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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교 13] 우리 조상과 선비의 숨결의 서려있는 '인천향교'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10-14 15:20:56
  • 수정 2023-12-21 16: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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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인천향교는 인천광역시 남구 관교동 117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邑誌에 의하면 ‘鄕校在府東一里’라고 해 都護府의 東側 1里거리에 위치하을 알 수 있고 현재에는 文鶴國民學校 內에 있는 仁川 都護府 聽舍 建物의 동쪽으로 약 400~500m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원래의 위치에서 변함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文鶴山을 主山으로 山에 자리한 仁川鄕校는 入口에 紅箭門이 있고 그 좌측으로 14기의 비석군이 일렬로 자리하고 있다. 紅箭門에서 정북방향의 일직선으로 약 50m 가량 올라가면 외삼문이 좌우의 담장을 두르고 서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막돌 허튼층으로 쌓은 높이 약 6m의 축대가 서있고 중앙으로는 계단이 나 있다. 


계단을 오르면 좌측으로는 명륜당이 있고 담장으로 이어져서 우측으로는 薺器를 보관하는 薺室이 중앙의 大門과 같은 間으로 이뤄져 있다. 대문에 들어서서 뒤를 돌아보면 마을 전체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경관이 펼쳐진다. 明倫堂을 外三門보다 훨신 높은 곳에 자리케 한 것이 이와 같이 좋은 경관을 확보하기 위한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대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는 명륜당의 마당이, 그리고 우측으로는 교직사로 통하게 된다. 명륜당의 마당을 중심으로 동측에는 동재가 있어 뒤쪽의 교직사를 시각적으로 차폐하고 있으며 서측으로는 서재가 있다. 북측으로는 중앙과 좌우에 계단을 두고 다시 작은 마당이 나오게 된다. 이곳이 대성전의 제사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명륜당 뒤쪽의 강학공간과 대성전 앞쪽의 제사공간과는 담장이나 다른 어떤 차폐물에 의한 공간의 분리는 없이 단지 단차로서 공간의 위계를 구성하고 있어 좁은 공간의 효율적인 활용기법이 돋보이고 있다. 대성전은 전면 3間, 측면 3間으로서 전면에는 퇴간을 내고 있다. 그 좌우로 동무와 서무가 있다. 동무와 동재 사이에는 교직사로 통하는 일각대문이 있어 대성전의 제향의식시에 보조할 수 있는 통로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2벌대의 장대석 기단위에 세워진 대성전은 정면 3問, 측면 3問의 맞배지붕으로서 전면간은 제향의 기능을 고려해 퇴간으로 구성돼 있다. 建物의 規模는 65.48㎡(19.84坪)으로서 정면의 住問은 각 간이 3,070㎜(10.1曲尺)이고 측면은 御問이 3,350㎜(11.0曲尺), 兩 來間은 1,880㎜(6.2曲尺)으로서 전체 정면간과 측면간의 比는 1.3 : 1가랑된다. 


정면을 제외한 배면과 양 측면은 중인방 아래로는 방화벽을 쌓아올렸고 내부의 바닥은 전돌로 마감했다. 퇴간의 초석은 정교하게 가공된 원형초석으로서 2단의 쇠시리가 되어있고, 나머지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했다.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으로서 흘림의 기법은 보이지 않는다. 창호는 정면에만 설치돼있고 각 간에 문설주와 상.하인방을 문얼굴로해 2분합의 띠살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포는 전면은 출목없는 二翼工이고 배면은 一翼工으로 짜여져 있고 내부의 익공형은 운궁형으로 초각한 보아지로 돼있고 외부익공은 초익공, 이익공 모두 수서형으로 강직한 형태로 구성되어져 있다. 전면의 퇴간에는 퇴량이 나와 그머리가 익공과 함께 券鼻形으로 조각되어져 있고 두공은 하부에 초각이 되어진 전형적인 익공형 두공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전면 주간의 창방위에는 화반이 놓여져 상부의 주심도리 장여를 받고 있다.


