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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유형문화재 19] 흥천사의 불화(5)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10-11 21:00:17
  • 수정 2023-10-12 14: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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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8호 흥천사 천룡도-제409호 만세루 아미타불회도-제410호 만세루 신중도

[박광준 기자] # 천룡도


천룡도(서울 興天寺 天龍圖)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천룡도로, 2017년 6월 8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408호로 지정됐다. 


이 불화는 神衆圖 형식의 하나로 韋駄天과 天龍八部을 함께 그린 천룡도로서, 흥천사 극락보 전에 봉안되어 있다. 천룡팔부는 보통 불법을 수호하는 八部衆, 즉 天.龍.夜叉.乾達婆.阿 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 등을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천룡도라 할 때는 제석천이나 범천 등 善神은 표현되지 않고 위태천을 중심으로 무장의 신장들이 함께 묘사되는 신중도 형식을 말한다.


화면 중앙에는 위태천이 합장하고 서 있고 주위에는 천녀와 日月天子 및 여러 신중들이 배치됐다. 韋駄天(Skanda)은 녹색의 두광을 지니고 새 날개깃으로 장식된 화려한 투구를 쓰고 합장한 두 손 위로 삼고저 같은 것을 받들고 있는데, 투구장식 및 肩甲부분을 금박으로 처리해 화려한 느낌을 준다. 천녀는 꽃으로 장식된 모자를 쓰고 두 손으로 향로와 과일이 든 쟁반을 들고 있다. 천녀 옆에는 관복을 입고 홀을 든 인물이 서있는데, 향우측 인물은 흰색의 달이 그려진 관을 쓰고 북두칠성이 그려진 홀을 들고 있어 月宮天子로 추정되고, 책관을 쓰고 홀을 든향좌측 인물은 남장사 신중도(1824년)의 日宮天子와 동일한 모습이어서 日宮天子로 추정된다.


천룡도/사진-문화재청

화면 하단에는 중앙에는 상투머리에 검은색 투명두건을 쓰고 오른손에 白翼扇, 왼손에 영지버섯이 든 바구니를 들고 있는 山神과 금문양으로 장식된 검은 두건을 쓰고 서책을 들고 있는 竈 王神이 배치됐다. 이들 옆으로는 활과 화살 및 칼, 화염보주 등을 들고 서있는 신중이 배치됐다.


인물표현은 음영법을 사용해 입체감을 강조했고 채색은 전체적으로 붉은색이 많이 사용됐고, 기물과 복식 일부에 화려한 금박이 사용됐다. 이와 같은 채색법은 19세기 서울 경기지역 불화의 특색이기도 하다. 화기에 의하면 이 그림은 1898년에 蓉潭이 模像, 즉 초본을 그렸다고 했으나 片手 다음에는 화승의 이름이 지워져 있어 불화조성화원은 확인할 수 없다.


이 불화는 위태천과 천룡팔부를 간단하게 그린 천룡도로서 1898년에 蓉潭이 초본을 제작했다. 일반적인 천룡도와 달리 위태천이 크게 부각되지 않고 하단의 산신과 조왕신 및 기타 신중이 부각되는 구도를 취하고 있으며, 의복 및 기물 등에 금박을 사용해 채색이 돋보인다. 인물묘사에는 섬세한 바림질과 세칠의 묘사로 인해 입체감과 시실성이 돋보이면서, 간략하게 표현한 옷주름에도 활달한 필력이 엿보인다. 신중도 중 천룡도 형식은 유례가 많지 않다. 특히 서울지역에는 천룡도가 별로 남아있지 않다. 이 작품은 비록 제작시기는 늦지만 19세기 말의 서울.경기지역의 천룡도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만세루 아미타불회도


만세루 아미타불회도(興天寺 萬歲樓 阿彌陀佛會圖)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아미타불회도로, 2017년 6월 8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409호로 지정됐다. 


1890년 作 만세루 아미타불회도는 다수의 상궁들이 시주한 왕실발원의 불화로 수화승 긍조 (亘照)를 비롯해 만파정익(萬波定翼), 혜산축연(慧山竺衍), 보암긍법(普庵肯法) 등 주로 19세기 서울.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화승들이 조성했다.


화기에 이 불화의 조성연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같은 전각인 만세루의 1890년 作 두점의 신중도 역시 수화승 긍조(亘照) 등이 참여한 바, 동시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8위의 보살, 십대제자, 타방불, 사천왕, 천부중 등이 배치돼 있다.


화면의 중앙에는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아미타불이 두광과 신광을 등지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 모양을 하고 있다. 본존불 좌우에는 연꽃 등을 든 8위의 보살 및 사천왕이 모두 倚坐 像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왕실발원의 이 불화에는 값비싼 재료인 금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바, 持物부분에는 주로 金箔 이, 天衣 등 복식의 문양에는 金泥로 그렸다. 특히 아미타불의 신광에 사용된 금은 구불구불한 선과 변화 있는 금색을 사용함으로써 마치 빛이 방사하듯 보여 예배자의 시선을 중앙의 아미타불로 향하게 한다.


만세루 아미타불회도/사진-문화재청 

화면 하단부 밑부분에 흰색바탕에 먹으로 쓴 화기난이 마련된 바, 이 불화의 조성연대는 기록돼 있지 않지만 만세루의 1890년 作 두점의 신중도 역시 수화승 긍조(亘照) 등이 참여한 바, 동시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1890년에는 흥천사 大房에서 여러 점의 불화를 함께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인근 사찰인 봉국사[奉國寺 : 神德王后(?∼1396)의 원당] 大 房에 봉안하기 위한 불화도 함께 제작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내용으로는 ‘수월도량공화불사(水月道場空花佛事)’와 관련해 불화가 제작된 점이다. 이 불사는 19세기 말에 흥천사를 비롯해 파주 보광사, 수원 청련암, 삼각산 화계사 등 주로 서울과 경기도에서 설행됐다.


