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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이야기 34] 조선시대 임금의 편전 ‘경복궁 사정전’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10-15 03:11:39
  • 수정 2024-04-15 17: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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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이를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를 잃게 되는 것'

사장문# 경복궁 사정전 


경복궁은 고대부터 전해져 내려 온 궁궐건축의 제도인 전조후침 및 삼문삼조의 기본배치 원리에 따라 외조, 치조, 연조의 구역으로 크게 나뉘어지며 각기 제 기능에 따른 전각이 배치되었다. 치조 구역에는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이 있고, 근정전 바로 뒤 사정문을 통해 치조공간으로 들어서면 3단 석축 위에 올라앉은 임금의 집무실인 사정전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여기에서 왕은 신하들과 회의를 하기도 하고 함께 공부하는 경연을 펼치기도 했다. 





사정전 건물은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어칸을 협칸보다 2배 가까운 길이로 넓게 잡았고, 측면에서도 중앙칸을 훨씬 크게 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 건물은 건물 중간중간에 있어야 할 고주를 생략한 호방한 구조로, 천장이 아주 높고 바닥 전체에 마루를 깔았다. 


임금의 자리는 한 단 올린 어탑 위에 마련되어 있고 용상 뒤로 ‘일월곤륜도’가 둘러져 있다. 그리고 용상 앞 기둥머리에는 벽화로 ‘운룡도’가 그려져 있고, 병풍과 벽화 모두 복제화지만 그림의 내용, 화려하면서도 진중한 채색, 능숙한 필치와 정확한 묘사로 임금의 권위를 품위있게 장식하고 있다. 






사정전 좌우에는 만춘전과 춘추전이 배치됐다. 천추만세를 봄.가을로 나누어 이름 붙였다. 사정전은 만춘전, 천추전과 함께 편전으로서 정사를 보았던 곳으로 사정전에는 온돌이 없고 만춘전과 천추전에는 온돌이 있어 추운 겨울에는 만춘전과 천추전에서 정사를 보고 경연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탕고는 ‘천자고’부터 ‘황자고’까지 모두 여덟 칸으로, 이는 ‘천자문’의 천지현황 우주흥황‘ 순서로 곳간 이름을 매긴 것으로, 요즘의 ’가나다‘ 순으로 나열했다. 사정전은 경복궁 창건 당시인 태조 4년(1395)에 지어졌고, 명종 8년(1553)에 불탄 뒤 재건했다. 그 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인해 경복궁의 수많은 전각과 궁문이 모두 소실 됐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 4년(1867)에 근정전, 경회루, 수정전 등과 함께 중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사정전의 현판은 경복궁을 중건할 때 이조판서로 있던 조석우가 썼다.





’사정전‘은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이를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를 잃게 되는 것이므로 왕으로 하여금 깊이 생각할 것을 촉구한다는 뜻이라 했다.


1435년(세종 17)에 세종은 이곳에 거처하면서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를 짓게 하고 이를 이름해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라 명했다. 세조 때에는 사정전 앞 낭무(廊廡: 정전 아래로 동서에 붙이어 지은 건물)에 큰 종을 달고 군정(軍政)을 보살필 때면 엄히 다스린다는 호령으로 이 종을 쳤다.




양식상으로는 별다른 특징이 없으나, 창덕궁이나 창경궁의 편전이 모두 정전의 측면에 있는 것과 달리 이 건물은 정전의 정북방에 위치하고 있어, 경복궁이 조선조의 정궁(正宮)으로서 질서정연한 배치원칙을 따르고 있음을 이 건물의 위치에서 살펴볼 수 있다.


# 경복궁 만춘전


경복궁 사정전 동쪽에 위치한 사정전의 부속 전각이다. 전각의 명칭인 '만춘(萬春)'은 '만년의 봄'이라는 뜻으로, 오랫동안 조선 왕조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사정전 서쪽에 위치한 천추전(千秋殿)과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난방시설이 없는 사정전과 달리 온돌이 설치돼 있어 만춘전은 주로 봄에, 천추전은 가을.겨울에 임금이 이곳을 이용했다.


경복궁 교태전, 함원전, 자미당 등과 함께 세종때 건립됐고,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1767년(영조43) 이후에 만들어진 ’경복궁전도(景福宮全圖)‘에는 조선 전기 경복궁의 구조가 그려져 있다. 이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는 사정전, 천추전, 만춘전, 강녕전 등이 복도로 연결돼 있고, 만춘전과 천추전의 위치가 사정전 행각 밖에 위치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만춘전은 정면 6칸, 측면 4칸 규모의 건축물로, 일정한 길이로 가공한 장대석을 쌓아 3벌대 기단을 만들었다. 방형의 주춧돌 위에 사각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초익공 형식의 공포를 올렸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망새와 용두 등을 설치해 지붕 위를 장식했고, 지붕의 합각(合閣)은 벽돌로 쌓아 만들었다. 전각의 중앙에는 대청을 두었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설치했고, 온돌방 내부에는 병풍, 보료, 책상 등 당시 생활상을 재현해 놓았다. 기단의 좌우 측면에는 아궁이가 설치돼 있고, 만춘전 뒷편에는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이 위치한다.


# 경복궁 천추전

 

경복궁 사정전 서쪽에 위치한 사정전의 부속 전각으로, 전각의 명칭인 '천추(千秋)'는 '천년의 가을'이라는 뜻으로, 오랫동안 조선 왕조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현판의 글씨는1865년(고종2) 경복궁 중건 당시 이조참의였던 정범조(鄭範朝, 1833 ~ 1898)가 썼다. 사정전 동쪽에 위치한 만춘전(萬春殿)과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경복궁 교태전, 함원전, 자미당 등과 함께 세종 때 건립됐고,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1767년(영조 43) 이후에 만들어진 ’경복궁전도(景福宮全圖)‘에는 조선 전기 경복궁의 구조가 그려져 있다.


천추전은 정면 6칸, 측면 4칸 규모의 건축물로, 일정한 길이로 가공한 장대석을 쌓아 3벌대 기단을 만들었다. 방형의 주춧돌 위에 사각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초익공 형식의 공포를 올렸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망새와 용두 등을 설치해 지붕 위를 장식했고, 지붕의 합각(合閣)은 벽돌로 쌓아 만들었다. 전각의 중앙에는 대청을 두었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설치했고, 온돌방 내부에는 병풍, 보료, 책상 등 당시 생활상을 재현해 놓았다. 기단의 좌우 측면에는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고, 천추전 뒷편에는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이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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