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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유형문화재 23] 보문사 석가불도외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10-14 16:04:07
  • 수정 2023-10-14 1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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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8호 석가불도-제99호 신중도-제100호 지장시왕도

[박광준 기자] # 보문사 석가불도


보문사 석가불도(普門寺 釋迦佛圖)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보문사에 있는 조선시대의탱화로, 1996년 9월 30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제98호로 지정됐다.


사진-석가불도탱화는 액자나 족자 형태로 만든 불화를 이른다. 보문사 대웅전 내에 있는 이 후불탱화는 석가여래가 법화경을 설파한 영산회상의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가로 140㎝, 세로 180㎝ 크기이다. 비단에 채색했고, 중앙의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아래쪽 좌우에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했다. 석가여래의 머리 위쪽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왼쪽에, 그리고 10대 제자와 화불 2위를 오른쪽에 배열했다. 화면 사방에는 4천왕상을 배열했다. 

4대 보살과 4천왕상은 모두 두광을 표현하고 붉은색을 많이 사용했다. 이는 이 시대 불화의 특징이다. 표현기법이 정교하고 구도에서도 좌우 대칭의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보문사의 대웅전이 고종 2년(1865)에 중건됐다는 기록이 있는데, 탱화는 이로부터 2년 후에 그려 놓은 것으로 보인다.


# 신중도


보문사 신중도(普門寺 神衆圖)는 불교와 불교를 믿는 국가와 개인을 보호하고, 수호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화엄신중(華嚴神衆)을 도설한 불화로 고종 4년(1867년)에 그려졌다. 1996년 9월 30일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제99호로 지정됐다.


인도에서 불교 성립 이전부터 있어 온 재래의 토속신들을 불교의 신으로 받아들여, 불교의 체계 속에 흡수하게 된다. 이들을 신중이라 칭하게 되고, 불화의 성격을 규정짓는 상단.중단.하단의 삼단불화 가운데 중단에 해당되며고, 신중단(神衆壇)이라고도 한다.


신중도는 대예적금강신(大穢跡金剛神), 제석천왕(帝釋天王), 대범천왕(大梵天王), 동진보살(童眞菩薩) 등의 주요 신장상의 표현과 배치 양식에 따라 그 유형이 구별된다. 이 그림은 화면의 상단 좌우에 제석천왕과 대범천왕이 배치되고, 중앙부에 동진보살이 묘사돼 3구의 신장상이 역삼각형의 배치 구도를 이루는 형태로서 조선 후기 신중도의 유형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형식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크게 보아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그림은 상단에는 제석과 범천을 중심으로 천인상들이 배치돼 있고, 하단에는 동진보살을 중심으로 신장들이 묘사되고 있는 전형적인 도상을 채택하고 있다 그림의 중심을 차지하는 동진보살은 통통한 얼굴에 인자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고, 좌측에 자리하고 있는 산신은 부채를 들고 미소를 머금고 있다. 


사진-신중도이들은 동진보살상의 우측에 자리한 성군(星君)과 함께 화면의 좌측 하단부를 주시하고 있고, 모두 온화한 얼굴로 묘사되고 있다. 채색에 있어서는 녹색과 적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나 색조가 탁해지는 경향은 제작년대를 19세기 중반 아래로 볼 수 있게 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이 그림은 화기(畵記)가 존재하고 있어 불화조성과 관련한 사실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이름은 파악하기 어려우나 상궁(尙宮)의 시주로 불화 조성의 경비가 마련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시주의 공덕으로 영가(靈駕)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사찰의 불사에는 상궁들의 시주가 눈에 띄는 경향임을 지적할 수 있는데, 보문사대웅전신중도의 제작도 상궁을 비롯한 궁중여인들의 경제적 지원으로 가능했음을 이 그림의 화기는 전하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린 화승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같은 연도에 제작된 보문사 묘승전지장보살도가 당시 수락산(水落山) 흥국사(興國寺)를 중심으로 활약한 경선당(慶船堂) 응석(應釋)임을 볼 때, 초를 그린 승려는 경선 응석일 가능성이 높다.