동참시주인 다수의 상궁들 중 가장 먼저 기록된 갑신생 하씨 正德慧는 1878년 화계사 명부전 시왕도(1, 3대왕도), 1878년 개운사 감로도, 1884년 진관사 영산전 석가모니불도 등 여러 불사에 시주자로 기록된 인물이다.


87.6cm, 104.6cm, 84.5cm의 비단 세 폭을 이어 가로로 긴 화면의 바탕을 마련한 1890년 作 만세루 아미타불회도는 일반 불교신도들의 이름과 함께 동참시주로서 상궁들이 다수 참여한 왕실발원 불화로 값비싼 재료인 금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점이 돋보인다. 채색, 필선, 장식, 문양 등에서도 정교함이 드러나 있다.


특히 결가부좌한 본존불 좌우의 8위 보살 및 사천왕이 모두 의좌상을 한 좌세는 특징적이다.


# 만세루 신중도


만세루 신중도(興天寺 萬歲樓 神衆圖)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신중도로, 2017년 6월 8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410호로 지정됐다. 


가로와 세로가 거의 동일한 크기의 정방형 바탕 위에 帝釋天과 梵天을 중심으로 天龍部를 거느린 韋駄天과 天神, 天女, 童女, 童男 등 天部의 무리를 그린 신중도이다.


畵記는 화면 테두리 흰색 바탕 위에 별도의 구획 없이 먹으로 조성연대, 봉안처, 조성화원, 시주자 등이 기록돼 있다.


화면을 크게 상하로 나눠 상단에는 제석.범천을 위시한 天部世界를 나타내고, 하단에는 위태천을 비롯하여 여러 무기를 들고 무장한 천룡부를 표현했다.


둥근 머리광배에 장방형 몸광배를 구비한 상단부 왼쪽(向右側)의 제석천은 마치 궁중의복처럼 화려한 법의를 착용한 채, 두 손으로는 왼 어깨에 비켜 연꽃가지를 들었다. 제석천과 대칭으로 자리하고 있는 범천 또한 오른 어깨에 비켜 모란화 가지를 들고 있는 점만 다를 뿐 제석천과 거의 유사한 모습이다. 제석천과 범천 주위로는 笏을 든 日․月大臣 및 日宮天子와 月宮天子를 비롯하여 傘蓋와 幢幡을 든 천녀,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 동남.동녀, 일종의 부채인 扇과 幢을 든 천녀 등이 빽빽하게 배치돼 있고, 맨 위쪽 상단에는 하늘 공간을 표현했다.


턱이 갸름하니 둥글어진 얼굴의 제석천과 범천을 위시해 천녀, 동남․동 녀 등의 상들을 보면 정교한 필선을 사용해 상호를 표현하고 밝은 피부색을 하여 천부세계를 나타낸 듯 곱상 하고 우아함이 느껴진다.


만세루 신중도/사진-문화재청

하단의 천룡부 수장인 위태천은 깃털 모양의 장식을 갖춘 투구를 쓴 무장 모습으로 배를 약간 내민 채 두 손으로 삼지창을 짚고 서 있다.


위태천 좌우로는 탕건을 쓰고 깃털부채를 든 신중상(山神으로 불림)과 책을 어깨에 기대어 들고 있는 신중상(竈王神으로 불림), 갑옷을 입고 靑龍偃月刀와 죽절형 武具 및 검으로 무장한 천룡부의 신장상들이 배치돼 있다. 이들 천룡부의 상들은 상단 천부세계의 상들과 달리 어두워 진 피부 빛깔에 모두 무장을 한 채 길고 덥수룩한 수염을 하고 부라린 것처럼 눈을 크게 표현하여 강인한 느낌을 준다.


채색은 이 시기의 다른 불화들과 마찬가지로 적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룬다. 적색의 경우 탁해지고 녹색 또한 짙고 어두운 암록색을 해 전반적으로 화면이 무거워진 느낌이다. 이를 해소하기라도 하듯 삼지창과 검 등의 무구, 각종 器物과 冠帶, 의복 등에 부분적으로 金을 사용해 채색하거나 문양을 그려 넣음으로써 밝아지고 활기가 느껴진다.


또한 이 신중도 조성 시 흥천사에 별도의 불사 도량을 개설해 흥천사 大房의 상단불화 1축을 비롯한 원불도 1축과 신중도 1축, 제석천도 1축 조성과 함께 아미타불상 改粉 및 관음보살상 改金, 원불 1존상 改金, 南巡童子 및 海上龍王의 改彩도 이뤄졌음이 파악된다. 그리고 인근 사찰인 봉국사 봉안의 대방 상단불화 1축과 원불도 1축, 신중도 1축을 조성하고 원불 1존상의 개금도 함께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신중도의 도상을 살펴보면 흥천사 극락보전에 봉안돼 있는 1885년 조성의 신중도(제석 범천천룡도)와 하늘 공간 처리와 색채의 채용에서만 약간의 차이점이 엿보일 뿐 도상은 거의 일치하고 있음이 발견된다.


이와 같은 이유는 이 신중도 조성에 참여하고 있는 화승 가운데 ?碧㶏□ 誌 □ 閑 , 比丘肯□ 法 ?의경우 극락보전 신중도 조성 시 동참화원이었다는 데 있다고 하겠고, 동일 본을 사용하여 그렸을 가능성 또한 충분히 짐작된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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