬를 그려넣었고 빗반자의 앞면과 옆면 앞부분에는 불화를, 옆면 뒷부분과 뒷면에는 산수화와 화조화를 그려넣었다. 정면 2분합문을 비롯해 4면의 창호 모두 꽃무늬가 화려하고 정교한 문살과 창살로 되어 있다.


안에는 도갑사(道岬寺)에서 옮겨온 조계사 목불좌상(석가불)과 조계사 석가불도가 있고, 후불벽 좌우에는 1978년에 제작한 천불도가 걸려 있다. 현판은 조선 제14대왕인 선조의 여덟째 아들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의 해서체 글씨로, 화엄사 현판 글씨를 그대로 복사해 만든 것이다.


대웅전에 불상 3좌를 봉안해 이를 삼존불이라고 부른다. 좌로부터 각각 아미타여래(아미타불), 석가여래(석가모니불), 약사여래. 이 세 불상은 대웅전 크기 때문인지 법당 내에 모신 불상 중에선 매우 큰 편에 속한다. 실제로 보면 크기에 압도된다. 불단 오른쪽 아래에는 미니사이즈 석가모니불이 있는데 이는 대웅전 중수 당시 영암 도갑사에서 모셔온 불상이다





조계사 대웅전은 1.6 m 높이 돌 기단 위에 아름드리 나무 기둥 34개를 세웠고, 정면 7칸, 측면 4칸, 길이는 정면 30 m에 측면 17 m이다. 원래 십일전보다는 대웅전이 약간 작고, 부분적으로 다르다고 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사진상으로는 거의 비슷한 느낌이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근정전에 맞먹을 정도의 규모지만 근정전보다는 좀 작다. 일단 근정전의 기단은 이성석축기단(二成石築基壇)이기에 조계사 대웅전의 석축은 가볍게 뛰어넘는다. 다만 대웅전의 기단이 단층석축기단이긴 해도 기단 높이는 1.6m에 이른다. 그리고 아마 이 점이 오해의 원인이겠지만, 근정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으로 조계사 대웅전보다 칸 수는 적지만 오히려 면적은 정면 30 m에 측면 21 m로 더 넓다. 1칸의 길이가 근정전이 훨씬 커서 일어난 오해일 것이다. 높이 또한 단층인 조계사 대웅전보다 중층팔작(重層八作) 지붕인 근정전이 당연히 더 높다. 다만, 사실 근정전도 경회루에는 데꿀멍 한다.


참고로 현 대웅전 현판은 화엄사 대웅전 편액의 탁본을 바탕으로 복제한 것인데, 해당 편액의 글씨는 선조와 인빈 김씨의 8남인 의창군 이광(1589~1645)이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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