# 보문사 불화 지장시왕도


서울 보문사 지장시왕도(서울 普門寺 地藏十王圖)는 조선 고종대의 그림으로서 현재 서울 성북구 보문동, 보문사에 있는 불화로, 1996년 9월 30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제100호로 지정됐다. 


사람들이 죽은 후의 세계인 명부(冥府)를 관장하면서, 지옥에 빠진 중생까지도 구제하겠다고 하는 지장보살과 심판관으로서의 명부시왕(冥府十王), 그리고 그 권속들을 도설(圖說)하고 있는 불화이다.


지장시왕도는 중단(中壇) 신중(神衆)의 하나였던 지장보살이 하나의 신앙으로 강조돼 독립 분화되면서 명부전(冥府殿) 내 지장삼존상의 뒤에 후불탱화로서 봉안된다. 그러나 이 그림은 불화의 삼단 가운데 중단의 기능을 담고 제작된 불화로 현재 묘승전(妙勝殿) 내에 봉안되고 있는데, 화기에도 중단탱(中壇幀)으로 기록되고 있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림은 화면을 상하로 2분해 군상들을 배열하고 있다. 상단의 중앙에는 단 위에 반가좌(半跏座)의 형태로 앉아 있는 지장보살상과 그 좌우에 협시로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의 지장삼존상이 자리한다.


지장삼존의 뒤에는 10곡병풍의 윗 부분이 표현되고, 그 아래 지장삼존의 좌우에는 명부시왕이 대칭의 형태로 늘어서 있다. 특이한 점은 지장삼존의 뒤에 금색의 빛을 발하는 원형의 광배를 크게 표현하고 있어 이채롭다.


지장삼존상은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있는 상태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는 두광만을 갖춘 채, 마치 희망을 상징하는 해를 배경으로, 지옥의 중생에게 구제의 희망을 주고자 하는 듯이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괘불(掛佛)에 문수동자상(文殊童子像)과 보현동자상(普賢童子像)을 표현할 때 살필 수 있는 형식이지만, 지장시왕도에서는 거의 살펴볼 수 없는 형식이다.


이와 흡사한 예로는 강원도 삼척 영은사(靈隱寺)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지장시왕도(1811년 제작)가 참고된다. 다만 영은사 지장시왕도는 원형 안에 6구의 지장보살이 표현되고 있으나, 보문사의 지장보살도는 6지장의 표현이 생략돼 있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형식화의 경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진-보문사 불화 지장시왕도

하단에는 판관(判官)과 사자(使者), 옥졸 등이 두루마리를 들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말의 머리를 하고 있는 신장(神將)과 소의 머리를 하고 있는 신장이 검을 빼어 든 채 호위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불화의 크기가 가로길이가 긴 형태로 제작되면서 인물상 또한 좌우 일렬의 형식으로 그리고 인물의 크기 또한 일정하게 묘사돼 형식화된 느낌을 발견할 수 있다.


채색에 있어서도 적색과 녹색을 주조로 하되, 공간에 따라 두텁고 엷게 채색한 차이가 현격히 드러나고, 하늘색에 근접한 청색의 사용 등 19세기 후반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으나, 여백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인물상을 전 화면에 배치하고, 영은사 지장시왕도의 형식을 계승하고 있는 점등은 19세기 전반기의 불화에서 찾을 수 있는 경향이라 할 수 있다.


고종 4년(1867)에 제작된 이 그림은 유봉(宥奉)이 화주가 되어, 수락산(水落山) 흥국사(興國寺)의 화승(畵僧)인 경선 응석(慶船應釋)이 단독으로 제작한 불화이다.


응석은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서울.경기지역에서 활동한 불화의 대가로 흥국사의 불화는 물론 고종 23년(1886)의 봉은사(奉恩寺) 탱화조성 불사, 광무 2년(1898)의 경기도 고양시의 보광사(普光寺) 탱화불사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서울의 청량사(淸凉寺).청룡사(靑龍寺) 그리고 도봉산의 회룡사(回龍寺) 등에 작품을 남기고 있는 왕성한 활동을 펼친 화사(畵師)였다.


보문사 대웅전 신중도와 함께 응석이 제작한 불화로서 주목될 뿐만 아니라 응석이 단독으로 그린 불화로써 그의 기법과 실력을 파악하기에 용이한 그림으로 그 중요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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