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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유형문화재 10] 경희궁의 정전 '숭정문'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10-08 10:37:12
  • 수정 2023-10-12 14: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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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호 경희궁 숭정문




[박광준 기자] 경희궁 숭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총 6칸이고 겹처마 양식에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세운 1층짜리 문이다. 지형이 높기 때문에 이에 맞추어 굉장히 넓은 월대를 두 단이나 쌓았다. 이로 인해 위압감 하나만큼은 다른 궁궐의 정전 정문들을 압살한다. 아래 월대의 계단은 9단이고 가운데 왕이 다니는 어칸(御間) 앞에 서수를 두 마리 놓았으나 답도는 놓지 않았다. 그러나 5단의 계단이 설치된 윗 월대에는 서수는 물론, 쌍용이 그려진 답도를 설치했다.




원형으로 된 주춧돌 위에 원기둥을 올린 뒤 그 위에 창방과 평방을 놓아 공포를 받치게 했다. 공포는 다포 양식으로 했고 어칸에는 기둥과 기둥 사이의 중간에 3개의 공포를 두었고 이를 주간포라 부른다. 협칸에는 각각 2개의 주간포를 얹었고, 천장은 서까래와 구조들이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했고, 문 위는 풍형 홍살을 꾸며놓았다. 단청은 단초머리의 모로단청으로 했고 문짝은 나무 판으로 중앙 열 3칸에 달았다. 그리고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를 양상바름한 뒤, 2개의 취두와 4개의 용두, 그리고 동, 서 양쪽의 추녀마루 위에 5개의 잡상과 각 처마 끝에 토수를 놓았다.






숭정문의 좌우에는 각각 정면 8칸, 측면 2칸의 행각이 뻗쳐 있고, 가장자리 쪽 2칸은 다른 칸보다 폭이 좁다. 행각은 직각으로 북으로 꺾여 숭정전 좌, 우의 행각과 바로 연결돼 있다. 원래는 방과 월랑이 혼합된 형태의 행각으로, 예문관.무예청.선전관청.향실 등의 관청과 숭정전을 지키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여러 개의 방이 있었으나 현재는 벽체없이 복도로만 뚫려있다. 그리고 행각 사방마다 문이 있어 통행을 자유롭게 했다. 남행각에는 바로 이 숭정문, 동행각과 서행각엔 여춘문과 의추문, 그리고 북쪽 행각에는 편전인 자정전의 정문 자정문이 있다.







경희궁 숭정전은 원래 경희궁(慶熙宮)의 정전(正殿)이었다. 경희궁은 원래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元宗)의 사저(私邸)가 있던 곳이다. 광해군이 이곳에 왕기(王氣)가 서렸다는 풍수설을 믿고 왕기를 누르기 위해 즉위 9년인 1617년에서 1620년 사이에 궁궐을 건립해 경덕궁(慶德宮)이라 불렀던 곳이다. 숭정전은 1910년 일제가 경희궁을 철폐하고 일본인 자제들을 위한 학교인 경성중학교(京城中學校)를 설립할 때도 남아 있었다. 그 후 1926년에 필동 남산 기슭, 지금의 동국대학교 자리인 조계사(曹溪寺)의 본전으로 사용되기 위해 이건됐다.


 


광복 후 그 자리에 동국대학교가 세워지면서 1976년 9월 현재 위치로 옮겨져 학교의 법당인 정각원(正覺院)으로 사용되고 있다. 경희궁지 숭정전 일대는 서울특별시에 의해 1985년과 1987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 되어 숭정전 월대와 계단을 비롯한 어도(御道)의 적심석(積心石), 그리고 좌우 행각지(行閣址), 숭정문지(崇政門址) 등이 확인됐다. 숭정전 주위에는 행각이 둘러져있었고, 남쪽에는 숭정문(崇政門), 동남쪽에 건명문(建明門), 동쪽에 여춘문(麗春門), 서쪽에 의추문(宜秋門) 등이 있었다. 뒤로는 자정문(資政門)을 지나 편전(便殿)인 자정전(資政殿)이 자리잡고 있었다. 숭정전은 1980년대 말 경희궁을 복원.정비하면서 동국대학교에서 원래의 자리로 이건할 것을 검토했었다.







그러나 동국대학교의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고, 또 부재들이 낡아서 손상될 것을 우려해 원래의 숭정전은 동국대학교 구내에 그대로 남겨두고, 경희궁지에 새로 숭정전을 복원했다. 동국대학교에 있는 숭정전은 원래 이중(二重) 월대 위에 세운 정면 5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둥은 내.외진(內外陣)으로 배열됐고, 내부의 어좌(御座)는 없어졌고, 불단을 설치했다. 건물의 4면에는 꽃살분합문을 달았고, 그 위에는 교창(交窓)을 내었는데, 어칸에는 4짝, 그 옆 협칸에는 3짝, 그리고 가장 양 끝칸인 툇간에는 2짝문으로 나 있다. 내부 천장은 소란반자이고, 바닥은 난방시설을 했다. 


동국대학교가 세워지면서 1976년 9월 현재 위치로 옮겨져 학교의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정각원(正覺院).공포는 외부로는 창방 위에 외2출목의 쇠서와 교두형 첨차를 두어 다포계의 특징을 보이면서 기둥 위에만 짜여 있다. 간포(間包) 대신 화반을 두고, 공포 내부에 출목 없이 양봉형(樑奉形)으로 보아지를 마련해 보를 받치는 점은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내부 천장은 우물반자를 꾸며 화려한 용(龍)무늬 단청을 그렸다. 건물 앞에 놓인 계단 역시 다른 궁(宮)의 정전과 같이 삼도(三道)로 꾸며 중앙에는 봉황 1쌍을 양각해 장식했다. 팔작지붕의 용마루에는 양성을 했고 양 끝에 취두를, 내림마루 끝에는 용두를, 추녀마루에는 잡상들을 얹어, 이 건물이 이전에 궁궐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75년 12월 27일부터 1976년 9월 15일까지 해체 복원공사를 했다. 일본인들이 강제로 철거해 팔아 넘긴 탓으로 원형이 크게 파손됐고, 교실.체육관 등으로 사용되면서 많이 변형됐다. 현재는 불교 의례를 행하기에 알맞도록 내부가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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