架構構成은 종도리, 중도리, 주심도리로 이뤄진 5량가로서 양 측면의 어간 기둥을 고주로 만들어 주두를 놓고 종량을 받으면서 종량의 중앙에는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고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전면은 서까래위에 부연을 단 겹처마이고 배면은 홑처마로 구성돼 있다. 양 측면에는 풍판을 가설했고 박고의 끝에는 게눈각을 초각했다.


# 대성전



대성전은 문묘의 정전으로서 공부자의 위패를 모시는 전각이다. 공부자의 위패를 중앙 정위로 4성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동서로 위차봉안돠오 있고, 1년에 2회 정기적으로 석전을 지내는 곳이다. 이 건물과 공간을 통칭해 문묘라 한다.


대성전에서는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 평일에는 오전 9시30분에, 토/일요일에는 오전 11시에 분향례를 하고 있다. 매년 양력 5월 11일과 9월 28일 두차례에 걸쳐 대규모의 제례를 거행하는데, 이것을 석전이라고 한다. 석전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원형이 보존돼 있고, 현재 중요 무형문화재 85호로 지정되어 있다.


# 명륜당



명륜당은 외벌대의 기단위에 정면 5간, 측면 2간의 팔작지붕으로 구성돼 있다. 건물의 규모는 55.18㎡(16.72平)이고 정면의 주간은 어간과 퇴간은 2.250㎜(8.25曲尺)이고 협간은 2,450㎜ (8.09曲尺)이며, 측면은 전면간은 2,250(7.43曲尺), 배면간은 2,200㎜(7.26曲尺)으로서 正面長과 側面長의 比는 2.79:1로 나타난다.


내부는 장귀틀과 동귀틀로 구성된 우물마루로 이뤄져 있고 양퇴간의 중앙에 내 진주를 세워놓아 대량과 측면의 충량을 받고 있다. 초석은 원형의 막돌초석으로 덤벙주초방식을 했고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으로서 약간의 민흘림을 두고 있다. 이 건물의 출입은 배면쪽에서 이루어지므로 정면의 창호는 어간과 양협간의 하부에 머름이 가설된 2분합의 판문으로서 조망용으로 가설됐다. 정면의 양 퇴간은 상인방과 중인방 사이에 작은 띠살창을 꾸며 놓았다. 배면은 2분합의 띠살문으로 어간과 양협간에만 가설하였고 양 퇴간과 좌우측면은 중·하인방으로 벽체를 구성하였다.



공포는 기둥머리에 창방과 직교해 살미를 놓고 그 위에 주두를 올려놓고 대량을 받는 초익공으로서 살미의 끝은 수서형으로 하부는 내외부 모두 화려한 파련형의 초각을 했다. 


대량위는 동자주를 놓아 종량을 받고 있으며 동자주의 머리에는 십자형의 보아지를 파련형으로 초각해 맞추어 놓고 그 위에 주두를 놓고 종량과 중도리를 받고 있다. 종향의 중아에는 파련형의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고 있다.


지붕은 네면모두 서까래 위에 부연을 덧달아 올린 겹처마로 구성된 팔작지붕으로 처마의 앙곡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 동무.서무



동,서무는 대성전의 좌우에 위치하고 대체로 孔門의 72弟子와 中國의 歷代 名賢 22位, 우리나라 18名賢 등 總 112位를 從享하는 곳이다.


건물의 규모나 양식 그리고 형태는 동,서무 모두 같다. 2벌대의 자연석 기단위에 정면 3간, 측면1간의 무익공민도리집으로 구성된 동,서무는 정면주간 2,130㎜(7.03曲尺), 측면은 2,430㎜(8.01曲尺)으로서 바닥면적은 15.53㎡(4.7坪)의 규모를 가진다. 



정면의 어간에만 별도의 문설주를 상, 하인방 사이에 수직으로 세워 문얼굴을 구성한 후 2분합의 띠살문을 가설했고 양협간은 중인방까지는 방화벽을 가설했고 그 위로는 환기용의 세살창을 만들어 놓았다. 측면과 배면은 모두 중인방까지 방화벽을 가설했고 그 위로는 흰색의 회벽으로 마감했다.


