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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창의도시, 이천 1] 향토유적 제6호 ‘관고리입상석불(官庫里立像石佛)’ 이승준 기자 2021-05-23 15:53:25

향토유적 제6호 관고리입상석불(官庫里立像石佛)’ 정면/사진-이승준 기자

[이승준 기자] 향토유적 제6호 지정돼 있는 관고리 입상석불은 현재 관고동 법왕사 경내에 자리 잡고 있다. 본래 3번국도변 산골짜기에 있던 것을 1997년 현재에 위치로 옮겼다. 고려 초기에 조선되 것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은 높이 4m에 이르는 큰 사이즈다. 머리 위에는 상투처럼 보이는 육계(肉髻)가 두드러진다. 육계란 부처의 정수리에 마치 혹처럼 솟아 올라와 있는 부분으로, 부처의 크고 높은 지혜를 상징한다. 육계는 원래 불교가 시작됐던 인도에서 성인들이 머리카락을 올려 묶었던 상투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얼굴이 납작한 가운데 눈.코.귀가 모두 길게 표현된 점이 특징적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입은 작다. 이는 자석리 석불입상의 얼굴 표현과도 유사한 부분이다. 


사진-이승준 기자목 부분에 삼도가 뚜렷이 새겨졌고 법의는 통견 형식이다. 옷주름은 U자형인데 마치 물리치던 아래쪽을 향해 반복적으로 표현돼 제작될 당시 조형미를 상당히 고려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전체 몸에 비해 과도하게 긴 팔과 큰 손은 비례가 맞지 않아 어색한 부분이지만, 긴 팔의 경우에는 부처를 조각이나 회화로 조형화할 때 적용하는 부처의 신체적 특징으로 규정돼 있는 32상(相) 80종호(種好)의 반영일 수도 있다. 32상 80종호란 부처는 인간과 다른 형상을 지나고 있다는 ㅂ믿음 하에 만들어 곳이다. 실제 32상 가운데 ‘손이 무릎까지 내려간 모습’이라는 항목이 있으므로 이것이 관고리 석불입상의 제작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자료출처-이천문화원  


향토유적 제6호 관고리입상석불(官庫里立像石佛)’ 측면/사진-이승준 기자

이천시에서 기치미고개에 이르는 도로변 좌측, 옛부터 미륵(彌勒골이라 불리던 산골짜기 안의 밭중앙에 위치해 있다. 이 석불은 규모가 큰 여래입상(如來立像)으로 현 위치가 원래에 매몰되었던 곳이라 한다. 머리는 소발(素髮)에 작은 육계를 갖고 있고 상호(相好)는 하해(下解)이다. 귀는 매우커서 양어깨에까지 길게 흘러내렸고, 목에는 3도(道)가 뚜렷하나 도식화(圖式化)된 느낌이 있다. 법의(法衣)는 통견으로 가슴에서부터 의문이 원후를 이루다가 양무릎 부분에서 타원형을 이루어 발밑까지 닿아 있다. 


사진-이승준 기자 오른손은 옆으로 곧게 펴서 내리고, 왼손은 밖으로 향하여 배 앞부분에서 구부렸는데, 동체(銅體)에 비해 손이 큰 편이다. 콧마루와 손가락 부위는 일부가 마멸돼 시멘트로 보강했고, 등 복핀에는 10cm가량의 사각구멍이 뚫려있는데, 두광(頭光) 장식을 만들어 부착해 놓았던 자리인 듯 싶다. 주위에는 석괴(石塊)와 와편(瓦片)이 출토된 바 있어 원래는 불당 건물이 설치되었던 자리 임을 알 수 있다. 주위에는 규격화된 수법으로 미루어, 붉조각의 쇠퇴기(衰退期)인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석불의 규모는 전체높이 4m, 어깨폭 1.10m, 허리둘레1.17m이다./사진-이승준 기자]