내부의 바닥은 강회다짐을 했고 벽체에는 역대 명현들의 履歷을 족자형태로 만들어 진열했다. 가구는 간단한 3량가로서 대량위에 동자주형의 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고 있다. 어간의 종이라는 上樑文이 기록되어 있어 이 건물이 1983년에 重創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동.서재



東.西齋는 儒生들이 宿食과 讀書를 하던 곳으로 東齋에는 兩班의 子弟를 그리고, 西齋에는 양반이하의 子弟를 수용하던 곳이었다.


東齋는 정면 4간, 측면 2간의 규모로서 정면 4간 중 가장 우측 1간은 부엌을 구성했고 나머지 3간 중 전면간은 퇴간으로 퇴마루를 냈다. 내부는 온돌방으로 바닥은 구들을 깔았고 우측에는 폭 2尺가량의 庫室을 두었다. 



정면주간은 중앙의 2간은 2,205㎜(7.28曲尺)이고, 양측간은 2,180㎜(7.2曲尺)이고, 측면 주간은 퇴마루가 구성된 퇴간은 1,360㎜(4.49曲尺)이고, 온돌방의 폭은 2,108㎜(6.96曲尺)으로 총 바닥면적은 30.4㎡(9.2坪)이다. 창호는 정면간에만 구성해 명륜당의 마당에 면하도록 했고 촤측으로 부터 1,2번째간에는 외짝의 띠살문이고 3번째간에는 2분합의 띠살문을 달아 주 출입구임을 알 수 있다.


西齋의 간살잡이와 평면의 구성은 東齋와 유사하나 내부의 바닥은 부엌의 위치에 온돌방을 꾸몄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를 깔아 동재와는 바닥의 구성에 다소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가구는 一高柱 五樑으로 구성돼 있고 지붕은 홑처마 맞배지붕에 측면은 풍판이 가설되어 있지 않고 박공의 끝에는 게눈각의 조각을 했다.


# 재실



校直舍는 鄕校를 관리하면서 薺亨儀式등의 여러업무를 보조하기 위한 건물로서 주로 관리인이 기거하며 'ㄱ'字 평면형의 살림집의 형태를 가진다. 안방과 대청 그리고 건넌방 등의 구성외에 薺器를 보관하는 薺室등이 별도로 나 있는 것이 일반 살림집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홑처마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 외삼문



鄕校에서의 內, 外三門은 양측으로 담장을 둘러 영역을 구획해 주고 출입을 위한 기능적인 용도외에도 상징적인 의미로서, 生者뿐 아니라 死者 또한 출입을 한다고 보아 神門이라고도 불리운다. 외삼문은 정면3간, 측면은 1간으로 이뤄지고 중앙에 안으로 열리는 2분합의 판문을 달아놓았다. 어간은 2,700㎜(9尺), 양협간은 2,400㎜(8尺)으로, 그리고 측면은 2,400(8尺)으로 주간을 잡아 어간을 1尺 넓게했고, 또한 중앙간의 지붕은 양협간의 지붕보다 한단 높게 한 솟을 삼문으로 상징성과 권위성을 부여했다.


# 홍전문



능.원.묘.궁전.관아 따위의 정면앞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문, 홍삼문이라고도 한다. 9m 이상 되는 둥근 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없이 붉은 살을 박아 놓았는데 그 중간에는 태극문양을 그려 넣었다.


# 하마비


下馬碑는 ‘大小人員皆下馬’로 새겨져 있는데 이는 향교 앞을 지나 갈 때는 “신분과 나이를 막론하고 누구나 말에서 내려라”라는 뜻을 가진 비석이다. 공자님과 선현들을 모신 신성한 교궁이고 선비들이 공부하는 학당이므로 경건한 마음으로 조용히 향교 앞을 지나가라는 의미가 있는 비석이다. 善政碑는 선정을 베푼 지방 관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백성들이 세운 비석으로 옛 인천부사들의 선정내용이 비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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